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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단 Jan 31. 2016

일기

2016.1.29.
1.
- 오늘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사흘 째 되는 날이다.

- 밀랍인형처럼 빳빳하게 굳은 할머니는 눈을 뜨지 않았다. 나는 따깨삔을 꽃고 돌아가신 곱디 고운 할머니의 시신 앞에서 주저앉아 울었고, 수의를 입은 할머니를,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보는 할머니를 잊지 않으려 끝까지 할머니 곁에 있었다.

- 장례식 동안 나는 어른은 원래 울지 않는 것인지, 그 울음과 시간을 견딜 만큼 세월의 무게를 지나 온 것인지 따위의 생각을 했고 ... 내가 대화에 잘 참여할 수 있도록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준 배려와 웃음을 잃지 않도록 위트있는 말을 하던 사촌오빠들을 보며 힘든 시간을 견뎌온 어른의 모습에 대해 생각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밀려오는 할머니 생각 때문에 쉬지 않고 일을 하려 했고, 한편으로는 이 모든 걸 외면하려 잠을 자고 싶었다 ...

- 마지막 날 화장터에 모인 사람들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할머니의 관은 두 번 죽기 싫다며 화장하지 말라는 할머니의 말씀을 뒤로한 채 화장되었다.

- 나는 잠시라도 할머니 영정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십 년 동안 함께 지낸 할머니의 목소리와 얼굴을 잊을까 두려워 기억을 붙잡으려 애썼다.

- 화장하고 나온 할머니의 흔적은 창백했다. 다리뼈 하나가 남았고, 흩어진 유골 잔해와 회색빛 재들은 폐허처럼 남아버렸다. 그러나 그 폐허엔 어떤 온기가 남아 있었다.

- 오늘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사흘 째 되는 날이다. 나는 고요와 적막에 대해 자주 썼지만 이제야 적막이 뭔지, 고요함이 뭔지 알 것 같다.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는다. 왜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내 곁에서 변치 않고 남아줄 것이라 믿었던 걸까. 그 어느 것도 당연하지 않은걸.

-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아침에 함박눈이 내렸다.

-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하고, 죽음의 무게를 견디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하고, 영혼에 대해 알지 못하고, 미래에 대해 알지 못하고, 희망에 대해 알지 못하고, 종말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 모든 건 나에게 무겁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내가 제일 사랑하던 사람 중 한 사람이자 나를 가장 사랑해주던 사람 중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 내 가슴은 할머니를 따라 죽은 것 같다. 어느 것에도 의욕이 없다.

2016.1.30.
1.
- 의욕이 없다. 글을 한 줄도 읽지 않았고, 일기가 아니면 한 문장도 쓰지 않았다. 내일은 억지로 일을 해야 한다. 차라리 억지로라도 바쁜 게 더 좋은가 싶기도 하다.

- 모든 게 내게서 멀어지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붙잡을 힘이 없다. 붙잡아야 할 이유도 알지 못한다.

- 뭘 더 써야 좋을지 모르겠다. 모든 문장이 무의미해 보인다.

3.
- 블로그와 브런치에 일기 흔적을 올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건 내가 살기 위한 몸부림인걸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위로 받고 싶은 나약한 투정인걸까.

4.
- 장례식 때의 엄마를 보며 어른들은 죽음의 무게를 견딜 만큼 강한 존재들인가 하고 생각했다. 장례식이 끝난 후 엄마를 보며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죽음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인간같은 건 어디에도 없는 모양이다.

2.
- 쓸말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견디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할머니에 대해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외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쓰다듬으시던 할머니의 늙은 손과, 날 부르던 할머니의 목소리와, 이 사람 저 사람을 마한년이라 욕하시던 모습을 떠올릴수록 분명해지는 게 하나 있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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