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단 Jun 24. 2016

지속되는 임사체험, 아니 죽음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다. 내 앞에는 꽃이 있다. 빨간 접시 같은 넓은 꽃잎 위로 노란 대 하나가 올라온 꽃이다. 그 중 몇 개는 대가 연두색, 초록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마 죽어가는 것 같다. 물을 주지 않았기 때문인가. 이미 다 먹고 얼마 남지 않은 블루베리 스무디를 바라본다. 괜히 빨대로 힘껏 빨아본다. 그래봤자 잔여물은 스푼 빨대 위로 올라오지 않고, 공허한 소리만 맴돈다. 내 앞에 앉은 남자는 에스프레소의 컵 입구를 살짝 감싸 쥐고 홀짝홀짝 거린다. 손잡이가 버젓이 있는데 왜 손잡이를 잡지 않는 걸까. 커피를 마시는 것 같지 않고 소주를 마시는 것 같다. 저 안에 든 것은 사실 소주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말한다.

   차라리 메뉴를 새로 시키는 게 어때? 다 마셨잖아.

   생각한다. 메뉴를 또 먹을 만큼의 배가 있는지. 들이키면 들어갈 것 같기는 한데, 먹고 나면 후회할 것 같다. 거기다 또 블루베리 스무디를 시키기는 싫다.

   싫어. 아니, 잘 모르겠어.

   그렇구나.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알바를 불러 메뉴판을 달라 말한다. 앳된 알바생은 서투르게 메뉴판을 건네고 사라졌다. 빳빳하게 코팅된 종이에 커피류와 라떼류를 들여다본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메뉴판을 내려놓고 남자를 바라본다.

   안 먹을래.

   그래.

   알바생은 우리 테이블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손만 쳐다보며 앉아있다. 우리는 각자 블루베리 스무디와 에스프레소를 먹었다. 침묵을 지키며. 자신의 앞에 놓인 음료를 먹는 게 지상과제인 것처럼. 오직 그것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며. 메뉴를 먹는 것에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남자가 할 말이 있었다는 걸 잊기까지 했다. 물론 남자도 자신이 할 말이 있었다는 걸 잊은 것 같았다. 아니, 그건 내 착각이었을 것이다. 저 비장한 표정은, 사실 할 말이 있었는데, 너가 블루베리 스무디를 다 먹을 때까지 참을 수 있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너한테 전화한 이유는 하나야.

   할 말이 있다며.

   그래. 할 말이 있어서 부른 거였지. 그 말은 카톡은 물론이고 전화로도 할 수가 없는 거였어.

   남자는 내 앞에 놓인 메뉴판을 가져가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메뉴를 살폈다. 우아하게 손을 들어 앳된 알바생을 불렀다. 알바생은 메뉴를 받아가는 게 자신에게 부여된 지상명령인 양 성심성의껏 남자가 불러주는 메뉴를 받아 적었다. 에스프레소와 블루베리 스무디. 이럴 수가. 나는 항의의 말을 덧붙였으나 남자는 그냥 자기가 사는 거니까 마시라 했다.

   아니야. 그래도 난 배가 부른데. 그리고 블루베리 스무디를 먹었는데 또 먹고 싶지는 않다고.

   남자는 어깨를 으쓱 해보였다. 앳된 알바생은 침착하게 내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럼 네가 정해.

   나는 메뉴판을 살피다 블루베리 스무디 밑에 있는 망고 스무디를 시켰다. 나의 상상력의 한계는 여기까지인가. 짧게 탄식했다. 알바생은 선선히 메뉴를 받아 적어갔다.

   한심해.

   뭐가. 난 똑같이 에스프레소 시켰는걸.

   근데 하루에 에스프레소 두 잔을 마실 수 있는 거야?

   못할 게 뭐가 있어.

   막 심장 두근거리지 않아?

   괜찮은데.

   그렇구나.

   그리고는 메뉴가 나올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테이블에 놓인 붉은 꽃 위에 허공에서 맴을 돌던 먼지가 내려앉았다. 남자도 나도 그 먼지를 바라봤다. 알바가 아까처럼 성실한 태도로 메뉴를 가져오고 나서야 남자가 입을 열었다.

   며칠이 지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여하튼, 이제야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동안은 내게 일어난 일을 나도 좀 생각해봤어야 했거든. 얼마 전 갑자기 연락이 안 되었던 거 기억하지? 그럴 일이 있었어. 이제야 말하지만, 시간제 교사로 일을 하러 갔었어. 학원에서 일하는 것도 좋긴 하지만, 임고 붙은 후를 생각하면 시간제 교사가 더 좋겠구나 싶었거든. 여중인데, 건물이 좀 낡았더라고. 나무 복도 위에 노란 전구가 하나씩 달려 있는데, 복도 가운데만 겨우 밝혀주는 정도였어. ‘밝혀 주었다’라고 말하기가 어색할 정도로 너무 침침했지. 복도의 중앙이 흐릿한 노란 띠 같아 보였달까. 교실도 비슷했는데, 좁은 교실에 의자랑 책상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너무 어두워서 칠판에 쓴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어. 복도처럼 바닥의 몇 군데만 노란 불빛이 비쳤는데, 그 불빛도 초점이 흐릿한 사진처럼 퍼져버리더라고. 그래서 그런지, 유령이 돌아다닐 것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나중에는 내가 유령이 된 것 같더라고. 그러니까, 그 학교에서 나는 한 번도 제정신으로 다니지 못한 것 같다는, 그런 말이야. 붕 뜬 느낌으로, 늘 꿈속을 걷는 것 같았어.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아? 내가 빈혈이 있었나,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지. 여하튼 젊은 남자 교사가 여중에 가면 조심해야 하니까 들어가는 교실마다 별 다른 얘기 없이 수업만 했지. 그런데 애들도 좀 이상한거야. 다들 검은 세라복을 입고 앉아 있는데, 노란 전구 때문인지, 워낙 낡은 건물 때문인지 애들도 전부 유령처럼 보이는 거야. 나처럼 붕 뜬 느낌으로, 꿈속을 헤매는 것처럼 보였다고 해야 하나. 좀 이상하다 생각 하면서 수업을 하는데, 뭔가 자꾸 잊은 것 같은 거야. 그냥 내가 좀 예민한 게 아닐까 싶었는데, 애들이 자꾸 웃는 거야. 계속 무표정하던 애들이 말이야. 내가 뭔가 찝찝해하니까 갑자기 웃더라고. 그것도 창백한 얼굴에 해맑게 웃어서, 그 부조화가 너무, 뭐라 해야 하지, 끔찍했어. 첫 날 수업을 세 반에 들어가서 했거든? 그런데 세 반 전부 그러고 있는 거야. 다들 똑같이 유령 같고, 내가 찝찝해하면 창백하게 웃고. 세 번째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오는데, 복도가 어두웠다고 했잖아. 사실 건물 자체가 어두웠던 거지만. 복도 중앙만 희미하게 노란색으로 밝혀져 있는데, 그게 띠처럼 주욱 이어져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 복도 끝에 내 동생이랑 비슷한 여자애가 하나 지나가는 거야. 그제야 알았지. 맞다. 내 동생이 이 학교에 전학수속을 하러 왔었다. 나랑 같이 왔었는데. 그래.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못 본 것 같은데? 교실로 잘 들어갔나? 오빠라는 새끼가 어떻게 동생을 잊을 수 있지? 좀 미안하더라고. 그래서 복도를 지나가는 여자애 하나를 붙잡고 물었어. 혹시, 내 동생 알고 있냐고. 날 닮게 생겼는데, 오늘부터 이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고. 어느 반에 갔는지 아냐고 말이야. 그런데 애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교실에서 봤던 그 웃음, 그 창백하게 빙글거리며 웃는 웃음만 짓고 있는 거야. 기분이 이상해져서, 애를 붙잡고 다그쳤어.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느냐고. 근데 계속 빙글빙글 웃기만 하고 다른 말을 하는 거야. 선생님, 수학 재미있어요? 그래서 수학선생님 한 거에요? 하면서. 기분이 이상한거야. 아무래도 동생이 어떻게 됐을 것만 같은 게. 여자앨 내버려두고 복도를 막 돌아다녔어. 동생을 찾으면서. 그런데 동생은 어디에도 없는 거야. 계속 동생 이름을 부르는데, 뒤에서 누가 날 따라오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까 아까 그 애야. 웃으면서, 선생님 어디가요? 선생님 여기 얼마나 있다 갈 거에요? 하고 물어. 그러더니 지나가던 애들이 점점 달라붙는 거야. 아마 교실에서 나왔겠지. 내가 들어가지 않는 교실의 애들까지 달려 나와서 날 붙잡고 이런저런말을 하는 거야. 하나같이 빙글거리고 웃으면서. 선생님 저 고양이 키우는데, 애가 어제 먹은 걸 토했어요, 어떡하죠? 선생님, 키가 몇이에요? 선생님 엄마가 어제 옷을 사줬는데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근데 그냥 입으라는데 어떡하죠? 하면서. 난 그 모든 질문을 무시하고 내 동생 어디 있냐고 물었어. 근데 아무도 대답을 안 해. 그냥 웃으면서, 창백한데 해맑게 웃으면서, 계속 다른 말만 하는 거야. 동생한테 뭔가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아무도 동생에 대해 말하지 않아. 분명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도 말하지 않아. 웃으면서 계속 날 붙잡아. 내가 동생을 찾지 못하도록. 마치 내 동생은, 그런 사람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동생이랑 상관없는 말을 하면서 웃고 떠드는 거야. 분명 낮인 것 같은데 복도도, 창밖도 너무 어두워. 건물은 안개 속에 둘러싸여 버리고, 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명랑함이 끔찍하게 느껴져 더욱 초조해졌어. 도대체 동생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아무리해도 동생은 찾을 수 없었지. 이렇게 음험한 곳에서 동생이 길을 잃었다면 틀림없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자꾸만 들었어. 하지만 모두가 나를 도와주지 않았고, 나를 열렬히 자신들의 세계로 끌어 들이려했지. 나는 불안했고, 초조했고, 그로테스크한 교실의 분위기에 질려 기절할 것 같았어. 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까. 그러다 생각했지. 너무나 당연한 게 그제야 생각이 나는 거야. 교장이 전학생인 내 동생을 만났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교사들은 보이지 않지? 나를 도와줄 교사들과 교장은 어디에 있지? 일층, 일층이다. 일층에 교장실과 교무실이 있다. 나는 필사적으로 달려갔어. 교장실 문을 열 때까지 애들은 나를 쫓아오고 나를 둘러싸고 계속 말을 걸었어. 나와 상관없는 말들을. 겨우 그 방해를 물리치고 교장실의 문을 잡았을 때, 내가 어땠을 것 같아? 어떤 심정이었을 것 같아? 상상해봐, 한심하게도, 도움을 청하러 교장실로 달려간 것인데도, 아랫배가 싸했어. 정말 아랫배가 싸한 거야. 여자들이 생리할 때 아픈 그 느낌이 뭔지 조금 알 것 같다 싶을 정도로. 갑자기 문을 열 용기가 없어지는 거야. 교장실 문이 너무 거대해 보이고, 그 안에 앉아 있을 교장은 그보다 더 거대할 것 같았어. 도저히 문을 열고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그 때까지 나는 교장도, 교사도 만나지 못했어. 그냥 애들이 알려줬지. 어느 교실로 가서 수업을 하면 된다고. 그게 말이 돼? 시간제로 왔는데 교장도, 교감도, 교사도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는 게? 그런 학교가 어디 있어. 옆 교실에서 분명 수업하는 소리는 들렸거든. 그렇다면 지금까지 헛것을 듣고 있었나? 교장실 문손잡이에 올린 손을 천천히 내렸어. 교장실 문을 열 수가 없던 거야. 그 문을 열면 내가 견딜 수 없는 거대한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교장실 문을 잡고 있을 때 경직되어 있던 애들 표정이 갑자기 환해졌어. 타이밍 좋게 수업종이 울렸지. 그런데 한 명도 교실로 돌아가지 않는 거야. 다들 날 보면서 웃고 있어. 선생님 종 쳤어요. 얼른 가요. 내가 교실로 돌아가야 애들도 돌아갈 것 같더라고. 그래. 가자. 나는 포기했어. 교장실 문을 열기를 포기하고, 교사들을 만나기를 포기했지.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 왜 교장을 만나려 했는지 잊었다는 거야. 도대체가 기억이 나지 않더라고. 뭔가 울컥울컥 올라왔지만 금세 잊었지. 나는 쉬는 시간 내내 복도를 돌아다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교무실로 가지 않았어. 무서웠거든. 그냥 유령처럼 복도를 돌아 다녔어. 유령처럼 애들 앞에서 수업했고. 애들은 다들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서, 얼굴만큼 창백하게 수업을 듣고. 아니 내 수업을 듣는 게 아니고 각자의 몽상에 빠진 얼굴을 하고서 수학문제를 기계적으로 풀었지. 나는 관성으로 수업을 하고 애들은 관성으로 앉아 있고.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도 모르겠더라고. 그냥 모든 순간이 끝없이 이어지는 영원 같았어. 얼마간 수업을 하고 교실에서 나오는데, 복도 끝 계단에 어떤 남자가 서 있는 거야. 상상해봐. 모든 존재를 삼킬 것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암흑을. 그 암흑 속에서 유달리 빛나고 있는 늙은 남자를. 도대체가 그 학교에서 세라복을 입은 여자애들 말고는 한 명의 어른도 보질 못했는데, 분명 푸른 경비복을 입은 늙은 남자가 서 있는 거야. 경비복을 입었으니 경비겠구나 싶어서 꾸벅 인사를 했어. 그러면서도 몸에 긴장을 놓지 않았지. 이상했어. 왜 이제야 어른이 나타난 거지. 엷은 주름 밑에 있는 눈이 번뜩이고, 그 눈으로 나를 이리저리 관찰하는 것 같았어. 그러더니 손을 들고는 자기 쪽으로 오라고 손짓하더라고. 애들은 아직 교실에 있었어. 수업이 좀 일찍 끝나서 종이 아직 치지 않았었거든. 나는 애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남자에게 나아갈 수 있었어. 어둠이 삼켜버린 계단에 다다랐을 때, 나까지도 어둠과 이 비현실적으로 밝은, 너무 밝아서 주름 하나하나가 선명한 남자에게 삼켜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복도의 끝, 계단의 시작, 그 경계에 발을 내딛자 남자가 갑자기 나를 확 끌어당겼어. 그리고는 막무가내로 나를 데리고 학교 밖으로 나갔지. 아까까지는 겁이 났었는데, 내 손목을 무지막지한 힘으로 붙잡고 끌고 갈 때에는 무섭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어. 그냥 아 그러려니 싶었어. 아니, 그 이상으로, 뭔가 후련하고 고마웠어.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 같기까지 하더라고. 나를 데리고 교문 밖으로 나간 남자가 물었어.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 같습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했어.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아까 그랬잖아. 학교 안에서는 늘 같은 시간이 영원히 이어지는 것 같았다고. 그냥 멈춰있는 하루 같았어. 그래서 하루도 흐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더니, 남자가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거야. 아니라고. 일주일이 지났다는 거야. 그리고는 말했지. 당신 뭔가 잊어버린 것 없습니까? 몽롱히 취해있던 의식이 점점 선명해졌어. 내 시야를 가리고 있던 안개가 걷힌 거야. 내가 말했어. 동생, 동생이 없어졌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굳은 얼굴로 학교로 올라오는 경사진 길을 가리켰어. 그 길 밑에 동생이 서 있는 거야. 울먹이고 있더라고. 남자가 말했어. 나는 이 학교 경비요. 선생님 동생은 처음부터 저 학교 안에 없었소. 나는 모든 걸 이해할 수 없었어. 일주일이 흘렀다는 것도, 동생이 저 학교 안에 없었다는 것도. 남자는 내 생각을 꿰뚫은 듯 말했어. 저 학교는 시간이 다르게 흐르지. 하루가 일 년 같고, 일 년이 하루 같은 곳이요. 당신이 원하는 것은 저 안에 없지. 그렇지만 열심히 찾게 되지. 누구나 그렇지 않소. 생각해보면 저 학교나 여기 이 밖이나 크게 다른 게 없지. 여기도 하루가 일 년 같고, 일 년이 하루 같고, 당신이 원하는 건 여기 없고. 나는 저 학교 애들에 대해, 왜 교사를 볼 수 없었는지에 대해, 교장에 대해 물었어. 경비가 답했지. 학교 애들은 이미 저 안에 익숙해졌다고. 모두 처음엔 나와 같은 어른이었지만, 나중에는 순한 학생이 되었대. 모두들 교사, 아니면 어떤 일이 있어서 이 학교를 오는데, 그들 모두 나처럼 길을 잃고, 교장실 문 앞에 선다고. 하지만 교장실의 문을 연 사람은 아무도 없었대. 그 중 완벽하게 적응하게 된 사람은 학생이 된다는 거야. 그리고 사실, 교장은 없대. 그래서 내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학교에 교장이 없는 게 말이 되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하더군. 애들이 곧 교장인데 뭐 때문에 교장이 필요합니까. 나는 그제야 모든 걸 납득하고 남자에게 인사했어. 나를 저 안에서 끌어내주어서 감사하다고. 남자는 희생자를 저 안에서 이 바깥으로 데려올 사람은 학교와 학교 밖, 그 경계에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했어. 수시로 학교 안과 밖을 청소하는 자신밖에 그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나는 동생과 경사길을 내려왔어. 저 안에서 있었던 일을 곱씹고 있는데, 경비가 내 뒤에 대고 말하더군. 사실 저 안에 있는 애들도 희생된 거요. 어떻게 집에 잘 돌아올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어. 나중에 핸드폰을 확인했더니 여러 사람이 연락했더라고. 나에게 연락한 사람들에게는 이 일을 얘기해야 하잖아. 너가 제일 먼저 연락한 사람이었고.

   그의 에스프레소는 식어 있었고 나의 망고 스무디는 다 녹아 물이 되어 버렸다. 앳된 알바생은 컵을 닦고 있었고, 남자의 얼굴은 비장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혹시 이 사람이 꿈을 꾼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정말 진지한 것 같았고, 나는 그 진지함을 견디기 힘들었으나 진지함을 깰 용기도 없었다. 우리는 식은 에스프레소와 다 녹은 망고 스무디를 얼른 마셔 버리고 산뜻하게 헤어졌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무슨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인가 싶었지만 사실인 것도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진지한 태도를....... 그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때로 현실이 꿈보다 더 꿈같을 때도 많고. 그 다음 사람은 누구일까. 또 그 창백한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자신이 찾는 것을 영원히 찾지 못하게 될 사람은 누가 될까. 몽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가 멈춰 섰다. 남자가 겪었다는 일을 생각하느라 어떤 노선을 달리는지 모르고 있었다. 창밖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이었다. 나는 얼른 버스에서 내렸다. 내린 곳은 버스정류장 표지판이 없었다. 핸드폰을 켜고 길찾기를 찾아 눌렀지만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지.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 봤다. 내 뒤에는 가파른 경사길 위에 낡은 건물이 있었다. 여중이다. 건물 군데군데 균열이 가 있고, 창문 밖으로 노란 전구의 불빛이 힘없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집에 가야 하는데.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집으로 갈 수 있는지 물어볼 사람이 필요했다. 잠시 머뭇거리다 학교로 걸어 들어갔다. 오르막길을 걷는 내내, 정문에 발을 딛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고, 꿈을 꾸는 듯 깃털보다 가벼운 무게감으로 공중에 붕 뜬 것 같았다. 유영하듯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 세계 자체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내가 환영인걸까, 이 세계 전부가 환영이고, 사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걸까. 창문 밖으로 검은 세라복을 입은 여자애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모두 표정이 없었다.


오랜만에 써봤네요ㅋ

제가 꾼 꿈을 모티브로 썼는데, 분량 상관 없이 재미있게 썼습니다ㅎㅎ

작가의 이전글 강박에 대한 강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