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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들래 Jun 04. 2023

영화 같은 삶, 삶 같은 영화

16부작이 끝났습니다

느닷없이 전망 좋은 방, 물음표로 시작하는 자유로움

느닷없이 스트레이트 스토리, 길 위에서의 성찰

느닷없이 빨간 머리 앤, 그린 게이블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삶

느닷없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멀미와 구토 그리고 현실

느닷없이 로마의 휴일, 김영사로부터 받은 여행기 제안

느닷없이 화양연화, 홀연히 떠난 앙코르와트

느닷없이 포 미니츠, 윤리 시간 5분 스피치

느닷없이 열정의 랩소디, 비극적인 너무나 비극적인 고흐

느닷없이 카모메 식당, 살찐 갈매기 날다

느닷없이 타인의 취향, 나에서 너를 만나는

느닷없이 불멸의 연인, 월광소나타 그 심연의 음악

느닷없이 굿바이, 죽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느닷없이 해피 이벤트, 연애 결혼 출산 우울 화해 노력 행복

느닷없이 처음 만나는 자유, 가로막힌 장애물을 걷어내는

느닷없이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창가에 히비스커스 화분

느닷없이 호프 스프링즈, 지금-여기에서 나를 만나는


16부작이 끝났습니다.

이제 다시 새로운 영화를 관람해야 할 시간입니다.



영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 삶의 일부분을 차지했다.

때때로 나만의 휴일, 온전히 하루를 영화 보는 날로 잡곤 한다.

그리하여 하루에도 서너 편씩 관람하고... 본 영화 다시 보고...

영화 속에서 내 삶의 모습을 만나고, 내 일상을 마주한다.

영화 속에서 그녀의 삶을 만나고, 그의 일상을 본다.

영화 속에서 너의 고민을 만나고, 나의 슬픔을 만난다.

영화가 삶이고, 삶이 영화같이 느껴지는 일상을 살고 있다.

십여 년 전 써 놓은 '느닷없이'라는 시였는데 우연히 문서 정리하다가 찾아서 다시 읽어보았다.

한 편 한 편의 영화를 떠올려보면서. 다행히 16편의 영화 장면들과 내용들이 다 생각났다. 내 대단한 기억력을 스스로 칭찬했다.


보름 전, 홍상수 감독의 추천 영화(영화에 입문하게 했던 영화들로 짐작) 5편을 빠듯한 시간 쪼개서 KOFA에서 모두 감상했다. 5편 모두 좋았다. 홍 감독의 작품세계를 좀 더 이해하게 됐다. 홍 감독의 최근작 <물 안에서>도 관람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는 동안 관객 누구도 일어서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물에 잠긴 듯. 그렇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물 안에 나 역시 침잠한 채 빠져나오지 못했었다. 거부할 수없이 빠져드는 홍상수 표 영화, 다음엔 어떤 인생철학으로 나를 흔들어댈지 궁금해졌다. 그의 영화는 영화라기보다 그저 우리네 삶이다. 홍상수 감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20년이 넘었다. <물 안에서>가 29번째 작품이라고 하니 29편을 모두 관람한 셈이다.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개봉관에서 관람했는데 이번엔 한국영상자료원 상영 시간과 맞아서 관람했다. 그의 영화는 갈수록 진화하는 것 같다. 갈수록 홍 감독의 색깔이 짙게 드러난다. 그저 그의 영화 톤에 나도 모르게 깊이 스며들었던 시간이었다.


새로운 영화가 나올 때마다 챙겨 봤으니까. 홍 감독의 찐 팬임에 틀림없다. 2011년 겨울에 북촌방향에서 우연히 홍 감독을 만났고 반가운 마음에 인사했고, 그때 사랑니 뽑은 상태에서 거즈만 입에 물고 있지 않았어도 제대로 대화를 좀 나눠봤을 텐데... 그해 북촌방향 영화를 보면서 고현정 캐릭터를 보고 그냥 웃음이 나왔다. 그 이유는 단 두 사람만 알겠지. 암튼 홍 감독이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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