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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근육 Apr 04. 2023

늙은 엄마지만 재미있게 해 줄게

43살에 첫 출산을 결심한 이유

내가 출산을 결심한 것은 행정복지센터 민원대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주민센터 업무라는 것이 민원서류의 발급과 신고의 수리 등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일이 많은데, 그중 출생신고의 접수는 다소 까다롭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업무였다. 출생을 세상에 알리는 신고 가능자는 부모나 동거 친족으로 한정적이다. 출생한 병원의 정확한 주소와 태어난 시간도 살펴야 하며, 아이의 한자 이름을 정확히 전산에 기록하는 특별한 주의도 필요했다. 엄마, 아빠의 입장에서도 아이의 출생신고는 많은 준비를 요구했다. 아이의 등록기준지를 정하고, 아빠 성의 본을 알아봐야 하며,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정한 아이의 이름, 또는 작명소에서 귀하게 받아온 이름을 드디어 세상에 내놓는 떨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다소 빽빽하게 채워야 하는 출생신고서의 작성은 법정대리인으로서 첫 부모 숙제이자, 아이의 존재를 주민등록등본 또는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시키는 보람된 행위이다. 이는 말단 공무원에게도 꽤 흥분되는 작업이기도 했다. 지자체에서 마련한 출산 축하 선물을 드리는 소소한 즐거움은 덤이었다.



정작 내가 출산을 결심한 것은 출생신고 때문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식을 낳고 싶다는 생각은 사망신고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사망신고를  처리할  때마다 삶의 마지막 공적 행위가 이곳에서 끝난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었다.  사망신고는 그 절차가 상대적으로 매우 간단한데, 신고 가능자는 친족 외에 조건을 갖춘 타인도 가능하다. 사망신고서에 기입할 사항은  출생신고처럼 복잡하지도 않다. 사망을 증빙하는 확인서만 있으면 사망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일은 아이의 탄생보다 간소하고 신속하게 처리된다.


그날은 고인의 형제분이 사망신고를 하러 오셨다. 보통 고령으로 돌아가시는 분이 사고나 질병으로 돌아가시는 분들보다 많기 때문에 사망의 신고자는 고인의 자녀가 많다. 형제가 사망신고를 한다는 것은 자녀가 없다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50대 나이에 돌아가신 고인의 가족관계등록부에직계존속(부모) 외에는 배우자나 자녀는 보이지 않았다. 기록할 사항이 적다 보니 가족관계증명서에도 하얀 여백이 많이 보였다. 중년을 지난 사람의 가족관계증명서에 여백이 많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여백이 많은 만큼 고인은 심플한 삶을 사셨을까?  혹은 그 여백을 굴곡 많은 삶으로 채우진 않았을까? 지금 내 가족관계증명서어떠한가?




결혼을 하기 전에 매우 간소했던 나의 가족관계등록부는 배우자가 생기면서 약간 풍성해졌다. 그깟 서류에 한 줄 더 생기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림으로 견준다면 엄청난 화폭의 변화였다. 그리고 자녀가 생겨 그곳에 한 줄을 더 만든다면 나의 인생 기록이 지금보다는 더 풍요로워 보이지는 않을까? 자식을 낳는 것이 누구에게는 큰 축복이 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계획에 없던 사고가 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최소한 나는 생을 마감할 때 누군가의 자식이 아닌 엄마로서도 살아보았다는 흔적을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작은 계기가 된 것이다.


한때 비혼을 생각하기도 했었고, 칭얼대는 아이를 키우느니 강아리 3마리를 키우겠다고 생각했던 철없는 아줌마는 그렇게 43살에 첫 출산을 하게 되었다. 투철한 모성애를 장착하고 아이를 낳은 것은 아니다. 혹시라도 남들 보기에 초라한 가계도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있었다. 죽을 때 사망신고 해 줄 자식이라도 만들어야지 라는 얼토당토 한 동기가 있었다는 것도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의 확인은 생각보다 기뻤고, 태아를 품은 10개월은 경이로웠으며, 출산은 아팠지만 무척 감격스러웠다. 정말로 감사하게도 나는 출생신고를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아이는 공룡 이름을 줄줄 외울만큼 부쩍 성장했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이렇게 축복스러운 이벤트를 겪으면서도 굳이 걱정거리 하나를 뽑자면 부모가 나이가 많아서 아이가 혹시라도 나중에 창피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학교라도 갈라치면 아빠는 운전기사인척 하기로 공모했고, 엄마는 뭘로 할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서 잠시 보류 중이다. 아이는 가슴을 열면 태양광 배터리가 있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데 늙은 엄마는 부족한 체력을 맥주로 충전하며 최전방에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낳은 인생이 그전 인생보다 인류학적으로,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 긍정적일 것이라는 신념으로 행복한 육아를 하고 있다.


 40대에 하는 출산은 예상외로 장점도 꽤 다. 아이를 손주 보듯이 바라보게 되니 별 욕심 없이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를 외치게 된다. 세련된 엄마는 아니지만 뽀뽀는 많이 해줄게! 젊은 엄마는 아니지만 재미있게 놀아줄게! 이런 대안책으로 아이와 퉁쳐볼 생각이다.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유아기가 엄마로서 가장 그리워할 시절이라는데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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