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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헌 May 22. 2018

인간에게 '위대한 생존'이란

책 <위대한 생존>을 읽고 쓰다




#1

하물며 경복궁이나 창덕궁에만 가도, 닳아버린 돌계단을 슥슥 문질러보면서 이 공간을 스쳐간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해 꽤나 곰곰이 생각해보는 편이다. 그런데 이천 년도 더 넘게 생명을 이어온 생명체들이라니, 이미 그들이 지닌 각자의 역사가 참 심원하게도 느껴진다. 레이첼 서스만의 <위대한 생존>은 지구 상에 현존하는 초고령의 생명체들을 사진과 글로 기록한 책이다. 책에 소개되는, 나무를 위시한 다양한 생명체들의 나이는 어리게는 2000살부터 많게는 40만-60만 살까지 다양하다. 무슨 말이냐면, 책 속 주인공 몇은 인류가 최초로 불을 쓰기 시작한 즈음부터 지금까지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거대한 대자연 속에서 인간이 보잘것없음을 크기와 부피로 느끼는 순간들이 오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길고 긴 시간 앞에서 평균수명 80여 세의 인간이 어찌나 짧게 살다가 가는 존재인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여전히 생존해있음에도 이미 화석같이 느껴지는 책 속의 생명체들을 보며 결기를 다잡아보게도 된다. 책 속에 등장하는 꽤나 많은 나무들이, 그 나무 기둥의 안쪽이 텅 비어버린 탓에 오랫동안 벌목을 피할 수 있어 최근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했다. 아무도 나를 탐내지 않는 - 안쪽이 텅 비어버린 나무 기둥처럼 살다가 허망하게 사라지거나, 그저 인고의 세월을 버티며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그나마 위대하다는 수식어와 함께 기록되는 삶이라니. 다른 생명체를 인간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 역시 오만일 수 있겠지만, 이들의 일생을 인간에 빗대어보자니 일견 서글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나는 책 속의 나무들보다는 더 굵게 살아야지 않것나. 기왕이면 길고 굵게 사는 것이 제일 좋겠다만, 요새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



#2

경이롭게 생명을 이어온 위대한 생존체들에 대한 기록을 보고도 내 멋대로 반대로 다짐한 것과는 별개로, <위대한 생존>의 기획은 참 재미나다. 책 속 표현을 빌자면 '예술이면서 과학인'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꽤나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또한 순간을 포착하고 기록하는 사진은 역설적으로 그 찰나 너머의 시간들에 대해서 상상하게 만들어준다. (잠깐 딴 소리지만, 몇 년 전 가보았던 애니 레보비츠 사진전에서는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혼자 감동했었더랬다.)


그리하여 충실히 수록된 <위대한 생존> 속 생명체들의 사진을 넘기다 보면, 역시나 자연스레 수천수만 년의 이야기를 지닌 주인공들의 역사를 상상해보며 혼자 사색에 잠기게 되는 거다. 심지어 얘네는 사람도 동물도 아니고 식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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