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고 불이고 세상이 발 아래인 도깨비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모두에게 반말을 사용한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존대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신'이다. 도깨비조차 좌지우지할 수 없는, 오히려 도깨비가 좌지우지 당하는 절대적 존재다. 신은 고려 상장군 김신을 사망 후 도깨비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의 운명을 만들었고 없앨 수도 있는 경외의 대상이다.
드라마 <도깨비>에는 신이 두 가지 모습으로 나온다. 그 중 하나가 삼신할매다. 삼신할매는 세상 모든 아기를 점지하는 신이다. 이제는 도깨비가 되어 불멸의 삶을 사는 김신조차 삼신할매가 점지한 그녀의 아기다. 그래서 그녀는 도깨비의 위에 군림하고 도깨비는 그녀를 깎듯하게 존대한다, 마치 장성한 아들이 어머니를 대하듯, 존경과 사랑을 담아.
그런 그가 삼신할매와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그 외나무 다리는 바로 서점이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해외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가 갑자기 서점의 서가들 사이에 갇힌 채 옴짝달싹 못한다. 그리고 서점 한쪽이 열리면서 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이 장면에서 둘의 만남 자체보다 둘이 만나는 장소가 서점인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이 서점 장면에서는 앞날을 모른 채 고뇌하는 가엾은 영혼을 구제하려는 삼신할매의 애틋한 마음이 절절히 묻어난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가정을 해보았다. 삼신할매를 책으로, 도깨비를 서점을 방문한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 바꾼다면 어떨까?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고해에서 평생 허우적거린다. 수영을 좀 더 잘하고 좀 덜 잘하고 아예 못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지긴 해도 이 바다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래서 인간은 조금이라도 덜 발버둥쳐보려고 늘 무언가에 의지한다. 나는 주관이 너무 강해서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아! 라고 울부짖는 영혼일수록 자기는 인정하기 싫지만 어딘가에 기대고 있다.
그 기대는 대상이 책인 사람들이 분명히 많을 것이다. 인생을 좀 더 앞서 산 성현들의 말씀, 동시대를 살고 있어도 나보다 혜안이 높은 자의 이야기, 아예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듯한 넘사벽들의 삶, 이 모든 것에서 우리는 질투를 느끼고 위안을 얻는다. 질투를 느끼면 느끼는 대로 에이씨! 하면서 일어나려는 의지를 다지고(물론 그렇지 못한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위안을 얻으면 눈물 한번 징하게 닦고 속을 게워낸다.
도깨비와 삼신할매가 서점에서 만났다는 건, 서점은 신들이 사랑하는 공간이라는 것, 신이 진짜로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이 서점이라는 것, 책들이 잔뜩 꽂힌 서가 사이에서 신이 나타났다는 건 책이 바로 우리에게 앞길을 알려주는 신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책 좀 읽자는 말이다. 부동산 서적, 재테크 서적도 좋지만 실용서를 넘어선 책, 책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우리 머리 속에 그려지는 그런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나는 사람들이 인류 지혜의 보고인 그런 책을 통해 부동산과 주식까지 씹어 먹어 버렸으면 한다. <나는 데미안으로 주식을 배웠다>라는 책이 진짜로 나오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그 날이 오길, 이 장면을 보면서 염원했다. 신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비밀이 초보들을 위한 주식 투자법이나 월급쟁이 10억 모으는 비법 같은 건 아니지 않을까. 아니, 말을 바꾸겠다. 그걸 알려주고 싶은데 그 방법이 인류 고전을 뒤로 하고 실용서만 읽는 걸 원한 건 아니지 않을까. 읽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5대 5의 비율은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닐까.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고 무리하게 사랑을 손에 쥐려 한 도깨비는 사랑하는 여인의 목숨이 수시로 위협당하는 고통 속에 빠진다. 정해진 길을 거부하고 무리하게 지름길을 걸으려 한다면 우리는 단 하나뿐인 우리 인생의 방향을 송두리째 잃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누구보다,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마침 독서의 계절 가을이 오기도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