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차 베를린 : 비키니 베를린
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힘들어진 2022년에
자유로이 다니던 시절이 그리워 2019년 가을 베를린 여행기를 올려봅니다.
2019/10/10
오전에 8시 정도에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은 브로첸, 햄, 치즈, 마카로니, 요거트 등으로 나름 건강식이다.
여유로이 식사를 마치고 나갈 채비를 하며 거울을 보니 입술 포진이 올라왔다. 전날 마지막 이태리 식당에서 힘들더니 면역이 무너졌나 보다. 역시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좀 쉬어야겠다 생각하고 넷플릭스로 '비긴 어게인' 베를린 편을 보다 보니 피곤했는지 다시 잠이 들었다. (베를린에서 베를린을 배경으로 한 한국 예능을 보는 건 시간낭비 같기도 하지만 꿀맛이다)
한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는데 식사를 하고 바로 잠이 들어서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옆구리와 등허리가 아팠다. 몸살일까 걱정이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언제부턴가 체했을 때 옆구리가 아픈 경우가 종종 있었다. 몸살이 아니라 체기라 생각되니 밖에 나가서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화도 시킬 겸 에어비앤비에서 예약한 2차 숙소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한참을 걷다가 지도를 보니 1/5도 안 왔다. 아차 싶었다. 베를린은 한 블록의 사이즈가 커서 지도로 보는 것과 실제로 걷는 것이 다른 유럽 국가들이랑은 다른 거 같다. 체감상 두어 배는 되는 듯 여겨졌다.
컨디션이 별로인 듯하여 레베에서 빵을 좀 사선 일단 귀가했다.
오늘은 그냥 쉴까 하다가 아무래도 하루를 버리긴 아까워 소화제를 먹고 다시 일어섰다. 쉬엄쉬엄 베를린 동물원 근처에 위치한 비키니 베를린이라는 몰에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로 6 정거장 정도의 가까운 거리라 부담이 없었다. 숙소 위치는 기가 막히게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으니 숙소에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이었다. 숙소 소개에는 4층이라고 했지만 독일은 1층을 그라운드로 표기하는지 여긴 5층이다. 그리고 천정이 한국의 1.5배가 된다. 그러니 여긴 우리 아파트 기준 7층 정도의 높이다. 짐을 들고 올라갈 때마다 숨이 차고 다리가 풀린다. 여하튼 소화시키기엔 좋은 조건이었다.
비키니 베를린은 외관은 별 대단한 게 없었지만 실내에 들어서니 굉장히 예술적인 건축물이었다. 유리를 통해 동물원이 보이고 그곳에 안락의자를 배치해놓는 배려들이 정말 놀라웠다. 이런 게 여유구나. 건물 자체가 예술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점한 매장들은 특별한 건 없었다. MYKITA라는 유니크한 디자인의 안경 브랜드가 눈에 띈 거 외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
다른 몰에 가볼까 해서 나왔더니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들어갈 때만 해도 해가 쨍했는데 말이다.
거리도 가깝고 티켓도 정액권이라 왔다 갔다 하는데 부담도 없고 일단은 귀가하기로 했다. 이제 3일 차고 한 달 살기를 할터이니 느긋한 마음이었다.
점심도 제대로 안 먹어서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라면이다. 마트에서 산 닭 가슴살을 넣어서 끓여보았다. 아니 닭가슴살은 왜 이렇게 짠 건지.. 마트의 음식들은 모두 짜다. 냉장고 없이 사는 민족인가 싶을 정도다.
예전엔 해외 나가면 그 나라 음식 먹기 바빠서 한식을 피했는데,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라면 김치 같은 것들이 그리웠다. 좀 서글펐다.
라면에 김치를 먹고 다시 소화를 시키려고 근처에 있는 동네 헬스장을 찾아갔다. 의외로 시설이 좋았고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일일 권도 가능한지 알아보려고 직원을 기다렸는데 벨을 누르고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았다. 이상한 여유로움이 있는 나라다. 조카 말에 따르면 음식점에서 손들고 사람 부르고 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소리 높여 종업원을 부르는 건 매너 없는 행동이란다. 그러고 보니 음식점이 저음으로 웅성웅성하는 소리만 들릴 뿐 고요하다. 아이 컨택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성질 급한 한국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기다림의 미학이 있는 나라라니...
독일에 대한 선입견이 또 한 번 깨지는 순간이었다.
음식이 짜서인지 물을 많이 먹게 돼서 아예 2리터짜리 6개를 사기로 큰 결심을 했다. 무거운 생수를 나를 때마다 대한민국 택배 기사님들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번 나르기도 이렇게 싫은데 그걸 일로 한다면... 차가 못 들어가는 곳도 많고 엘리베이터 없는 5층짜리 빌라 등 얼마나 가혹한 환경인가.
생수는 포장비닐이 약해 보여서 조심조심 들고 가야 했다. 마트에서 숙소 앞까진 잘 버텼는데 1층 대문을 열려고 하는 찰나 비닐이 터져버렸다. 이게 웬일. 장인정신의 나라에 이런 일이라니..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환경을 생각해서 얇은 비닐을 사용한 까닭일까.. 페트병 6개를 이고 지고 올라가다 보니 손이 후들거렸다. 터진 비닐로 얼기설기 매서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힘들지만 한 번에 올라가야만 했다.
다음에 에어비앤비를 이용한다면 엘리베이터 유무를 가장 먼저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넷플릭스로 피키 블라인더스를 한 편 보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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