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자 아프지말고
어느 주말 오후 5시
언제나 그렇듯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 먹었냐는 말에 알아서 챙겨먹을테니 신경쓰지말라며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으시는 엄마.
아이와 정신없이 저녁을 보내고 육퇴 후 잠시 숨을 돌리는 순간.
문득 엄마 생각에 전화를 걸었다.
부재중 20통.
보통은 뭔가 화가나더라도 전화는 받으셨는데
아무래도 이상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친정으로 갔다.
친정집 문을 열고 들어갔을때
엄마는 소파에 누워 입을 벌린채 침을 흘리고 있었다.
놀란 마음도 잠시 얼른 일으켜 세워 급하게 주스를 먹여보려했지만
삼키는 행위조차 하지 못해 주스가 그대로 옷으로 흘러버렸다.
도저히 혼자 감당할 수 없어서 119를 불렀다.
119대원분들이 오시기 전까지 가만있을 수 없어 엄마를 일으켜 세우려던 그 때,
"그냥 죽고싶다고! 죽게 냅둬!" 라며 우는 엄마.
그 순간 119대원들이 벨을 눌렀고 집 안으로 들어와 링겔을 꽂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와중에
엄마의 한마디가 뇌리에 박혀 한동안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링겔로 포도당이 들어가고나서야 엄마는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역시나 병원에는 안가도 된다며 병원 가는 것을 거부했고
늘 그러셨기에 제가 잘 보겠다며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구급대원분들을 돌려보냈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이전과는 달랐다.
걱정하게해서 미안하다며 어떻게 저혈당이 오게 됐는지 설명하시던 엄마였는데
정신을 차리시자마자 됐으니까 가라며 죽게되면 죽는거지 라는 말과 함께 차가운 말투로
귀찮은 듯 이만 가보라고 하셨다.
순간 서운한 마음과 함께 죽고싶다는 엄마의 말이 진심이었나 싶어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알겠어 갈게. 엄마 마음대로해!"
그렇게 문을 쾅 닫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내게 계속 전화를 거셨지만 받을 수가 없었다.
몇번이고 엄마가 저혈당이 올때면 달려갔던 시간들이 있었다.
한 두번 겪다보니 하루라도 통화를 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또 자다가 저혈당이 왔을까 자기 전 통화를 나누지 않거나 전화를 받지 않으시면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구나 싶어 집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엄마를 한 해에 3번 정도를 살렸다.
그런데 오늘 엄마의 말을 듣는 순간
엄마는 정말 자다가 조용히 아프지 않게 생을 마감하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나타나 방해한 것이었을까.
자살하려는 사람을 살렸더니 죽게 냅두지 왜 나를 살렸냐고 원망하는 사람.
드라마에서 본 적 있었다.
직접 그 말을 들으니 살기 싫은 사람에게 더 살라고 하는게 옳은 행동인걸까
진정 그사람을 위한 것이었을까.
어쩌면 엄마를 잃고 살아가야할 내 삶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눈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왜 엄마는 살기 싫을까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이 아이랑 하루라도 더 오래 살고싶고
아이를 위해 건강하게 옆에 있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던데
어떤 삶이면 자식에게 그만 살고싶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삐삐삐삐 띠리릭-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남편이 엄마와 통화하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모르는척 방으로 들어가자 남편이 전화를 끊고 내게 와 말했다.
"어머님한테 전화 왔었어. 자기가 전화를 안받는다고. 괜찮아?"
괜찮냐는 말에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엄마가 미안해 너무 속상해 하지말고 엄마가 딸 걱정만 시키네.
엄마 걱정안하게 관리 잘할게 너무 걱정하지마]
[엄마가 우리 딸 걱정하는 것 아는데 엄마가 쓸데없는 말 했어
걱정 안하게 할테니까 너무 속상해하지말고 엄마가 너무 막말했어.
사는 동안 걱정 안하게 할게 미안해]
엄마의 문자를 받고나서야 왜 엄마가 살고싶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
몸이 아픈 엄마는 자기자신에게 지쳐보였다.
자식에게 걱정 끼치는 것도 20년간 완치되지 않는 병과 함께
살아가야하는 삶에 지친 것처럼 보였다.
그냥 나 하나 죽으면 걱정안하고 살아도 될텐데
몸이 여기저기 아프니 그 어떤 것도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내 이기심은 아직 삶은 행복하고자하면 작은 것에도 행복하며
그렇게 작은 행복들을 모아가다보면 살아갈만하다고
그러니 조금만 더 행복하게 우리와 함께 하자고
그렇게 내 곁에 조금만 더 있어 달라고 말한다.
아직 난 엄마를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까
이기적인 딸을 봐서라도 조금만 우리 함께 행복해져 보자고 말이다.
삶은 힘든 것 같다가도 괜찮고
아프기만 한 것 같다가도 힘이 나니까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견디다보면 살아지고
죽을만큼 힘들었던 것들도 죽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게 될테니까
한번 사는 인생 힘들었지만 그럭저럭 잘 살았다고
아쉬움이 남지 않을만큼만 행복을 채워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