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에는 학과에 소모임이 있었다. 웬만하면 가입은 필수였다. 동아리는 아니었고, 과의 이런저런 행사를 돕는 목적의 모임이었다. 나도 한 소모임에 가입했다. 1학년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시키는 일을 주로 했었다.
그 소모임에서 나를 좋게 봐주었던 한 선배가 있었다.
어느 날 선배와 나는 한국사 관련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5.18 광주에 대한 주제였다. 나는 고집이 세서 주장을 잘 굽히지 않았다. 선배는 내 이야기를 곰곰이 듣더니, "너, 안 되겠다. 비디오 하나 보자" 라고 하며 나를 소모임실로 데리고 갔다.
오래된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철제 캐비닛에서 꺼낸 선배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이거 그냥 틀어주고 나갈 테니까, 너 혼자 보고 나와"
나는 당시에 좁고 어두운 방에서 홀로 비디오를 보며, 울었던 것 같다.
너무 오래된 수십 년 전 일이라 정확히 떠오르진 않지만, 참담한 기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건 5.18 광주 민주화운동 영상기록물이었다.
지금이야 유튜브에 공개된 관련 영상들이 많지만, 인터넷이 없던 당시에는 접하기 쉽지 않았다.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광주에 대해서,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무참히 때려서 제압했다' 정도의 수준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 영상 속 피해자들은. 총기 개머리판이나 곤봉으로 얼굴과 머리를 너무 심하게 맞아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수준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당시 유가족들은 뭉개진 얼굴을 알아볼 수 없어서 몸에 흉터나 점 등으로 시신을 찾아야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