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급 공무원의 재산신고
공무원 재산신고는 주로 7급 이상의 건축·토목·환경·식품위생 분야의 대민 관련 인·허가 관련 부서의 공무원들이 온라인으로 재산을 등록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진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8급 나부랭이도 재산신고공무원의 대상의 된다는 것을 알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귀찮을 따름이었다.
부동산 관련부서의 회계업무를 맡고 있으니 뭐 그런가 보다 하였지만, 몇 년 전 LH 임직원 투기사건의 불똥이 지방직 말단 공무원에게도 튈 수 있다는 놀라운 나비효과를 느끼며 몇 번의 재산신고를 하면서 뜻밖의 수확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재산신고로 인해 부부의 신뢰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편에 대한 나의 신뢰가 커진 것이다.
공직자윤리시스템이라는 곳에서 자동 조회해 준 금융 데이터에 따르면 남편은 내가 모르는 예금이나 계좌를 전혀 보유하지 않았거니와, 그 흔한 남자의 비상금도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공무원은 돈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며 쥐꼬리만 한 월급을 불평하던 나를 오히려 북돋아주던 사람이지만 사실은 꼬박꼬박 생활비 주려고 정작 본인은 빠듯하게 살았던 것일까? 그 생활비를 아껴 쓰며 남편 몰래 예금을 차곡차곡 쌓었던 여우 같은 공무원 와이프는 공무라는 명분으로 개털도 없는 남편의 금융내역을 또 샅샅이 살펴보고 있는 꼴이었다.
나는 평생 큰돈을 벌어본 적도, 넉넉한 월급을 받아본 적도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고, 야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소시민의 삶을 살았다. 그래서 박봉이라는 공무원 월급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6년 전 160만 원이 조금 넘는 첫 1호봉을 받고도 그 정도면 월급 많이 오른 것이라는 7급 주무관님의 이야기에 운이 좋다고 까지 생각했다. 아마도 어머니 집에 빌붙어 살고 있었던, 흔히 말하는 상대적 박탈감 따위라곤 없었던 철없던 이상주의자가 공무원이 되면 가능한 일이었다.
남들이 얼마나 벌고 사는지, 옆동네 아파트가 얼마짜리인지 흔한 투자에도 관심이 없었던 직관형 인간이 공무원이 되었으니 더욱더 부자가 될 일은 없을 노릇이었다. 결혼하여 아이도 생기고 내 집 하나는 있었야겠다는 생각에 기껏 생각한 재테크가 저축밖에 없었는데, 그제야 나의 월급이 너무 초라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공복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기에는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는데, 공복이라는 자부심이 초라한 월급을 뛰어넘기에 공무원들의 자존감은 몇 년 새 폭삭 무너져 버린 듯하다. 빈번한 비상근무와 선거업무 만이라도 현실에 부응하는 처우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편의 재정상태를 본의 아니게 탈탈 털게 된 공무원 아내는 그 어떤 공무원보다 청렴한 그의 재산상태를 보고 마음이 찡했다. 단 한 번도 생활비를 밀린 적도 없고, 가끔은 보너스까지 건네주었지만 이 남자는 계좌에 100만 원도 안 되는 비상금을 쥐고 공무원은 돈 벌려고 하는 직업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것인가. 돈 버는 재주가 없는 아내는 공직자 재산신고 때마다 남편이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