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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al Stem Nov 29. 2020

내 삶을 이끌어가는 한 문장

마음속에는 나를 이끌어가는 한 문장이 있다.

 '네가 이제 가장이다.' 이 말은 내가 2003년 2월 들었던 말이다. 이 말을 들었던 당시 나는 중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상태였다. 막 중학교를 졸업한 내가 집안의 가장이 된 것이다.


 내가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이유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대기업에 다니셨다. 그리고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는 몇 번의 사업을 하셨고 회사를 운영하고 계셨다. 사업과 회사는 계속 어려워졌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많이 싸우셨다. 초등학교 시절 부족함을 모르고 살았지만 점차 집은 좁아지고 경제적으로 힘들어졌다.


 내 중학교 졸업식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싸우셨다. 사실 일방적으로 아버지가 화를 냈다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 여하튼 아버지는 내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어머니와 누나만 참석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미안한 마음에 오지 않으셨을 거라고 생각됐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계속 집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를 졸업여행 겸 피난시킬 목적으로 시골에 계신 이모 댁으로 여행을 보내셨다. 물론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거나 다녀온다는 말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졸업여행 겸 피난을 계획대로 보내지 못하고 새벽같이 서울로 올라왔다. 아니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정확히 어떤 사고로 인해서 돌아가셨는지 모른다. 나는 그 당시 함께 있지 않았고 함께 있었던 어머니와 누나에게는 지금까지도 물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장례식도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간을 떠올려보면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처음 이야기 한 '네가 이제 가장이다'라는 말이다. 아버지의 지인 중이었는지 친인척 분이었는지 그리고 언제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는지 또는 그 말을 정말 듣긴 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의 기억 속에서는 분명히 그 말이 남아 있었고 내 삶을 이끌어가는 한 문장이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대학에 가야 한다"라는 목표를 만들었다. "네가 이제 가장이다"라는 말은 "대학에 가서 성공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했다.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네가 이제 가장이다'라는 말은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의 마음속에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보태거나 성적을 많이 올려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지는 못했다. 나름대로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그 노력은 부족했고 학습의 전략은 더욱더 부족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저 그런 대학교에 수시 원서를 접수했고 합격했다. 나름대로 '네가 이제 가장이다'라는 말을 책임지려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어떻게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이 말을 이제 교육자로 살아온 내가 뒤돌아보면 이렇다. 그건 내 마음의 다짐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실체가 없는 이야기였다. 내 삶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책임을 내가 대신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이라는 것이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나 그건 고등학생인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그 말이 남아있었고 나를 알아갈 기회를 빼앗고 내 삶을 무겁게 했다.

 내가 성인이 되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알았다. 어머니는 홀로 두 자녀를 키워야 한다는 한 문장이 삶을 이끌었다. 첫째인 누나는 첫째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문장이 삶을 이끌었다. 내 삶을 이끈 한 문장은 나에게 책임감이라는 짐이 되어서 삶을 힘들게 했다. 


 혹시 내 삶을 이끌어 가는 한 문장이 날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이 내 기준에서 생각한 것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에서 주어진 기준은 아닌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내 기준에서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타인의 기준, 세상이 이야기하는 기준이라면 그것을 달성하기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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