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단 Apr 08. 2016

평온함의 틈새로

도단 에세이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고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투명사회, 미학 오디세이 2권,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몰락의 에티카. 정신산만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게 더 재미있다. 다만, 밀란 쿤데라의 작품이 그토록 유명한 이유는 좀 동의하기 힘들고, 차라리 무의미의 축제가 더 깔끔하고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뭘 말하고 싶은지 자세히 알진 못해도, 대략 감은 잡히는데 흥미롭지는 않다. 차라리 투명사회, 미학 오디세이, 몰락의 에티카가 더 재미있다. 어쩌면 쿤데라가 내 스타일이 아닌 걸지도.


   유아교육전공자는 피아노가 필수였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엄마는 대학을 다니며 제대로 피아노를 배워야 했다. 엄마가 다니던 학원은 작은 가정집에 네 대의 피아노가 있는 곳이었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여자는 당시의 엄마보다 나이가 조금 많았고, 작은 키에 쌍꺼풀 없는 작은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까만 피부에 가르마를 탄 까만 머리가 어깨 위로 흘러내렸고, 입술만 빨갛게 도드라졌다. 피아노 위에 올려놓은 항아리에는 노란 튤립을 가득 꽂아놓았고, 달빛이 비치는 밤이면 월광을 쳤다고 한다.

   엄마가 그녀에 대해 잊지 못하는 장면들은 많았는데, 그 중 하나는 남자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남자의 마음을 어떻게 흔들어 놓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던 것 같다는 게 엄마의 말이다.

   평소처럼 피아노를 치던 엄마는 한 노인의 기습출현에 당황했다. 곧게 뻗은 허리와 큰 키,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백발의 남자가 엄숙한 눈으로 뭔가를 찾았다. 그러더니 곧 “선생은 없나?” 하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이 사태에 대해 아는 게 없었으나, 불길한 마음이 들어 “선생님 있으신데요.......” 하고 말끝을 흐렸다. 남자의 손에는 악보가 들려 있었다. 곧 선생이 차가운 눈초리로 걸어 나왔다. 그녀는 손을 허리에 얹은 채로 남자를 향해 “가. 오늘은 또 왜 왔는데.” 라며 악을 썼다. 그녀에게 남자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백발의 남자는 악보를 그녀에게 건넸고, 그녀는 남자가 보는 눈앞에서 건네받은 악보를 찢었다. 남자는 그녀의 거친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피아노에 앉아 그녀를 위한 세레나데를 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열정에 받친 피아노 음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세레나데가 끝나자마자 두 사람은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남자는 문 밖으로 밀려났다. 그는 다시 한 번 엄숙한 눈으로 한참동안 그녀를 바라보다 결국 돌아섰다. 선생은 그 남자가 시에서 가장 큰 피아노 학원의 원장이고, 일 년을 본인이 작곡한 곡을 가지고 자신에게 찾아왔다고 말했다. 엄마는 내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칠십이 넘은 노인도 그렇게 열병을 앓을 수 있다며 눈을 빛냈다.

   참고로 삼십 년이 지난 지금, 엄마와 피아노 선생은 연락이 닿질 않으며, 그녀에 대해 들은 소식 또한 별로 없다고 한다. 후에 시내에서 제법 큰 피아노 학원을 운영했다는 소식과, 무슨 대학에 강사로 수업을 나가는 정도로 승승장구 하다가 무슨 사기에 연루되어 교도소에 갔는지, 아니면 다른 도시로 종적을 감췄는지 했다는 게 전부란다. 그녀다운 결말이다.

   아니, 아마도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단독주택 이 층에 세 들어 살고 있다. 집 앞에 위스타트가 들어온 것은 반 년이 넘었나 했을 것이다. 나는 센터를 바라보며 청소년 교육센터로 교육봉사를 나갔던 경험이 떠올렸다. 초등반의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전문 선생님 옆에서 과학 실험을 보조하는 게 내 일이었다. 과학실험도구를 제대로 쓰는 아이들도 있었고, 그 나이 또래답게 장난을 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봤자 위험한 실험은 아니었기에 괜찮았다. 하지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슴을 졸이곤 했다. 오학년, 육학년 여자애들은 나를 좋아했고, 그보다 조금 더 어린 애들은 나를 낯설게 느꼈던 것 같다. 여하튼 아침이면 시끄러운 애들 소리에 잠이 깨곤 하는데, 그 아침에 왜 애들이 학교를 가지 않고 센터에 나와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냥저냥 보신탕집이 있던 것보단 이게 더 낫다 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오늘 오후의 볕이 좋아 가만히 센터의 마당을 내다보며(우리 집 부엌 창문으로 센터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벚꽃좀 보러 가고 싶은데 사람이 많으니 가기도 그렇고 애메하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들은 돌아가고 없었다. 그러는 중 초등학교 사학년인가 쯤 되었을 법한 아이들 몇몇이 센터 앞을 지나갔다. 센터 아이들인가 싶었는데, 그 중 한 아이가 해맑게 말했다.

   “우리 아빠가 나 말 안 들으면 여기 보내버린대!”

   순간 가슴에 뭔가 묵직한 것이 얹혔다. 주위의 아이들이 진짜? 진짜? 하며 되물었으나 세상은 곧 정적 속에 잠겼다. 세상의 차가움 위로 봄의 따스한 볕이 일렁였다. 그러므로 햇볕은 뻔뻔했다. 정적 속에서 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아이가 뭘 알겠는가. 하지만 순수와 무지는 더 큰 죄를 낳는다. 그 죄 뒤에는 아이의 아빠의 알량한 자존심이 있을 것이다.

   나는 휑한 센터 마당을 바라보며 부엌 창문 앞에서 떠나질 못했다. 봄이 왔지만 여전히 세상은 잔인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Gavial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