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한부모 양육비 왜곡
여러 이혼가정을 소재로 하는 가족 드라마 한 편이 ‘양육비’라는 뇌관을 건드렸다. KBS2TV 주말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 에서 이혼 후 아들 김지훈(문우진 분)을 키우고 있는 한부모 송가희(오윤아 분)가 출연하는 대목이 문제가 됐다.
자녀 양육비를 지급 중인 비양육자와 교제하는 인물이 그 양육비를 받는 송가희에게 “얼마나 편해. 집에서 놀고먹어도 따박따박 양육비 들어와. 은근 부럽더라”는 대사를 날리는가 하면, “남자가 있으면 뭐해? 전 부인이랑 자식한테 월급이 댕강 잘려나가는데”라고 덧붙이면서 양육비를 자녀뿐 아니라 전 배우자에게 쓰이는 돈으로 규정한다.
더 기함할 장면도 이어진다. 송가희는 “내가 살게. 나 양육비 받잖아”라며 지인들과 함께 먹은 값비싼 식사 대금을 과시하듯 계산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더 가관이다.
“모자라면 더 보내 달라 그러지 뭐. 그런 건 군소리 없이 잘 보내주거든.”
대본을 집필한 양희승 작가는 언론을 통해 “일상적이며 소소한 이야기가 주는 ‘공감대’를 원하는 시청자들이 있을 것“이라며 “결혼과 이혼에 대한 인식 차이를 ‘리얼’하게 그리고 싶다”고 '한 번 다녀왔습니다'의 집필 의도를 밝혔다.
문제의 장면을 통해 전처와 현 연인 간의 신경전을 극적으로 그리려는 작가의 의도를 감지 못하는 바 아니나, 그 소재로 ‘양육비’를 택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양육비를 ‘집에서 놀고먹어도 따박따박 들어오는 돈’, ‘전 배우자에게 쓰이는 돈’, ‘모자라면 군소리 없이 더 받을 수 있는 돈’으로 표현한 것이나, 그 양육비를 개인의 과시를 위해 쓰는 캐릭터는 현실을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설정이다.
아니, 단순히 현실감각 없는 오판을 넘어 한부모에 대한 모독에 다름없다. 만에 하나 작가가 대외적인 발표와는 다르게 ‘공감대’가 아닌 ‘공분’을, ‘리얼’이 아닌 ‘모멸’을 의도한 것이라면 완벽한 적중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리얼’한 양육비의 실체인지, 한부모들은 도대체 무엇에 ‘공감대’를 느낄지 ‘따박따박’ 밝혀보겠다.
한부모 열 명 중 일곱 명이 한 번도 양육비 못 받았는데 '따박따박'이라니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8년 한부모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자녀를 양육하는 한부모 중 15.4%는 배우자와 사별했다. 일단 양육비라는 것 자체가 없이 살아간다. 비양육자가 존재함에도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는 무려 78.8%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단 한 푼도 양육비를 받은 적 없는 한부모 비율은 73.1%다.
‘따박따박’이라는 조건을 위해 좀 더 깊이 파보자. 최근 1년 동안 양육비를 지급받은 적 없는 한부모가 94.6%다. 다시 말해 당신이 만나는 한부모 스무 명 중 한 명만이 최근 1년 내에 양육비를 받았다.
‘평균이니까 그렇겠지, 특정 집단이 평균을 깎아 먹고 있겠지’라는 짐작도 통하지 않는다. 부모의 나이와 성별, 자녀의 나이와 성별, 부모의 학력, 지위, 소득수준, 한부모가 된 기간 등 여러 기준으로 통계를 쪼개 보아도 ‘최근 1년 동안 양육비를 받은 적 있다’는 응답이 10%를 초과하는 그룹이 단 한 곳도 없다.
최근 1년 동안 양육비를 받은 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드라마 속 송가희는 상위 5%의 케이스에 해당한다. 여기에 ‘모자라면 군소리 없이’는 고사하고 ‘다달이’라는 조건만 붙어도 송가희의 위치는 최상위로 치솟을 테다.
'운 좋게' 양육비 받아도 양육 한부모의 삶은 대부분 가난하고 불안한데
자, 우리는 앞서 양육비를 정기적으로 받는 경우가 극히 일부임을 확인했다. 그러면 그 극히 일부는 과연 얼마를 받고 있을까. 다시 ‘2018년 한부모가족실태조사’로 돌아가 보자.
‘정기적으로 양육비를 지급하는 경우’에 한하여 실제 주고받는 월평균 양육비는 자녀 1인당 57.1만 원으로 집계된다. 여기에 양육비를 못 받는 78.8%를 합산해 함께 평균을 내보면 겨우 10만 원을 넘는 수준이다. 자식이 먹고 자고 입고 씻고 배우는, 즉 생존하는 데에 비양육자가 쓰는 비용이 한 달 밥값만치도 안 되는 게 대한민국 양육비의 실체다.
자녀의 양육비는 부모의 합산소득 및 자녀의 나이, 그리고 양육자와 비양육자 간 분담비율에 따라 결정되는데 가정법원에서 그 기준을 마련해 발표한다.
드라마 인물정보에 따르면 아들 김지훈의 양육비를 지급 중인 인물 김승현(배호근 분)은 항공사 기장이고 연봉은 1억 이상이다. 결혼 후 자녀를 가졌다고 가정했을 때 경력은 최소 13년 차다. 그의 월 소득이 대략 900만 원이라고 하자. 그리고 결혼 및 출산 이후 항공사 승무원을 그만둔 송가희의 월 소득은 0원이다.
가장 최근 공표된 ‘2017년 양육비 산정 기준표’에 따르면 부부합산 월 소득이 900만 원인 경우 만 6~11세 자녀 1인당 양육비는 216만 4000원이다. 그렇다고 김승현이 아들 김지훈의 양육자에게 그 금액을 전부 지급하는 건 아니다. 이 금액은 말 그대로 자녀 1명을 키우는 데 드는 총비용이다.
대개는 양육비 분담금 산정 시 표준 양육비를 비양육자:양육자 간 6:4로 나눈다. 그 비율을 적용하면 김승현이 김지훈에 대해 지급할 양육비는 약 130만 원이다. 양육자가 소득이 없는 경우 7:3으로 분담하기도 한단다. 그래도 약 150만 원이다. 비양육자가 무려 ‘억대 연봉’을 받는다 하더라도 양육자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은 고작 월 130~150만 원에 불과한 것이다.
소득수준을 고려했을 때 김지훈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씻기고 가르치는 데에 응당 들어가야 할 표준 비용이 216만 원이다. 받은 양육비를 모두 김지훈에게 써도 30~40%가 모자란다. 현실 속 송가희는 실질적, 물리적인 자녀 양육을 전적으로 맡음과 동시에 돈을 벌거나 아껴서, 혹은 노동력으로 때워서라도 자녀의 몫을 충당해줘야 한다. 물론, 양육자 본인이 먹고 자고 살아가는 몫은 거기에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양육 환경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장시간 과잉노동이 만연해 있고, 공적 돌봄이 그 노동시간을 커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하지 않은 탓이다. 한부모는 혼자서 일-가정 양립을 사수하기 위해서 보다 많은 양육 시간을 보장받는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리기 십상이다.
비양육 한부모가 자녀 양육비의 60~70%를 대면서 온전한 일자리와 온전한 개인의 삶을 보장받을 때, 양육 한부모는 자녀 양육비의 40%를 대면서 고용 불안정, 경력 단절, 저임금 일자리를 감수함은 물론 자녀 양육에 따르는 돌봄 노동과 가사 노동까지 몽땅 떠안는 구조다.
개인의 성취, 여가, 풍요 같은 건 바랄 수도 없다. 제대로 양육비를 받고 있는 극히 일부의 케이스조차도 이렇게 살고 있단 말이다. 이렇게 비대칭적으로. 이렇게 불공평하게.
"작가님이 PD님이 한부모였다면… 이런 극본과 연출 하셨겠어요?"
'한 번 다녀왔습니다'를 방송하는 KBS는 개인 유튜브 채널이나 팟캐스트가 아닌 대한민국 공영방송사다. 그들은 그 어마어마한 스피커가 지니는 파급력과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더 신중해야 했다. 더 세심해야 했다. 더 예민해야 했다. 한부모 가정의 현실을 적확하게 들여다보고 또 보았어야 했다.
‘당연히 양육비 받아서 키우겠지’라는 세간의 속 모르는 지레짐작을 바로잡지는 못할망정 양육비를 ‘집에서 놀고먹어도 따박따박 들어오는 돈’, ‘전 배우자에게 쓰이는 돈’, ‘모자라면 군소리 없이 더 받을 수 있는 돈’이라고 왜곡하면서 한부모를 모독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지금도 아이의 생존권인 양육비를 받기 위해 애쓰는 양육자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도대체 저 대사 속의 가정은 어디에 있는 건가요? 저런 가정이 있기는 한 게 맞나요? 실제 한부모의 노고를 조사하고 인터뷰하신 건 맞나요? 당신 가족 중 한부모가 있다면 이러한 극본과 연출을 내셨을까요? 본인들이셨다면요?”
시청자 게시판 속 어느 한부모의 물음표로 가득한 절규가 바로 그들이 짚어야 할 ‘공감대’다.
*칼럼니스트 송지현은 사회생활과 잉태를 거의 동시에 시작한 ‘11년차 워킹맘’이자 그동안 다섯 번을 이직(당)한 ‘프로 경력단절러’입니다. 한부모 가정의 가장으로서 2인분의 몫을 해야 하는 ‘시간빈곤자’이나 실상은 1인분, 아니 0.5인분조차도 할까 말까 하기에 스스로를 반쪽짜리 ‘파트타임 엄마’라 칭합니다. 신문방송학 전공 후 온갖 종류의 대필을 업으로 삼아왔지만 이번 연재를 통해 처음 자신의 이름으로 글을 쓰게 된 ‘생계형 글짓기 노동자’이기도 합니다.
*2020년 <베이비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브런치에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