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쫒기거나 위협 당하는 보통 그런 꿈들을 일컫어 ‘악몽(Nightmare)’ 이라고 합니다. 보통은 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다 잠에서 깨어 납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세상을 꿈속에 비유하자면 잠에서 ‘깨어남’ 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죽음’ 으로 비유할수 있습니다. 꿈과 현실의 입장이 반대인 셈입니다.
영원 입장에서야 인간은 그저 꿈속의 생물체들일 테지만 인간 에고 입장에선 이 사바 세계는 실제 체감하며 살아내야만 하는 현실입니다. 즐거움과 괴로움, 아름다움과 추악함이 공존하며 엉켜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즐거움이 가득한 디즈니 랜드라기 보다는 악몽처럼 감당해야할 괴물의 존재가 버겁습니다. 말세기 인지라 예외가 거의 없습니다. 신체 멀쩡하고 굶주리지 않은자들의 자만심은 단지 현실속에서 괴물을 만나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꿈속에서 깨어나지 않은채 그 괴물은 나의 꿈속에 갇힌 존재이고 꿈을 꾸는자가 자신임을 눈치 채는것이 자각’ 이라면 각성은 그것을 이해하고 꿈을 재 창조 하기 위해 행동하는 ‘루시드 드림 (자각몽)’ 상태로 진입 하는것을 의미합니다. 영화 ‘매트릭스’ 에서 네오가 각성하는 과정이 그러합니다. 매트릭스 안에서 탈출하는것이 아닌 매트릭스 안에서 매트릭스 시스템의 근본을 인식합니다.
꿈속에선 누가 주인공 인가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찾는것이 아닌 누가 꾸는 꿈인가? 꿈을 꾸는자는 누구인가? 꿈에서 깨지 않은채 깨닫게 되면 꿈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각성’ 을 향해 갑니다. 자각을 바탕으로 매트릭스 구조를 인지해 나가는것이 수행의 의미 입니다.
각성은 영원이 자신의 꿈속으로 들어와 있음을 말합니다. 영원이 꿈꾸는 꿈속에 있음을 자각하는 자가 영원을 만날수 있을것입니다. 에고 입장에선 영원과의 접점을 찾고 합일화 하는것이 곧 도를 구하는 목적일것 입니다. 도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영원하지 않다면 그것은 도가 아닐것입니다. 영원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히 영원하지 않은것에 집착해 매달려 있기 때문일것 입니다.
영구한 시간속에서 궂이 의미 같은걸 따지진 않을것 같습니다. 영원하지 않은것에 집착할수록 꿈꾸는 자의 기억속에서 멀어지고 이내 꿈속의 미망이 되어 갈것이라 말이죠.
* 나의 기록은 항상 글을 작성하는 시간대에 반응하고 철 지난 시간속으로 흘려 보냅니다. 공감이라는 파동을 통해 제 시간에 연이닿는 누군가와 소통을 하고 대화를 합니다.
쓸데없는 넋두리처럼 보이지만 눈앞의 괴물을 보고 간절히 꿈에서 깨어나길 바라며 질문하는 에고에겐 (원하는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또다른 깨달음의 Key가 되어 줄수도 있을것 입니다. 뛰놀아야할 아이들에게 자각과 각성을 요구함이 아닙니다. (나를 포함해) 괴물과 마주선 선구자들을 통해 집단 각성이 올바른 도리의 방향을 찾길 기원함 입니다.
https://youtu.be/QPROkOaqE_4?si=P6vMgQcAOtnc5p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