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과 속도, 그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개인적으로도 어떤 브랜드에게 감동하거나, 팬이 되는 순간은 자잘하지만, 아주 사소한 디테일을 경험했을 때다. (예를 들면, 문자 메시지 하나를 보내더라도 고객이 궁금해 할만한 포인트나 다음에 할 법한 액션을 딱 집어서 제시해준다던지) 고객으로서 이런 디테일을 마주하게 되면, 얘네는 꽤나 고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구나 하는 묘한 감동이 올라오기도 하면서, 계속 그 브랜드를 지켜보게 된다.
특히 공간도 마찬가지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디테일까지 꼼꼼하게 챙긴 공간은 들어섰을 때 느낌부터 다르다. 비싼 옷과 저렴한 옷은 마감이 어떻게 되어있는지만 보면 딱 알 수 있듯이, 화장실의 위생도나 가구 배치, 책상, 선반, 조명 등등 여러 가지 오감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야 하는 곳이 '공간'인만큼 디테일 하나 하나가 어긋나면, 미묘하게 어색한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나 또한 (참고로 내가 공간에 대해 느끼는 것과 내가 공간을 잘 기획하느냐는 명백히 별개의 문제다...)
최근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도 오죽하면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 않나. 마블도 그 거대한 세계관을 가지고, 소름돋는 디테일로 스토리를 만들어내기에 팬들은 거기에 열광한다. 해리포터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덕후로 만들어내는 이유도 거대한 세계관과 디테일한 설정이 있기에 가능한 이유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디테일'에서 나온다. 사랑받는 브랜드는 '디테일'이 남다르다.
운이 좋게도 갤럽 강점검사 Gallup Strength Finder+컨성팅을 20대에만 3번을 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계기가 된 검사인데(강추) 시기는 각각 취준생(대학교 3학년) 1년차 사회초년생, 일이 꽤나 손에 익은 3년차쯤이었다. MBTI는 20년동안(..) ENFP에서 바뀔 생각을 안하는데, 신기하게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에 따라 내 강점이 왔다갔다 했다. (※참고로, 갤럽에서 말하는 강점은 단순하게 잘하는 것이라는 고정된 값의 능력치라는 개념보다는, 어떠한 환경 안에서 나를 움직이는 동기motivation + 내가 탁월함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 + 사용했을 때 나다움을 느끼는 역량에 가깝다고 한다)
취준생, 사회초년생일 때는 동일하게 '최상화maximizer'가 1순위로 나왔고, 나 또한 0에서 50을 만드는 것보다 50인 것을 99로 만드는 것에 더 즐거움을 느꼈기도 했었다. 그래서 어떠한 프로젝트나 콘텐츠가 주어지면, 디테일하게 하나 하나 최상의 퀄리티를 만들기 위해 몰입했었다. 그런 과정들이 즐거웠었다. '이 이상 내가 더 잘 만들 수 없겠다' 싶을 정도까지 만들지 않으면 불안했었다.
하지만 점점 나는 콘텐츠 마케터로서 최상화라는 나의 강점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인데, 첫 번째는 내가 느끼는 100% (완벽하다) 의 퀄리티와 남이 느끼는 100% (잘 만들었다) 는 너무나도 명백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100%의 퀄리티는 어쩌면 자기 만족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나는 나 자신을 극한까지 표현하는 예술가나 크리에이터가 아닌, 콘텐츠 마케터로서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전혀 가치를 만들 수 없는 직군이다 보니 더더욱 피부로 와닿았다. 오히려 시간에 쫓겨 30분만에 뚝딱 만들어낸 콘텐츠가 대박이 터지는 경우도 있었고, 이틀동안 끙끙대면서 만들어낸 콘텐츠는 쫄딱 망한 경험도 했었기 때문이었다.
두번째 이유로는 정신없이 생존을 위해 고민해야 해는 스타트업스러운 환경에 계속해서 일하다보니, 조직에서 필요한 강점이 달랐다. 빠르게 테스트하고, 일단 해보고, 고객에게 직접 물어보고...정신없이 많은 것들을 해치워야 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다보니, 점차적으로 퀄리티를 올리는 작업보다는 일단 무엇이든 해보는 실험 정신이 비즈니스의 성장을 위해 더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두 번째 검사 결과에서는 최상화는 top5에서 쏙 내려가고 적응Adaptability 가 최상위로 치고 올라왔다. (나머지는 비슷비슷하게 나왔다.) 그러니까 하나의 과제를 붙잡고 진득하게 퀄리티를 올리는 것보다는 지금, 여기에 충실해서 당장 눈 앞에 떨어진 과제를 잘 해결하는 데 최적화된 인재(?)로 거듭난 것이다. (실제로 긴급한 상황이나, 모든 것이 정신없이 굴러가는 상황에서 빠르게 일을 처리해내는 데에 뿌듯함을 느끼는 편이다. 숨겨둔 내 강점이 치고 올라온 것이다.)
일하는 환경에 맞춰 내가 일하는 방식과 사고방식까지 변화된 것이다.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다. 그렇게 내 일하는 방식이 바뀌다 보니 오히려 예전의 최상화(maximizer) 의 장점은 무뎌지게 되고, 무슨 일이든 적당히, 잘, 빠르게 해내야 하는, 지금 현재의 닥친 일을 해결하고 처리하는 데에 시간을 쏟다보니 디테일에 대해서는 금방 까먹게 되었다. 일단 적당히, 빨리 쳐내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게 된다. 좋은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면서, 사실상 좋은 브랜드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디테일'을 까먹게 된 것이다. 물론 제한된 시간과 리소스 안에서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때로는 제한된 시간과 리소스라는 핑계 아래에 '적당히' 하고 마는 건 아닌가 싶다. 이런 상황이 괴롭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라고 말한다. (정확하게는 속력...) 하지만 비즈니스에서는 속력도 중요하고, 방향도 중요하다. 다시 돌아가자면, 성공하는 브랜드는 디테일에 민감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폰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심플하고 직관적인 UI (심플할수록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하드웨어 적으로는 '마무리감' 에 열광하듯 말이다. 결국엔 어느 순간 디테일도 챙기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성장하는 단계에선 일단 빠르게 실험하고 뛰어들 때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다가 한 번 디테일을 놓치게 되면 고객에게도 '적당한' 브랜드가 되기 싶다. 그냥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브랜드 말이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무언가 일단 시도해보고, 성취해보고, 교훈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때로는 멈춰서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정리를 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지만 성장이 있다. 브랜드도 인생과 마찬가지다. 목표를 향해, 임팩트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내달릴 필요도 있지만, 때론 멈춰서서 방향은 이게 맞는지, 디테일을 다잡을 때가 필요하다. 물론, 비즈니스 목표에 따라 초창기 J커브를 그려야 하는 성장기엔 디테일이 후순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초기 성장기를 지나서, 브랜드로서 자기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굵직한 성장을 해나가야 하는 시기에 디테일의 부족은 오히려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생각보다 고객은 디테일을 하나 하나 민감하다. 디테일 하나에 팬이 되기도 하고, 안티가 되기도 한다. 디테일과 속도, 그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다가 퀄리티와 양까지 함께 가기엔 참 어렵다. 그렇다고 모두 다 챙길 수 없다. 특히 스타트업과 같은 환경에서는 결국엔 효율과 효과라는 우선순위에 따라 필요한 것은 취하고, 필요없는 것은 버리는 과감함도 필요하다. 하지만 가끔은 욕심을 내서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노력을 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디테일과 퀄리티, 속도와 임팩트 그 두 마리 토끼 말이다. 어렵지만, 어쩌면 우리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성공하는 브랜드란, 결국엔 그 어려운 것을 해내는 브랜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렵다. 답은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적당히'는 하지 말자.
스스로의 다짐을 위해 글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