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본질이 중요하다. 일에서도 삶에서도.
본질을 이해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삶의 격에서 차이가 난다.
인간 본성에 걸맞은 생각과 행동을 하면 삶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거스르는 법이 없다. 안간힘 쓰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2,000년 전 로마의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인간의 본성은 '정의롭고 고결하며 절제하고 지혜로우며 사려 깊고 정직하고 겸손한 것' 이라고. 이 모든 단어들은 결국 미니멀라이프에 부합한다.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하는 검소하고 절제하는 삶.
탈무드의 이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느 날 나는 책상과 의자만 놓은 아주 작은 방에 사는 랍비를 만난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다른 가구는 어디에 있나요?"
그가 답했다.
"그렇다면 당신의 가구는 어디에 있나요?"
"저요? 저야 잠시 들르는 길인데..."
"네, 저도 그렇습니다. 잠시 지나는 길이지요."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역사 속 유명한 황제, 부자, 정치인, 스타들. 그들 모두 잠시 지나갔을 뿐이다.
그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다.
우리는 모두 잠시 지나는 길이다.
류시화 시인도 다음과 같은 문장을 언급했다.
'이 세상에 네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잠시 머물렀다가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잠깐의 쾌락이나 욕망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삶은 얼마나 허망한가.
이성을 뒤로하고 감정에 휘둘려 판단하고 행동하는 삶은 얼마나 가벼운가.
우리 삶의 목적이 고작 '생존'이던가? 우리는 음식에서 에너지를 흡수해 소비하는 유기체에 불과한가?
인간의 본성은 결국 이성에 의한 판단이며, 정의롭고 고결하며 사려 깊은 행동에 그 본질이 있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맞는 삶이다. 순간적인 욕망에 이끌려 판단하는 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본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게 행동하는 지구상의 생물은 동물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인간은 다르다. 인간에겐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분명 있지 않은가.
인간이 진화를 어느 정도 이뤄낸 이후, 이미 수만 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니, 과거는 그 보다 더 길 수도 있다. 미래는 어떠한가. 예측할 수조차 없는 까마득한 미래가 이 세상 앞에 놓여있다. 아득한 과거와 영원할 미래, 그 사이에 우리 한 인간의 삶은 얼마나 짧은가. 그 사이에 우리의 인생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점에 불과하다. 영원한 시간 속에서 10년, 20년의 차이는 무의미할 정도로 짧고 허망하다.
찰나의 순간에 불과한 인간의 삶에서 결코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는다.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성을 이해하고 따라야 한다. 인간이 여타 동물과 다른, 그 차이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수천 년 전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한 로마 황제의 말처럼, 우리는 '정의롭고 고결하며 절제하고 지혜로우며 사려 깊고 정직하고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한다.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한 자세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야말로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자세이며 삶의 태도이다.
소박하고 겸손한 삶. 거기에 우리 인간 본성의 진수가 담겨있다.
이성적인 자세로 절제하는 삶.
우리는 미니멀하게 살아야 한다.
The proper function of man is to live, not to exist.
I shall not waste my days in trying to prolong them.
I shall use my time.
- Jack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