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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파감자 Mar 30. 2022

허구 일기

보이글방 수업일지 02.



 두 번째 글방 시간, 벌써 한 아이가 결석을 했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 것은 초등학생에게도 있는 법이다. 이미 예정돼있던 출석률 50프로의 오늘 수업을 일대일 맞춤 과외 형식으로 준비해갔다. 지난 시간 10살 어린이가 쓴 자기 소개 글에 댓글을 달았다. 아끼는 노트가 타인의 글로 덧입혀지는 게 충분히 싫을 수 있으니 포스트잇에, 나답지 않게 단정한 글씨로, 피드백이 아닌 댓글이라는 말로, 북돋아주는 말과 약간의 조언을 적어 붙여두었다. 오늘 수업 중간 쯤에 함께 읽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헌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내가 말릴 새도 없이 벌어졌다. 어린이가 자리에 앉자마자 노트를 펼쳐 지난 시간에 쓴 글 밑에 달린 포스트잇 댓글을 잠잠히 읽는 것이다. 그런 글이 달릴 것을 이미 알았던 사람처럼. 하는 수 없이 나는 그 앞에서 고요히 떨었다. 일단, 지금은 댓글 읽는 시간이 아니야. 정신을 차리고 준비한 순서를 진행했다.


 '지긋지긋한 숙제'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일기'를 구제하는 시간이었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는 마음이었다. 글이 된다 뿐이던가. 찰나는 찰나이기에 더욱 반짝인다. 어린이들은 필히 일기를 써야한다. 반짝이는 찰나보다 더 눈부신 어린이들의 경험과 살아있는 생각, 소중한 감정들을 모두 붙잡아 두어야 하는 것이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남겨주어야 하는 유산이다. 어린이가 자신의 고유성을 잃기 전에 스스로를 아카이빙 해두는 것은 천편일률적인 복제품으로 클 가능성을 줄여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써라!' 명한다해서 써지는 게 아니기에 내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었다. 친구 결혼식에 다녀온 진부한 이야기였다. 일부러 잔잔한 이야기로 시작한 데에는 앞날을 내다본 계산도 들어 있지만 말이다. 지루한 내 이야기를 꾹 참고 들어준 어린이는 평범한 날들이었다고 일축했던 좀 전의 대답과는 다르게 천안 할머니 댁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마저도 질문을 만들어 꼬치꼬치 물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나를 대화 상대로 여겨 대답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어찌됐든 어린이가 들려준 지난 주 경험을 사건, 설명, 생각, 감정 이라는 항목을 염두에 두고 글로 써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린이는 <일기는 싫어!> 라는 당황스러운 제목의 글을 써냈다. '아니, 우리가 방금 나눈 대화는 어디갔지?', '일기 쓰라고 시킨 나한테 시위하는건가?' 내가 충분히 오해할만한 상황이었다. 반항적인 제목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 선생님이 숙제를 일기로 내셨다. 일기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거다. 하지만 걱정 없다. 누나한테 써달라고 하면 된다.

 누나? 10살 여자 아이가 호칭을 모를리 없다. 즉, 이 어린이는 처음부터 자기 이야기가 아닌 가상 인물의 허구 이야기를 지어내왔던 것이다. 알고보니 지난 시간에 쓴 자기 소개 마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노련함이 부족하여 잠시라도 당황해했던 내 모습이 들켰을까? 들켰다해도 어쩔 수 없겠지만, 누구나 하고싶어하는 자기 이야기를 오히려 자꾸 뒤로 감추는 이 어린이의 속내를 아는 것이 더 중요했다.

"부끄러워요."

 3학년이 되어 반에서 자기 소개를 했을 때도 발표를 망쳤단다. 남동생을 둘이나 둔 10살이 된 첫째 딸의 마음을 나는 알 것 같았다. 이 어린이가 어떤 문제로 힘들어하고, 말로 표현 못하는 감정들을 어디로 흘려보내는지 따위의 사정말이다. 꼬린내가 날 때까지 감정을 삭혀두었던 나의 유년시절을 내내 안타까워하는 지금의 나는 조금 더 희망적인 나이인 10살 어린이에게 물었다. 그럼 그 말 못할 속상함이나 감정들은 어떻게 푸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는 답을 들었다. 스스로에게. 스스로에게. 10살 어린이가 벌써 자기 몸무게 보다 무거운 그 감정들을 이고 지고 산다. 마음이 아팠다. 너는 부디, 제발 너는 그러지 말지.


 하지만 벌써 유난 떨지는 말자고 생각을 고쳐먹는다. 엄마에게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글로 써보라 했지만 그마저도 거절당했다. 선생님도 너와 같아서, 그래서 무수히 많은 다이어리가 쌓였다는 말로 위로를 대신해주었다. 허구 뒤로 숨는 이 어린이의 현실이 당당하고 유쾌하고 시니컬하게 전체 공개되는 날이 와주면 좋겠다. 내가 그 길을 터줄 수 있다면 내가 살면서 이룰 수 있는 것 중 최고의 성과가 될텐데.


 일기마저 허구였던 어린이의 글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아무리 픽션이라도 기분 좋은 결말이다.

 '... 창문을 보는데 비가 왔다. 엄청 많이 왔다. 결국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 죽었다. 오늘은 나의 날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썼다. 그런데 이제 일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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