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마케팅을 해야 하나요?’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한 세 가지 원칙
마케팅의 역사는 길지 않습니다. 산업화 이후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기업들이 ‘상품을 살 이유’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 근현대 마케팅의 시작이라고 하죠. 짧은 역사가 무색할 정도로 마케팅이 다루는 범위는 빠르게 넓어져왔고, 지금도 매일 진화하고 있습니다. 제가 마케터 커리어를 시작했던 2010년대를 기점으로 SNS는 주요 마케팅 채널로 주목받기 시작했죠. 최근에는 파이썬이니 SQL이니 하는, 데이터 통계 기술이 마케터의 필수 소양이라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케터라고 다 같은 마케터가 아니라 브랜드 마케터, 콘텐츠 마케터, 퍼포먼스 마케터 등 직군도 세분화되고 있습니다. 옆으로 넓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세부 분야의 전문성도 깊어져 감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죠.
신입 시절 회사 브랜드의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고 신상품 출시 게시물을 올렸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이렇게 과거를 추억하게 될 때가 꼰대(다른 말로는 고인 물)의 시작이라고 하더군요. 고작 만 9년 일한 경력으로 라떼 명함 달기는 좀 이른 것 같습니다만, 최근 회사에서 이런저런 신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학생 때도 잘하지 않던 공부도 병행하고 있다 보니 예전에 있었던 일들이 자주 생각납니다. 특히 마케터로서 가졌던 첫 경험들이요. 처음 썼던 보도기사, 떨리는 마음으로 집행했던 첫 페이드 광고, 네이버의 가이드를 보고 한 땀 한 땀 써 내려가던 검색광고 T&D, 구글링 해가면서 만들었던 브랜드 하우스까지. 써놓고 보니 정말, 많은 일을 했었네요.
이렇게 많은 일을 해왔고 또 해야 할 이 시대의 마케터로서, 제가 일할 때 꼭 잊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스스로를 다 잡는 이정표로 활용하는 것들이죠.
이때 ‘직접적’이란 숫자를 의미합니다. 우리 사업부, 우리 회사의 목표가 매출 상승이라면, 내가 한 마케팅 활동이 매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가 숫자로 환산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 사업부의 매출이 10% 올랐다면, 내가 수행한 마케팅 활동 (예를 들면 광고)의 성과는 반드시 10%와 상응하게 상승세를 그려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마케팅이란 우리 회사의 브랜드와 상품을 시장에서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자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브랜드의 가치를 쌓아가는 활동이든 SNS 광고 집행이든 마케팅팀에서 행하는 모든 활동은 우리 상품을 잘 팔기 위해서 하는 활동입니다.
물론 PR처럼 당장 직접적인 효과로 환산할 수 없는 마케팅 활동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경우에도 어떻게든 비즈니스 골과의 상관관계를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발행된 보도 기사의 내용 일자, impressions (얼마나 넓은 범위로 배포되었는지), reach(조회수 혹은 클릭수)를 raw-data로 기록합니다. 기사 내 CTA로 연결된 링크에 utm 코드를 넣을 수만 있다면 더 좋겠죠. 하지만 그건 대부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PR 기사의 성과를 보통 reach로 판단합니다.
특정 기사가 나간 후 reach가 상승하는 건 당연히 기대되는 결과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PR 기사로 상품을 접한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여러분은 뉴스나 유튜브 채널에서 관심이 가는 신상을 보면 어떻게 하시나요? 보통 초록창이나 G포털로 가서 ‘검색’을 하죠. 따라서 우리는 PR 기사 배포 후 검색광고 혹은 오가닉 서치 트래픽 추이를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만약 reach가 급등한 것과 비슷한 추세로 검색량이 늘었다면? 효과적인 PR 활동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겠죠. 우리 사이트 검색 트래픽의 평균 구매 전환율을 알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평균 전환율과 PR 이후의 전환율을 비교하면 더 직관적으로 효과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 마케팅 활동의 비즈니스 기여도를 숫자로 확인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수많은 마케팅 활동 선택지 중에 ‘지금 해야 하는 것’이 무언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행했던 각 마케팅 활동들의 성과 지표를 수치로 가지고 있다면, 지금 비즈니스 골 달성 현황에 맞는 최적의 도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번 달 매출 목표가 10% 미달인데, 주어진 예산이 아직 조금은 남아있다면? 그 예산으로 디지털 광고 구좌를 늘렸을 때 부족한 10%를 채울 수 있을지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을 겁니다. 이미 목표를 초과 달성했으나 예산도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면, 웹사이트나 블로그에 새로운 콘텐츠를 올림으로써 오가닉 트래픽을 더 유도하면서 다가올 다음 분기를 미리 준비할 수 있죠. 우리의 자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인 마케팅 믹스를 구성하기 위해서라도 모든 활동을 수치화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제품이 기획되고, 생산되어, 판매되는 하나의 흐름 속에 마케팅은 가장 마지막 단계에 위치합니다. 이미 완성되었거나, 완성될 예정인 제품을 시장에 선보이는 역할을 주로 맡으니까요. 일본 드라마 ‘의붓엄마와 딸의 블루스’에서 엄청난 성과로 부장 자리에 오른 주인공은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파는 상품이 세상에서 최고다”라는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고요.
하지만 현실 세계는 드라마와 다릅니다. 마케터 여러분, 우리 솔직해집시다. 단점이 뻔히 눈에 보이는 자사 제품의 홍보 카피를 쓰면서 자괴감을 느낀 적, 있지 않나요? 광고에 달린 부정 댓글을 보고 괜히 내가 주눅 들었던 적은요?
제품의 판매 라인의 가장 마지막에 있다는 건, 역으로 그 누구보다 고객과 가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내보낸 기사에 독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왜 우리 광고에 이런 부정적인 댓글을 달렸는지를 들여다보면 어쩌면 고객센터에서도 얻을 수 없는 고객의 진짜 속 마음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고객센터 직원과 이야기할 때와 기사에 댓글을 남길 때 중 언제가 더 솔직한지 생각해보세요.)
지금 주어진 것이 단점 투성이라고 해서 그냥 어쩔 수 없다며 외면하고 상황이 지나가기 만을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주의 깊은 모니터링으로 장기적인 제품 개선에 도움을 줄 것인지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예] 제품 개선에 영향을 주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 고객 만족도 조사
특정 앱을 사용하다가 ‘우리 앱에 만족하시나요?’라는 질문과 함께 스코어링을 요청하는 팝업을 본 적이 있나요? 또 온라인 쇼핑 후 리뷰를 작성하고 구매 금액의 몇 퍼센트를 포인트로 받아본 경험, 있으시죠? 우리는 이런 간단한 방법으로 실제 사용한 고객들이 느낀 좋은 점과 불편했던 점을 가감 없이 수집할 수 있습니다. 고객 만족도 수집 장치를 심을지 말지, 심는다면 어떻게 심어서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낼지는 오롯이 마케터의 몫입니다. 이렇게 모은 고객의 소리를 주기적으로 개발팀과 함께 리뷰해보는 건 어떨까요?
제가 아는 마케터 후배의 이야기입니다. 그 후배는 기업용 데이터 분석 툴 전문 기업에 다니고 있는데, 최근 더 많은 기능이 탑재된 업그레이드 버전을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번 버전은 이전에 수기로 해야만 했던 작업들이 간단한 UI 조작으로 해결되어 사용자가 원하는 데이터 분석 결과를 쉽게 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습니다. 이제 사용자들은 본인들의 회사 상품이 잘 팔리고 있는지, 어떤 채널에서 매출이 떨어지고 있는지를 더 빨리 확인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 거죠.
마케터로서 후배는 꽤 많은 광고비를 사용해 디지털 광고를 집행했습니다. 무엇보다 베타 버전 테스트에 참가했던 고객사들의 실제 매출이 꽤 많이 상승했는데, 그 결과치를 광고로 풀어냈기에 성과에는 자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이전 버전 출시에서는 전환율이 4%까지 나왔던 광고가 2%보다 낮게 떨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본인의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후배는 집행했던 모든 광고의 세부 정보를 하나하나 뜯어봤고, 그 결과 본인이 어디서 잘못했는지를 찾아냈습니다. 광고를 통해 소구해야 하는 대상, 즉 타깃을 잘못 잡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다시 돌아가 볼게요. 이 상품의 가장 큰 장점은 ‘매출 등 데이터 분석을 보다 쉽고 편리하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여러분의 회사에서 매일의 매출 현황 등을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CEO가 직접 원본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만지는 회사는 거의 없을 겁니다. 대부분 우리와 같은 실무자가 원본 데이터를 가공하여 보고서 형태로 만들죠. 즉 이 제품의 실 사용자는 실무자입니다. 실무자가 가장 원하는 건 뭘까요? 매출이 급증하는 걸까요 아니면 내 일이 편해지는 걸까요? 물론 매출이 오르면 너무 좋겠습니다만, 그들의 마음은 ‘매출 XYZ% 상승’보다는 ‘3시간짜리 업무를 10분 만에!’라는 카피에 끌릴 확률이 높습니다. 후배는 그걸 놓쳤던 거죠.
지금 여러분이 내보내고 있는 메시지가 타깃의 페르소나, 우리의 고객이 진짜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인지를 한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하는 건 우리가 원하는 고객과 실제 사용하는 고객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앞에서 예를 든 후배의 회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기업용 프로그램 구매의 최종 의사결정자는 CEO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후배 입장에서의 타깃 페르소나는 당연히 CEO였죠. (실제로 B2B 페르소나 설계에 있어서 최종 의사결정자와 의사결정 구조는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의사결정을 위한 과정에는 분명히 실무자가 원하는 방향성이 녹아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마케팅 역시 수익 창출을 기반으로 한 영리 활동임을 절대 잊지 마세요. Paid Media로 기사 하나 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광고비도 만만치 않죠. 게다가 마케팅이나 광고 소재 만드는 일은 어떻고요.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마케팅 활동의 성과를 숫자로 입증해내지 못한다면, 이렇게 많은 비용, 그보다 큰 노력을 들여놓고도 ‘마케팅은 돈만 사용하는 부서’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