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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들래 Jun 04. 2023

파블로 카잘스와의 만남

고전음악과 독대한 순간


1970년대 후반, 밤이면 어김없이 책 한 권과 라디오를 품고 이불속으로 숨어들던 고딩 시절, 팝송에 빠져있던 여고생의 귀에, 어느 순간, 강렬하게 꽂힌 음악이 있었으니 바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었다. 연주는 '파블로 카잘스'였다. 고전음악과 독대한 순간이다. 여고생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던 첼로 음색이라니. 이후 나는 파블로 카잘스의 연주로만 바흐를 듣고 싶어 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얼마 전 강화도로 여행을 떠났다. 떠나기 전, 강화도에 갈 때면 항상 발걸음 하는 동검도 365 예술 극장 사이트를 검색하다가 파블로 카잘스의 <침묵>이라는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을 알았다. 꼭 내 여행 일정에 맞게 파블로 카잘스와의 만남이 계획된 것 같았다. 소름이 돋았다. 곧바로 예약을 했다. 


히틀러가 단 한 번만이라도 라이브로 듣고 싶어 했던 음악, 하지만 결국 들을 수 없었던 파블로 카잘스의 첼로! 요요마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거장 파블로 카잘스의 생애가 고스란히 담겨 있던 영화를 보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파시즘과 프랑코의 독재 정권에 대한 항의 표시로 피레네산맥의 작은 마을 프라다에 칩거하며 공식적인 연주 활동을 중지하고 침묵했던 파블로 카잘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이민을 떠났지만 그는 끝까지 프라다에 머물면서 그의 민족 카탈로니아 인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결국 카잘스의 침묵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한 예술가로서 세상의 타락과 변절을 막아보려는 작지만 거대한 몸짓임을 영화를 보며 깨닫게 되었다. 카잘스와 싱크로율 100%의 연기를 펼쳤던 존 페라의 열연에도 박수를 보냈다. 영화 엔딩 10분간 이어지는 파블로 카잘스의 실제 음악을 오마주 더빙한 장면은 잊지 못할 명장면이었다. 


영화 관람 내내 2014년 몬세라트에서 그의 음악의 향기를 느꼈던 추억이 떠올랐고 카탈로니아 음악당 주변에서 그의 향기 나마 느껴보려고 배회하던 내 모습이 오버랩됐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중 '프렐류드',  파블로 카잘스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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