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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파감자 Mar 25. 2022

선생님 놀이

보이글방 수업일지 01.



 산란기에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를 설명하는 글로 시작되는 <국어> 교과서였다. 4명의 식구 중 유일하게 자기 방을 가지고 있었던 나이였다. 5살 어린 남동생이 부모님과 떨어지기 어려워했던 유년시절 중 한 때였다. 당시에는 다음 학기에 배울 교과서를 미리 받고 방학을 하는 식이었다. 아직 상상력이 풍부하고 놀잇감을 곧잘 만들어내던 나는 빳빳한 재질에 왠지 자꾸만 코를 들이박은 채 냄새를 맡고 싶어지는 새 교과서를 펴 들고 선생님 놀이를 했었다. 

 역시나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침대 생활권자였던 나는 싱글 침대 발밑으로 15cm 정도 간격을 두고 4단 서랍 옷장을 두었었다. 당연스럽게도 바닥부터 1, 2층 서랍 깊숙한 곳에 있는 옷가지들은 눈 대신 손의 감각을 이용해 옷가지를 분별하고 꺼내야만했다. 하필 그 옷장 위에 교과서를 올려놓고 침대를 의자 삼아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이야기를 낭독했다. 어엿한 책상과 의자로는 영 놀이의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국어>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였다. 20년도 더 지난 교과서 내용이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알을 낳으려 거센 물살을 헤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연어가 자기 본분을 마치고는 곧이어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내용은 가물하지만 그럼에도 단호한 기억이 하나 있다. 상상 속 교사였던 나는 '... 알은 낳은 연어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라는 부분을 필요 이상으로 애도하며, 마찬가지로 상상 속에 있는 학생들을 또한 위로해주는 장면이다. 너무 상심하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는 교사였다. 

 시간이 지나 실제 수업에서 이 글이 다뤄졌을 때 내가 연출했던 분위기와 확연히 달라 괜히 민망해했던 것도 같다. 내가 열렬한 독서가 였다거나 탁월한 글쓰기 실력을 갖추고 있진 않았을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읽는 행위에 거부감이 없었고, 사춘기 시절 에너지가 응집되는 곳도 단연코 여러 권의 다이어리였다. 나는 자주 읽고 쓰며 그런 삶을 동경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소비적 취미로서 읽고 쓰던 나는 약 20년 후 생산적 수입원으로 읽고 쓰는 일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마음만 먹으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이야기를 낭독하며 말끝을 흐렸던 애도 시간을 실제로 가질 수도 있는 교사 역할이다. 초등 저학년 어린이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게 된 것인데, 수업을 만들어주신 분께서 인문학 수업이라고 거창하게 불러주시는 것을 나는 자꾸만 글방이라고 정정한다. 아무래도 내가 인문학을 거들먹거릴 만큼의 '어른'은 아니잖나 싶은 민망함 때문이다. 

 수업 명칭의 위대함이 다소 작아졌다고 한들 준비하는 마음가짐과 그 분량까지 축소시킬 수는 없다. 밑천도 없이 수업 제안에 예스를 외쳐버린 나는 그만큼의 조급함과 불안을 동력 삼아 30대 들어 처음으로 공부를 했다. 게다가 불행과 다행을 1:1로 섞은 일주일 간의 격리로 나는 방해받지 않는 시간과 37.5도짜리 두통을 벗삼아 오로지 수업 준비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글방 학생의 확진으로 수업은 한 차례 더 미뤄지고, 아프고 난 후 한 치 더 자란 교사와 학생이 드디어 첫 수업을 하였다.



 어린이들은 글쓰기를 당연히 싫어한다는 선배 교사들의 루머는 식빵 러스크와 딸기 주스로 테이블을 세팅했다. 8살과 10살 어린이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트를 상품으로 한 보물 찾기도 했다. 자기 것보다 상대방의 힌트 용지에 더 눈독 들이며 흥분해있는 작은 두 어깨를 바라볼수록 두 뼘 더 큰 어른의 어깨도 점차 말랑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수업 목적을 세우고, 커리큘럼을 짜고, 참고 자료로 쓰일 책을 선정하기까지 2주였다. 어떻게 수업을 진행할지 대략적인 순서를 정하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또 한 주를 보냈었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긴장한 가쁜 숨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래도록,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조치가 필요했다. 나는 초보 운전처럼 초보 교사라는 명패를 스스로에게 달아주고 수업을 만들어주신 선생님의 부담 갖지 말라는 격려를 우황청심환처럼 꼭꼭 씹어 삼켰다. 그래서 너무 노곤해진 탓일까? 본인들이 무엇을 하러 이곳에 왔는지 알고있고, 쓸거리들을 이미 장착하고 있는 두 어린이들 앞에서 나는 지나치게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끔찍하지만 꼰대였다. 보물 찾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반짝였던 두 어린이의 시선은 어느새 선물받은 노트 표지를 나만의 그림으로 채우느라 바빴다. 지금 이들의 귀가 열려있긴 할까? 지혜로운 단호함이 부족한 나는 그림 그리는 눈과 손을 멈추기 위해서라도 준비한 그림책 읽기로 서둘러 넘어가야 했다. 


 8살과 10살의 간격은 20살과 22살의 그것과는 다르다. 8살이 문장을 단어로 끊어 읽을 때 10살은 통으로 본다. 8살은 10살의 글쓰기를 자꾸만 힐끔거린다. 8살은 10살보다 더 자주 지우개에 손이 간다. 8살은 줄 노트 3줄을 1줄 삼아 큰 포인트의 글씨체로 자기의 글을 확인한다. 8살이 <내가 조아하는 것>이라고 제목을 달 때, 10살은 <난 나에 대해서 다 알아>라는 호기로운 문장으로 글을 시작한다. 

 두 어린이 사이의 차이는 지루함과 열등감으로 완결될까? 그게 아니라면 자신감과 성장촉진제로서의 시너지를 보여줄까? 적어도 두 어린이 각각에게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 있다. 10살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완성하겠다는 목표의식이 아주 강하다는 것이고, 8살은 10살 누나도, 책도, 수업도, 선생님도 그저 좋다. 교사에게 이보다 모범적인 학생이 있을까. 수업 시간의 분량을 어린이들에게 최대한 돌려준다면, 말하고 싶은 것을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돕는다면, 말하지 못하는 것까지 해소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다면 연어를 애도하는 구슬픈 낭독 없이도 어린이들은 글 속에서 신나게 자기 표현하며 헤엄칠 수 있겠지. 내가 사라진 자리를 어린이들로 채우는 교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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