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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Dec 15. 2024

2024년 12월 3일, 과거가 우리를 살린 날


오래전.

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에는 학과에 소모임이 있었다. 웬만하면 가입은 필수였다. 동아리는 아니었고, 과의 이런저런 행사를 돕는 목적의 모임이었다. 나도 한 소모임에 가입했다. 1학년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시키는 일을 주로 했었다.


그 소모임에서 나를 좋게 봐주었던 한 선배가 있었다.

어느 날 선배와 나는 한국사 관련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5.18 광주에 대한 주제였다. 나는 고집이 세서 주장을 잘 굽히지 않았다. 선배는 내 이야기를 곰곰이 듣더니, "너, 안 되겠다. 비디오 하나 보자" 라고 하며 나를 소모임실로 데리고 갔다.


오래된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철제 캐비닛에서 꺼낸 선배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이거 그냥 틀어주고 나갈 테니까, 너 혼자 보고 나와"


나는 당시에 좁고 어두운 방에서 홀로 비디오를 보며, 울었던 것 같다.

너무 오래된 수십 년 전 일이라 정확히 떠오르진 않지만, 참담한 기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건 5.18 광주 민주화운동 영상기록물이었다.

지금이야 유튜브에 공개된 관련 영상들이 많지만, 인터넷이 없던 당시에는 접하기 쉽지 않았다.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광주에 대해서,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무참히 때려서 제압했다' 정도의 수준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 영상 속 피해자들은. 총기 개머리판이나 곤봉으로 얼굴과 머리를 너무 심하게 맞아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수준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당시 유가족들은 뭉개진 얼굴을 알아볼 수 없어서 몸에 흉터나 점 등으로 시신을 찾아야 했다고 한다.

https://www.dspress.org/news/articleView.html?idxno=3599


계엄군들은 민간인들을 쫓아가 대검으로 등이나 배를 마구 찌르고, 곤봉으로 머리 부분을 집중적으로 타격하거나 군홧발로 마구 때리고 짓밟았다고 한다. 노인, 여자, 임산부, 어린이 등 가리지 않았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너무 잔혹해 글로 표현하고 싶지 않다.


나는 비디오를 보고 나와서, 선배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며칠간 제대로 밥도 먹지 못했다.

그게 나에게 기억된, '계엄의 역사'이다.



지난 12월 3일, 12.3 내란 사건이 일어난 그 밤.

나는 한숨도 못 잤다. 꼬박 밤을 새웠다.


무서워서.


애써 기억 속 철제 캐비닛 안에 넣어 잠가놨던, 비디오 테이프가 다시 떠올랐다.

뇌리에 각인된 오래된 화질의 충격적인 영상들이 다시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 당시 광주에서 비상계엄이 발동되고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가했던 아픔의 역사가,

다시 2024년에 재현될까 봐.

너무 무서웠다.


설마설마 했는데, 결국 군인이 서울에 들어오더라.

전투 헬리콥터가 국회에 내려앉는 장면에서는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277/0005510589


실탄을 챙기고 완전 무장한 특수부대원들이 국회에 들어왔다.

마침내 국회 유리창을 깨부수고 진입하는 모습을 보고선 머릿속이 하얘졌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20911160001190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만약 그날 국회의원들이 체포되어 끌려가 구금되었더라면, 그래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았더라면,

과연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4206380


우리는 지금처럼 평온한 일상을 누릴 수 있었을까.

https://www.hani.co.kr/arti/area/honam/1042086.html


다행히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의 노력으로 계엄은 해제되었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목숨을 걸고 국회의사당 담을 넘었다. 국회에 모여 계엄 해제 안을 결의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41204013800071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모여, 장갑차를 몸으로 막았다.

https://www.sportsseoul.com/news/read/1481580


시민들은 군버스 앞에 주저앉아 진입을 막았다.

https://m.etnews.com/20241204000028


나는 그 이후로 잠을 잘 못 잤다.

잠이 들더라도, 새벽같이 일어나 뉴스를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혹시 '2차 계엄'과 같은, 무슨 일이 또 터졌을까 봐.


12월 7일엔 여의도에 나갔다.

대통령 탄핵안이 발의되어 투표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게 집회 참여밖에 없었다.


하지만, 탄핵안은 '국민의 힘'의 단체 퇴장이라는 경악스러운 패악질로 정족수 미달.

결국 불성립되었다.


어제, 12월 14일.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여전히, 집회 참여뿐이었다.

역사에 기록될 그 순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다시 여의도로 나갔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과거가 우리를 살렸다.


나는 우리 대한민국이 광주에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이번 내란 사태를 슬기롭고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광주에서 배운 교훈 덕분이다.

우리 국민들은 계엄의 무서움을 잘 알고있다.

과거가 우리를 살린 셈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 과거 사건에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2.3 내란범들의 빠르고 강력한 처벌을 바란다.


이제 미래를 지킬 차례다.

부디, 그날의 악몽이 다시는 재현되지 않기를.



추가)

아래는,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 집회 모습입니다.

개인적으로 신해철 님을 좋아하기도 해서. 기록차 남깁니다. (1분 40초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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