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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호 Nov 25. 2022

버틸 수 있었던 이유


결혼 3년 차.

결혼 1년 차에 아기가 생겼고 출산한 지 1년이 지났다. 아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반복적인 일상.

각자 위치에서 각자 할 일을 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이다. 아기는 하루하루가 달랐지만 우리의 일상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았다.

아기를 일찍 보기 위해 자고 있는 아기를 두고 새벽같이 출근해 1분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칼퇴를 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이고 청소하고 씻기고 놀아주고 재우는 일상. 그 중간중간 아기 옷, 반찬거리, 필요한 용품들을 구매하고 가계부를 작성하며 자금을 관리하는 것까지 내 역할이다.

우리 부부는 점점 서로에 대한 얘기보다는 아기를 통한 대화를 했고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엄마는 집안일을 하며 종종 지겹다는 말을 했다.

그때는 왜 그럴까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나를 점점 잃어가고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내가 해야만 하는 끝없는 집안일과 잠시도 내려놓을 수 없는 역할이 주는 무게감에 대한 지겨움이었다. 그것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함께하고 있지만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더 크게 다가왔다.


그렇게 30년을 살아온 엄마.

아기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가끔씩 눈물이 나고 울적해지는 나 자신을 마주할 때면 엄마가 떠오른다.

시부모를 모시고 살며 혹독한 시집살이에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나 들어오는 바쁜 남편까지. 혼자 우리를 키우는 시간이 많이 외로웠고 슬펐을 엄마. 내게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기에 당연했던 엄마 역할이 엄마도 버거울 때가 있었겠지..


"엄마는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뎠어?"

환갑이 넘은 엄마께 물었다.

"내가 참을 수 있었던 건 외할머니 때문이야."

"외할머니?"

"응. 네 외할머니. 우리 엄마가 나를 시집보내고 성깔 있는 딸내미가 못살겠다고 보따리 싸들고 집으로 올까 봐 매일 밤 대문 밖에 나와 계셨대. 그 소리 듣고 보따리 싸다가도 엄마 생각에 울면서 풀고 그렇게 하다 보니 벌써 이 나이까지 왔네. “


엄마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엄마였다.

매일같이 딸이 올까 밖에 나가보셨던 할머니가 지금의 엄마 같아 마음이 아프고 엄마가 속상할까 봐 말 못 하고 많은 것을 참으며 가정을 지켰을 엄마의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 같아 마음이 울컥했다.

엄마도 나와 같이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구보다 엄마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마음 여린 딸이었음을 깨닫고 보니 엄마로만 보이던 모습 뒤에 30년 전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여인의 모습 그리고 엄마를 걱정하며 그리워하는 한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들의 엄마가 나의 엄마이기전에 누군가의 딸이자 사랑스러운 소녀였고 아름다운 여인이었음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엄마이기에 버티고 엄마 때문에 버티는 그저 착하고 여린 여자일 뿐 어떠한 말에도 상처받지 않는 강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라는 이유로 어디선가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 모를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슈룹 같았던 그녀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슈룹이 되어드려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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