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해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면서도
들을 수 없고 답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는 늘 말을 건네셨다.
"엄마, 나왔어"
"잘 계셔, 또 올게"
엄마는 늦은 밤 방안에 들어와 이불을 덮어주며 잠든 나를 토닥여주시곤 했는데 이불 토닥이듯 꽁꽁 언 손으로 할머니의 무덤을 토닥이셨다.
덩그러니 놓인 종이컵 하나에 술을 채우시는 모습 속에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마음이 느껴졌다.
인간의 탄생이 인간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힘든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인간에 대한 신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부모가 때로는 자식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나쁜 부모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내 앞에서 자주 싸우던 부모님을 보며 난 절대 자식 앞에서 싸우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그렇게 누군가에게 좋은 부모가 된다면 그 또한 부모님 덕분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저 고맙다.
우리는 정해져 있는 이별에 무심한 채 살아가다 결국 후회와 그리움을 안고 산다.
계실 때 아무리 잘해도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 사는 내내 채워지지 않는 구멍으로 존재할 이들. 서로에 대한 충분함과 만족이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 관계. 서로 더 주지 못해 아쉽고 후회가 남는 함께하는 시간이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는 관계가 부모-자식 관계다.
함께하는 시간 동안 미움과 원망이 없길 바란다.
그럴수록 자신의 삶에서 그들은 더 깊은 후회와 오랜 그리움으로 자리할 테니.
초등학교 6학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완전히 눈을 감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고 엄마와 이모는 손으로 할머니의 눈을 감기며 많은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 , 우리 걱정하지 말고 편히 잠드셔."
난 그때의 엄마와 이모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부터 난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그 시간을 그들이 세상을 떠나서도 내 걱정하지 않도록 믿음을 보여야 하는 시간이라 믿었다.
부모님이 살아계시지 않아도 그들의 자식으로서 누가 되지 않도록 사는 것이 내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그들에게 다할 도리며 효라 믿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갈 것이다.
함께하고 있는 지금도 '엄마', '아빠'라는 단어가 사무치게 그립고 마음 한켠이 뭉클하다.
함께하는 오늘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