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하고 강력하게, 앱 속 한 줄의 마케팅
* 이 글은 Digital Insight 8월호에 기재된 글입니다.
하루에 앱을 몇 개나 쓰시나요? 일어날 때 알람 앱, 출근길 카카오 내비, 틈틈이 보는 유튜브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식재료를 주문하는 쇼핑 앱, 퇴근길 편의점에서 결제할 때 삼성페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쓰는 카카오톡까지. 우리의 일상은 손바닥만한 모바일 기기와 그 안에 들어 있는 사각형 아이콘을 바탕으로 움직입니다.
앱은 마케터들의 전쟁이 벌어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어떤 단어가 적합할까?’, ‘하십시오체를 쓸까, 반말을 섞어볼까?’, ‘17자를 12자로 줄일 수 없을까?’, ‘이모티콘을 넣어볼까?’. 여러분이 보는 앱 속 텍스트는 마케터와 서비스 기획자가 하는 온갖 노력의 결정체인 셈입니다. 한정된 디스플레이 영역에서 단 몇 글자만으로 특정 행동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하죠. 마케터는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하고, 촘촘히 기획된 텍스트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최근 여러 앱(혹은 모바일 서비스)을 쓰면서 발견한 작고 인상적인 마케팅 모먼트를 공유할까 합니다. 여름 방학 시즌이니 쉬어가는 느낌으로 가볍게 읽어볼까요?
귀신같이 광고를 알아채는 사용자를 대상으로 할 때 마케터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광고임을 대놓고 드러내거나 절대 들키지 말거나. 사실 후자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광고가 아닌 척 했다가 들키면 후폭풍이 큽니다. 최근 유명 유튜버들의 PPL 논란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래서 마케터는 ‘광고긴 한데 잘 봐달라’ 전략을 씁니다. 딱 봐도 광고이고 마케팅인 걸 알게 하지만, 피식 웃게 만들거나(어쭈 요놈 봐라?) 혹하게 만드는(속는 셈치고 해볼까?) 것입니다.
브랜디는 ‘신규 가입 시 1만원 쿠폰 증정’이라는 혜택과 ‘하루만에 무료 배송’이라는 서비스를 내세워 신규 사용자 확보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광고를 통해 유입된 비로그인 사용자가 상품을 열어보면 위와 같은 팝업을 띄우는 것이죠.
한 눈에 봐도 광고 같죠? 하지만 비슷한 팝업들과 달리 이 팝업은 창을 닫는 데 조금 더 긴 시간이 걸립니다. 왜 그럴까요?
‘비싸게 구매하기’라는 텍스트로 인한 심리 효과 때문입니다. 손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비싸게’라는 단어는 무의식적으로 ‘더 좋은 조건으로 살 수 있는데도 굳이 손해를 보는 것’이라는 상실감을 심어 놓습니다. 앱을 다운받기는커녕 구매할 생각조차 없다고 해도요. 그러니 잠시 멈칫하게 되고 팝업을 다시 읽은 뒤에 버튼을 누르는 거죠.
이러한 과정에는 버튼의 색깔도 한몫합니다. 처음에는 브랜디의 시그니처 컬러 계통인 붉은색을 긍정적 답변에 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
‘구매하기’라는 최상위 CTA 버튼에는 보통 해당 쇼핑몰 고유색을 적용합니다. 그런데 브랜디의 ‘구매하기’ 버튼은 검정색이죠. 앱 전반적으로 무채색 톤이 활용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신규 가입을 유도하는 팝업에는 붉은색을 썼기 때문에 앱에서도 특히 눈에 잘 띄는 겁니다. 그리고 ‘비싸게 구매하기’ 버튼은 회색 톤으로 처리됐죠.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느낌입니다. 습관처럼 NO에 해당하는 부정적인 답변을 선택하려다가 ‘비싸게’라는 단어와 버튼의 색상 때문에 잠시라도 멈추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비싸게 구매하기’를 누르더라도 잠시 멈춰 생각하게 하는 몇 초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여러 서비스를 이용하며 자주 겪는 불편 중 하나가 매번 로그인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굴 인식을 쓰거나 비밀번호를 저장해두면 편하지만, 기억도 안 나는 아이디와 패스워드 때문에 씨름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거든요. 그래서 많은 앱이 사용자의 앱 진입 난이도를 낮추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대표적인 방안이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한 소셜 로그인입니다.
앱이 없거나, 있어도 규모가 작을 경우 이런 소셜 로그인 기능을 넣는 게 어렵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사용자의 불편을 덜 수 있을까요?
단순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 버튼 색상입니다. 이건 제 실제 경험인데요, 왼쪽 커먼유니크 로그인 페이지에서 몇 번이나 로그인에 실패했습니다. 짜증이 나서 자세히 보니 로그인 버튼이 흰색, 회원가입 버튼이 검정색이더군요. 성격 급한 저는 계정정보를 입력한 뒤 텍스트를 제대로 읽지 않고 회원가입 버튼을 누른 겁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하며 다른 페이지나 앱들을 살펴봤습니다. 보통 해당 페이지에서 가장 중요한 CTA 버튼은 모두 시그니처 색상을 쓰거나, 중요도가 높아보이는 진한 색상을 쓰더군요. 그 외에는 모두 연한 색상을 쓰거나 라인만 간단히 잡아주고 있었습니다. 오른쪽 마르헨브리즈의 로그인 페이지처럼요.
내친 김에 최근 겪었던 최악의 로그인 경험을 하나 더 소개해볼까 합니다. 요 며칠 저는 여러 가지 증권 앱을 받아 계정을 만들었습니다. 생각보다 훌륭한 사용자 경험을 구축한 앱이 많아서 금융권 서비스는 고지식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금융 앱은 보안이 매우 중요한 만큼 로그인 절차도 간단치 않았어요. 보통 OTP 비밀번호나 공인 인증서 확인 등 타 서비스보다 더 많은 로그인 절차를 요구하더군요. 그렇게 열심히 설정한 인증서 비밀번호, 늘 그렇듯 금방 까먹고 말았죠. 결국 인증서 비밀번호 입력 실패 횟수를 넘겨 차단 해지가 필요해졌고, 고객센터의 도움을 받아 앱에서 바로 차단을 해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아이디를 적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계속 ‘아이디 찾기’ 화면만 뜰 뿐, 차단 해제 페이지로 넘어가질 않는 겁니다. 결국 다시 고객센터에 전화했고 제가 ‘다음’ 버튼이 아니라 ‘ID찾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죠.
부끄러웠지만 화도 났습니다. 왜냐고요? ‘다음’이라는 중요한 CTA 버튼이 자판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정 페이지에 진입했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비어있는 칸에 값을 입력해 채우는 일입니다. 그러고 나면 자연스럽게 버튼을 찾게 되죠. 일단 아이디를 입력한 저는 그 화면에서 보이는 유일한 버튼인 ‘ID찾기’를 누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최근 선물받은 카카오톡 CGV 영화 예매권을 사용해봤습니다. 온라인 상품권이나 멤버십 할인 방법이 꽤 귀찮았던 경험이 있어 나름대로 각오를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쉬워서 놀랐습니다.
CGV 앱에서 결제 단계로 넘어가면, 맨 위에 ‘카카오 선물하기 예매권 사용’이라는 버튼이 보입니다. ‘2. 관람권/기프트콘 사용’ 항목에 넣을 수도 있는 걸 찾기 쉽게 따로 빼둔 것이죠. 덕분에 바로 예매권 사용 페이지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예매권 사용 페이지에서도 쿠폰 번호를 간단하게 복사할 수 있어서 편리합니다. 카카오톡 예매권 화면에서 ‘복사하기’를 눌러 번호를 붙여넣을 수 있죠. 예매권이 인식된 다음부터는 그야말로 일사천리입니다. 제가 사용한 예매권은 영화 외에 팝콘과 음료도 포함돼 있었는데요, 이 경우 남은 교환권은 앱 내에 자동 저장돼 다음에 쉽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CGV와 카카오의 서비스 기획자들이 상의해서 만들었을 사용자 경험이겠죠? 소소해보이지만 사용자가 불편을 겪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잘 기획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용어가 통일되지 않은 점이 아쉬웠습니다. ‘예매권’과 ‘쿠폰’을 혼용하고 있었거든요. 이 또한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용어에서 혼동이 오면 아무리 잘 만든 UX나 매뉴얼이 도리어 어렵게 느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모든 마케터는 욕심쟁이입니다. 우리 제품과 서비스가 얼마나 좋은지 사용자가 알아주길 바라죠. 이왕이면 많은 사람이 사고, 보고, 이용하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런 자부심과 애착이 때로는 사용자 경험을 망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기도 하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방금 앱을 설치한 신규 사용자를 대상으로 가장 먼저 유도해야 하는 행동은 회원가입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빠르게 로그인창으로 이동하도록 하는 게 앱의 첫 페이지에서 중요한 CTA겠죠.
플레이윙즈는 앱에 진입하면 지금 핫한 프로모션을 가장 먼저 보여줍니다. 페이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캐러솔 배너죠. 그리고 그 아래에 자연스럽게 로그인과 회원가입을 유도합니다. 첫 페이지를 본 사용자는 ‘아 플레이윙즈에 회원가입 해두면 이런 좋은 프로모션에 대한 알림을 받을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회원가입을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반면 롯데ON은 특가 프로모션을 담은 캐러솔 배너가 작게 들어갑니다. 물론 엄청나게 많은 상품이 있으니 여러가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일 강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요? 캐러솔 배너 위의 작은 고정 배너는 시선을 분산시키기까지 합니다. 쇼핑 앱에서는 상품단위로 검색해볼 확률이 높은 점을 고려하면 배너 하단에 있는 각 서비스로 가는 버튼들이 첫 화면에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두 앱이 공통적으로 제공하는 개인 맞춤형 정보 제공 페이지를 볼까요. 플레이윙즈는 이 페이지의 모든 텍스트가 로그인하면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혜택 즉, ‘맞춤형 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네요. 화면 하단에는 실제 알림을 보여줘 가입 시 얻게 될 베네핏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훌륭한 전략이죠.
롯데ON은 상대적으로 직관적이지 않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가입 베네핏을 일러주는 텍스트는 다소 욕심이 과했던 것 같습니다. ‘주문 상품의 배송 정보’를 보여주는 기능은 사실 웬만한 쇼핑 앱이제공하는 것이니 사용자가 매력을 느끼기 힘듭니다. 차라리 ‘내가 관심있어 한 신상품의 입고 소식 알림’만 강조하면 어땠을까요. 상하단의 수많은 버튼이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도 아쉽습니다.
앱 메시지는 아니지만, 최근 본 마케팅 텍스트 중에서 좋았던 것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Good: 타깃의 애거니(agony)를 짚어주자!
내 사업이 망하길 바라는 사장님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신경쓸 일이 많죠. 위 이미지 속 클래스101과 배달의 민족 광고의 타깃은 이런 ‘고민거리 많은 사장님’인 듯 합니다. 그런데 둘은 자신의 서비스가 여러분(타깃)에게 얼마나 좋은지 늘어놓지 않습니다. 그저 타깃이 가진 가장 큰 고민과 관심사, 즉 ‘사업의 성공’을 같이 기원하고 고민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간단하지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카피라고 생각합니다.
산뜻한 아이스 브레이킹!
처음 앱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회원가입은 항상 부담입니다. 오랜만에 돌아와 로그인하려 해도 당장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기억해내야 한다는 게 불편함을 주죠. 북저널리즘은 ‘잘 다녀오셨어요?’라는 조금은 낯간지러운 멘트로 이런 부담감을 덜어줍니다. 별 것 아닌 듯해도 이런 말 한 마디가 쌓여 브랜드와 서비스의 이미지가 됩니다.
앱 내에서 마케팅은 눈에 띄지 않을수록 효과적입니다. 사용자의 동선이 물흐르듯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목표니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가급적 많은 주목을 받은 뒤 전환을 끌어내는 정통적인 마케팅과는 전혀 상반된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재밌죠.
가끔 이렇게 여러 앱을 탐독해보는 건 어떨까요? 페이스북 피드 염탐하듯 앱을 하나하나 열어보다 보면, 요즘은 이런게 유행이구나, 이 화면은 이런 목적을 가지고 있구나 등 다양한 아하 모먼트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직접 UT나 서베이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 시장 조사도 할 수 있으니 마케터나 기획자로서 꽤 쏠쏠한 공부법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