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출산을 경험하지 않아도 어른은 될 수 있어요.
이번주에는 이틀 간격으로 애엄마 친구들 셋을 만났다.
정여울 산문 '마흔에 관하여'에서 나왔던 글이 계속 생각나는 한 주였다.
작가의 여동생이 첫 아기(첫 조카)를 가졌을 때,
작가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면서도 가눌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고 표현했다.
내 아기를 품에 안고 기뻐하는 일이 자신에게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에.
나 또한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기 때문에 매우매우 공감한 부분이었다.
얼마전까지도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없는 자로서 큰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친구들의 결혼 소식과 출산 소식에 축하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인생의 패배자가 된 것 같은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나는 꽤 독립적이고 외로움을 거의 안타는 성향이라
내 인생에 결혼이 필수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 때문에 질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주변으로부터 결혼 소식을 들을때마다
내 인생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다는 생각에 초조해졌고
결혼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씩 아이를 가질 때마다
내 인생에는 아무런 결과물이 없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그.러.다.가
결혼을 해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옛말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좌절하다가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결혼을 계기로 독립을 하게 되는 우리나라에서나 하는 말이란 결론을 냈을 때
내가 덜 된 어른이란 생각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집이나 차 계약을 스스로 할 수 있고 내 몸뚱아리는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입장에서
저런 고리타분한 말에 휘둘릴 필요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출산과 육아 경험 없이는 아직 덜 큰 어른이라는 생각도 지울 수 없어 한참을 괴로워했는데
이제 나는 괜찮다.
동물을 돌보거나 아기를 돌보는 일은 매우 이타적인 일이고
이타적인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희생이 뒤따른다.
자신보다는 타자(자녀 혹은 반려동물)가 더 소중한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시간과 노력을 내가 아닌 다른 생명체에게 오롯이 희생할 자신이 절대로 없다.
그렇다면 난 일단 엄마가 될 자격이 없기 때문에 그냥 엄마가 되지 않으면 된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더불어
나만 없어 고양이를 외치며 발을 동동 구르던 나는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난 반려동물을 키워서도 안되는 성향인거다.)
지겹게 따라붙던 컴플렉로부터 이제는 좀 자유로워진 것 같다.
내 한 몸만 감당하면 되는 이 생활이 매우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