이어져 있으면서도, 간격을 잃지 않을 때 조화가 피어난다
탁자 위에 서늘함이 흐른다.
손끝이 닿은 듯하지만 착각이다.
손과 탁자 사이에는 전자들이 서로를 밀어내는
보이지 않는 막이 있다.
그 얇은 틈이 세상을 지탱한다.
그 막이 사라지면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가며
서로를 뚫고 사라진다.
세상은 간격으로 이루어져 있다.
뭉쳐 있는 듯 보이나 완전한 하나는 없다.
원자 속 전자는 핵을 돌며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완전한 합일이 일어나면 평화는 폭발로 바뀐다.
핵이 융합되는 찰나,
세상은 눈부신 빛으로 타오르다 사라진다.
억지로 합쳐진 하나됨은 무너지고,
간격을 아는 하나됨은 머문다.
자석의 N극과 S극이 서로를 끌어당길 때
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흐른다.
그 힘이 자기장이다.
둘은 반대이며 하나의 장을 완성한다.
고정된 채 섞이지 않는다.
떨어져 있으나 서로를 향해 울린다.
존재도 같다.
어떤 것은 다가오고 어떤 것은 멀어진다.
끌림 속에는 가능성이,
밀림 속에는 한계가 드러난다.
모든 관계는 하나의 자기장 안에서 서로를 완성한다.
하나됨은 융합이 아니다.
이해다.
파괴가 아니라 통찰이다.
간격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간격이 만들어내는 숨결을 듣는 일이다.
관찰 이전의 세상은 파동처럼 열려 있다.
관찰의 순간 그것은 입자로 굳어진다.
‘나’라 불리는 것도
찰나마다 응고되는 인식의 무늬일 뿐이다.
모든 파동은 본래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
핵폭탄은 분리의 힘이 풀릴 때 터진다.
수소폭탄은 합쳐지려는 힘이 폭주할 때 터진다.
하나가 되려는 욕망은 파괴를 낳는다.
의식의 하나됨은 다르다.
파괴가 아닌 포용이다.
벽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그 벽이 유리처럼 비어 있음을 알아보는 일이다.
간격의 자각이 깊어질수록
몸은 조용해진다.
머릿속의 소음이 줄고
심장은 천천히 뛴다.
호흡은 부드럽게 이어지고
피는 따뜻하게 흐른다.
온몸이 ‘지금은 안전하다’는 신호를 받는다.
몸이 싸움을 멈추면 세포는 회복을 시작한다.
이해가 생길 때
뇌는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두려움의 회로는 잠잠해진다.
생각의 속도가 느려지고
신경은 평화의 방향으로 정렬된다.
몸은 더 이상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때의 평화는 흥분이 아니다.
무언가를 얻어서 생긴 기쁨도 아니다.
싸움이 멈춘 자리에서
자연히 피어나는 따뜻한 빛이다.
그 빛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몸이 이완되고, 마음이 고요해질 때
안쪽에서 스스로 새어나온다.
그건 특별한 사람만 내는 빛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이미 있는,
다만 서두름과 두려움에 가려져 있던 빛이다.
그 빛이 드러날 때
사람은 더 이상 밝아지려 애쓰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가 이미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가 에너지가 되는 순간
세상은 이미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 자각이 마음을 비추는 순간
삶은 조용히 맑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