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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호 Nov 22. 2021

모녀 싸움은 칼로 물 베기

14년 동안 함께한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늘 집에만 계시는 엄마에겐 자식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특별한 가족이었다.

펫로스 증후군으로 1년을 넘게 우울해하는 엄마를 모시고 유럽여행을 떠났다.

엄마와의 첫 해외여행이라 설레는 마음도 잠시. 짐을 싸면서부터 우리는 싸우기 시작했다.

유럽의 한 나라만 가는 것이 아닌 5개의 나라를 10일에 걸쳐 가는 여행이었기에 옷을 챙기는 일이 참 애매했다. 이탈리아는 더웠고 스위스와 파리는 추웠기 때문이다.

어떤 옷을 챙겨야 하냐는 엄마의 질문에 얇은 옷하고 두꺼운 옷 다 챙겨야 한다고 했더니 엄마가 싸 둔 짐을 풀어보니 오리털 패딩과 겨울 코트로 캐리어 하나가 꽉 차있었다. 엄마가 지금까지 싸 둔 짐을 풀며 말했다.

"엄마, 이렇게 챙기면 어떻게 해. 벌써 가방이 다 찼잖아. 그리고 이건 너무 두꺼워서 안돼. 얇은 옷은 없어? 반팔도 챙겨야 한다니까"

"네가 춥다며 그래서 이거 챙긴 거야"

"아니 이건 너무 두껍잖아. 그리고 추운 나라도 있고 더운 나라도 있어서 다 챙겨야 한다니까"

엄마는 가만히 나를 지켜보다가 소리치셨다.

"도대체 뭘 어떻게 싸라는 거야!!! 나 안가!!"

갖고 있던 옷을 집어던지고는 안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셨다. 굳게 닫힌 안방 문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이렇게 길고 여러 나라를 가는 것은 처음이라 이것저것 알아볼 것들이 많고 게다가 엄마와 함께하는 여행이라 더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다 보니 예민해있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기분을 풀어드리려 조심스레 안방 문을 열고 들어 보니 엄마는 등을 돌린 채 서럽게 울고 계셨다. 여행을 몇 번 다녀본 나도 힘든 여행 준비가 생전 처음 해외여행을 가는 엄마에게는 얼마나 어려웠을까. '조금 더 상냥하게 말할걸', '먼저 알아서 잘 챙겨드릴걸'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보니 내 말투와 행동에 후회가 밀려왔다. 엄마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건넸다.

"엄마.."

엄마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네가 챙긴 옷들은 다 얇아! 그것만 챙겼다가 거기 가서 감기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제야 풀어헤친 엄마의 짐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내가 입고 다니는 외투들이었다.

엄마와 상의 사이즈가 같아 소매만 접어서 같이 입곤 하는데 평소 엄마와 함께 입는 외투들이 바닥에  풀어헤쳐져 있었다. 엄마는 내가 추워하면 입히려고 모두 챙기신 것이었다. 그 마음을 알고 보니 왈칵 눈물이 났다.

"미안해 엄마. 나랑 여행 가자. 내가 더 잘할게"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드디어 여행을 떠났다.


#첫 나라, 쏘렌토에 도착하다.

원래 엄마 사진을 많이 남기고 추억을 만드는 게 목적인 여행이었기에 한참 엄마를 찍어드리다 보니 내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유럽까지 왔는데 안 되겠다 싶어 카메라 각도까지 딱 맞춰서 엄마에게 이대로 누르면 된다고 알려주고 포인트 장소로 가서 포즈를 취했다.

"엄마! 찍어!"

"엄마! 찍고 있어?"

열심히 뭔가를 누르시더니 "어! 찍었어! 와서 봐봐"하며 나를 부르셨고 달려가 핸드폰 화면을 봤더니 동영상이 찍히고 있었다.

"아니 엄마 이건 동영상이고. 다시! 이거. 이 동그라 버튼만 한번 딱 누르면 돼"

"알겠어. 다시 가서 서봐"

난 다시 사진이 잘 나오는 포인트 장소로 가서 포즈를 취했다.

가만히 포즈를 취한 지 10초가 지나도 아무 말 없는 엄마에게 "찍었어?"라고 하자마자 핸드폰에서 동영상이 시작되는 음이 들리고 엄마는 "이게 또 이러네"라고 하셨다. 난 한숨을 쉬며 엄마에게로 갔다.

"아니 엄마가 이걸 또.." 하며 동영상 취소 버튼을 눌렀다. 짐을 싸면서 싸웠을 때와 마찬가지로 엄마는 내게 갑자기 소리치셨다.

"도대체 사진을 몇 장을 찍는 거야!! 그만 좀 해라!! 나 혼자 돌아다닐 테니까 각자 다녀!!"

화가 난 엄마는 혼자 어디론가 가버리셨다.

사진도 못 건졌는데 화까지 내시니 나도 기분이 좋지않았다. 마음 같아선 정말 따로 다니고 싶었지만 낯선 땅에서 엄마를 잃어버릴까 짐을 챙겨 엄마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혼자 툴툴거렸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돌아다니다가 문득 이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엄마랑 어떻게 온 여행인데 이렇게 보낼 수 없었다. 나도 예쁜 사진 남기고 싶어서 그랬다며 미안하다고 엄마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이셨는지 알겠다고 앞으로 네가 찍으라는 대로 나도 잘 찍어보겠다며 사과를 받아주셨다.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더니 모녀싸움도 그러했다.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차 안, 머리만 닿으면 잠드는 엄마가 웬일로 잠도 안 주무시고 핸드폰을 하고 계셨다. 뭐하시나 하고 슬쩍 핸드폰 화면을 보니 녹색 검색창에 뭔가를 검색하고 계셨다.

자세히 보니 검색창에는 [사진 잘 찍는 방법]이라고 적혀있었다.

사진 못 찍는다고 짜증 내는 못난 딸내미 사진 예쁘게 찍어주겠다고 혼자 조용히 검색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생각해보면 엄마에게 한 모든 것들이 늘 후회였다.

잘하려고 한 것들까지 더 잘할걸이라는 후회로 남았다. 자타공인 효자일지라도 더 잘해드리지 못한 마음이 남는 것이 자식이고 부모는 언제나 그 마음까지 헤아려 나를 더 크게 품고 계시는 분들이다.

자식이 부모를 뛰어넘을 수 없기에 어찌해도 남는 후회는 내 자식을 품으며 갚아나가는 것이었음을 내 아이를 낳고 나서야 깨달았다.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은 어쩌면 어떤 관계보다도 많은 감정이 소모되는 시간일지 모른다. 그것이 가슴 깊은 곳에 차곡히 쌓여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 엄마가 내 곁에 없는 날이 온다면 살 수 없을 것 같지만 아마도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지금까지의 시간이 쌓아놓은 추억과 감정들로 엄마를 기억하며 살아가겠지.


그렇게 오늘도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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