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사다 놓은 빵이랑 요거트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골드코스트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그 사연 많았던 로마 파크를 가로질러 버스터미널로 갔다. 가보니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도 없고, 티켓을 파는 창구도 다 닫혀있다. 미리 예매를 해놨기에 망정이지 만약 안 해놨으면 못 타는 거였나? 여기서 타는 게 맞나 고민하고 있을 즈음. 버스가 한 대 도착하고, 그제야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무리 중 눈에 띄게 화려한 옷을 입고, 유난히 신나 보이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분이 버스기사님이었다. 골드코스트로 가는 동안 얼마나 신나게 얘기를 하시던지. 버스 안의 사람들은 늘상 있는 일인 듯 반응이 시큰둥하다. 우리라도 리액션을 해야 하나 싶지만 말이 워낙에 빨라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맞장구를 쳐주기도 애매했다.
그렇게 2시간 정도를 달려 서퍼스 파라다이스에 도착했다. 어제의 브리즈번과는 달리 날씨가 너무너무 좋다.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에 흰 뭉게구름. 윈도우 배경화면 같은 날씨다. 게다가 호텔이 버스터미널에서 가까워서 헤매지 않고 걸어갈 수 있어서 더 좋았다.
호텔에 짐만 간단히 풀고, 먼저 근처 가게에 가서 교통카드인 고카드를 샀다. 커럼빈 야생동물 보호구역까지 우버를 타고 가기에는 너무 멀고 비용도 많이 들어서 트램을 타고 움직이기로 했다. 트램을 타고 가다가 버스로 환승을 했는데, 세상에! 사람들이 맨발에 수영복을 입고, 심지어 사람 키만 한 보드를 들고 탄다. 정말
아~~~ 무렇지 않게. 우리 둘만 눈이 똥그래지고,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탑에 반바지 아니면 수영복, 남자들은 반바지만 입은 사람도 허다하다. 대부분 당장이라도 바다에 뛰어들기만 하면 되는 옷을 입고 있다. 바닷가라고 나름 덜 입고 나왔는데도 우리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와~ 이곳은 원래 이렇구나! 이렇게도 살 수 있다고?"
현타? 괴리감? 나만 날마다 아둥바둥 정신없이살아온 것만 같은 기분? 암튼 뭔가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정말 이곳이 서퍼스 파라다이스라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아앙.... 나도 이렇게 살고 싶어! 이렇게 살고 싶다고!"
호주는 우리나라처럼 버스정류장을 안내하는 방송이 없어서 버스정류장마다 구글지도랑 일일이 맞춰보면서 가고 있었는데, 커럼빈에 가는 내내 정류장 이름에 비치가 왜 이렇게 많은지. 정말 놀라울 뿐이다.
쨍하게 덥긴 했지만 파란 하늘에 감탄하며 가다 보니 커럼빈에 도착했다.
야생동물 보호구역이라는 이름답게 일반적인 동물원과는 달리 동물들이 살고 있는 야생의 자연 속에 우리가 들어가는 느낌이다. 물론 길도 잘 정리가 되어 있고, 미니 기차도 있고, 음료나 간단한 음식을 파는 곳들도 있기는 하지만 약간 과장하면 마치 정글 속을 탐험하는 느낌이랄까?
커럼빈이 굉장히 넓기 때문에 지도를 보며 걷고 있었는데, 안내해 주시는 할머니께서 다가오시더니 '어디서 왔냐. 여기가 처음이냐.' 다정하게 물으시더니 여기 여기는 꼭 가봐야 한다. 여기는 별로니 패스해도 된다 등등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셨다. 할머니의 추천에 따라 코알라가 있다는 곳부터 갔다. 입구에 있는 커다란 나뭇가지 위에 코알라 인형 같은 게 여러 개 붙어 있어서 인형을 진짜처럼 잘 만들어놨다며 감탄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인형이 움직였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꺄악! 세상에 진짜 코알라였어!"
"너무너무 귀여워~~~ 진짜 살아있는 인형이네"
말로만 들었던 살아있는 인형이 여기에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있다니. 코알라의 작은 몸짓 하나에도 넋을 놓고 계속 바라보게 된다. 코알라에 큰 감흥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상상 이상이다. 하루 종일이라도 바라보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코알라가 계속 눈에 밟혔지만 다른 동물 친구들도 만나야 하니 아쉬움을 남긴 채 캥거루를 보러 갔다. 가자마자 나무 그늘 아래 해탈한 표정으로 늘어져 있는 커다란 캥거루가 보인다. 그 뒤로 사람들이 줄을 서 있고, 한 명씩 차례대로 캥거루를 만져보고 있다. 캥거루가 힘들지 않을까 잠깐 망설였지만 이런 기회가 또 올 것 같지는 않아서 아주 조심스럽게 만져봤다. 나의 걱정과는 달리 캥거루는 아주 익숙하게 사람들의 손길을 즐기는 듯했다. 안으로 더 들어가 보니 캥거루 여러 마리가 자유롭게 뛰어놀고 있고, 사람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다.
정글을 탐험하듯 여기저기 동물들을 찾아다니고, 버드쇼 공연장에 갔다. 야생동물의 천국 호주에서의 버드쇼라 한국과는 다를 거라며 잔뜩 기대를 하고 지켜봤는데, 생각보다 시시하고 지루했다. 호주와 퀸즐랜드주의 역사와 원주민의 전설(?) 등등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를 장황하게 설명하더니 새는 머리 위로 몇 번 날아가는 게 전부였다. 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몇 시간 동안 숲을 헤매고 다녔더니 체력이 바닥이 나서 나갈 때는 꼬마 손님들과 함께 미니기차를 타고 나왔다. 입구에 있는 스낵바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기념품 샵에서 수많은 유혹을 물리치고 에코백 하나를 사서 나왔다.
다시 버스를 타고 트램으로 환승을 해서 호텔에 돌아왔다. 제대로 못 푼 짐을 마저 풀고, 잠깐 쉬었다가 호텔 앞에 있는 서퍼스 파라다이스 해변으로 나갔다. 해변으로 가는 길에 식당과 상점이 많고, 분위기에 한껏 들뜬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더 많은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이고 흥이 올랐다.
해변으로 나가니 정말 파도가 장난이 아니다. 내가 그동안 봤던 파도는 파도가 아니었다. 그 엄청난 파도 속에서도 사람들은 수영을 하고 파도를 탄다. 해변 근처에 높은 건물들이 많아서 약간 해운대 느낌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파도의 스케일이 다르다. 파도만 보고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토요일이라 마침 플리마켓이 열려서 구경을 좀 하고, KFC에 가서 치킨을 먹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내가 알던 바로 그 익숙한 치킨 맛 그대로였다. 서퍼스 파라다이스를 눈앞에 두고 먹는 치킨이라니 정말 환상적인 맛이었다. 진정 이곳이 파라다이스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