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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필드 노트

아이들은 왜 고성보다 ‘조용한 추궁’을 무서워할까

소리보다 오래 남는 것은 어른의 집요한 질문이다

by 무아제로

아이들은 종종 ‘순수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곤 한다. 그러나 가까이서 관찰해보면,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냉철한 공학자들이다. 비명과 환희로 가득 찬 듯 보이는 그들의 세계는 사실 가성비와 효율의 원칙에 따라 매우 정교하게 움직인다. 어른들이 따뜻한 감정으로 덧씌운 안개 속에서, 아이들은 조용히 어른의 행동 패턴을 분석한다.


목소리를 높이는 어른의 행동은 주식시장의 단기적 급등락과 비슷하다. 초반에는 공포가 약처럼 작동한다. 예측 불가능한 폭발음에 움찔하고, 어른의 권위라는 단단한 벽 앞에서 잠시 멈칫한다. 그러나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빠르게 패턴을 학습한다. 고성(高聲)은 결국 내용물 없는 포장지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 약발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또 시작이네.”


그들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마치 팝콘을 씹듯 여유로운 심정으로 어른의 ‘쇼’를 관람한다.


아이들을 움직이는 진짜 힘은 다른 곳에 있다. 그들이 가장 경계하고, 심지어 회피하는 것은 지속적인 잔소리와 추궁이다. 이것은 짧은 폭발이 아니라, 저리(低利)로 끈질기게 붙어오는 장기 부채에 가깝다.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버럭 화내는 어른이 아니라, “덮고 넘어가게 두지 않겠다”고 말하는 조용한 어른이다.


잔소리는 낮은 목소리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한다.


“왜 그랬을까? 너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스스로 말해볼래?”


이 질문의 힘은 강력하다.


군중 속에 숨을 수도 없고, 어른의 감정적 폭발 뒤에 도망칠 수도 없는 1:1의 좁은 공간. 이 심문의 시간 동안 아이는 자신의 논리와 감정, 변명의 밑바닥까지 어른의 현미경 아래 드러내야 한다. 이 순간은 잠깐의 잘못이 장시간의 심문으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가장 정확하게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다.


잔소리의 경제학은 명확하다.


에너지만 많이 드는 고성과 달리, 저강도-고지속의 추궁은 정확히 목표를 관통한다.


이 과정은 아이에게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학습시키는 가장 원초적인 교과서다. 아이들은 서서히 깨닫는다. 쾌락은 순간이지만, 그 대가를 치르는 시간은 길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행동하기 전에 비용-편익을 계산하기 시작한다.


인간은 고통을 회피하는 존재다. 아이도 예외가 아니다.


이 한 차례의 논리적 결투는 아이와 어른 사이의 새로운 사회 계약을 만든다.


아이들은 어른의 잔소리라는 ‘빚’을 지지 않기 위해 자기만의 규율을 세우기 시작한다. 목소리를 높일 필요조차 없다. 어른의 조용한 집요함이 공기 중에 남기는 긴장감만으로도 충분한 예방 효과가 된다.


그렇게 아이들의 공동체는 어른들의 세계와 접점을 만들고, 스스로의 질서를 재편한다.


이 작은 교정의 과정이 곧, 아이가 사회라는 거대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첫 번째 통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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