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적응 중
이전 직장에서 한 상사와 11년을 같이 근무했다. 나는 동료 운은 그닥이었지만 상사운은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대화가 많지는 않았으나 팀장님이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걸, 나도 팀장님의 의사결정이 맞다는 걸(그래서 따르면 된다는 걸) 서로 알고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딱히 그렇다는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그랬다. 그랬을 거라고 어느 정도는 확신할 수 있다.
물론 내 가족도 나와 100% 맞지 않고, 다 마음에 드는 게 아니므로 그 어렵다는 상사인 팀장님이 나랑 다 맞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잘 맞지 않았을까. 팀장님에게도 내가 그런 후배로 남겨져 있는지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 번 여쭤는 보고 싶네ㅋㅋ
지난해에는 팀의 리더가 바뀌는 10여 년 근무기간 중 가장 큰 변화를 겪었다. 나의 조직생활에도 새로운 팀장님과 함께 하는 시즌2가 시작하나 했는데, 시즌1이 막을 내렸다.
(아직은 밝히기 조심스러운) 건강 상의 이슈로 질병휴직에 들어가야 했고 너무도 당연하게 치료 이후 복직할 줄 알았으나,
(더 밝히기 조심스러운) 조직의 내부 사정으로 소위, 회사에서 짤렸다. 짤렸다 라는 말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네. 10여 년 간의 직장생활이 이렇게도 어이없이 마무리되다니!
한 편으로는 '더 이상 그 건조한 글은 못쓰겠다', '다시 돌아가면 쓸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읽은 거 같이 '이제 그만해!' 하는 결론이 나버린 것이 '삶은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긴 가는구나'라는 말도 안 되는 긍정적인 생각도 들었다.
이후 실업급여를 받는 경험도 해보고 다시 이직이란 것을 했다. 더 이상은 글을 쓰지 않는다. 그렇게 써대던 것을 그만하고 나서야 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
며칠 전 주말, 우연히 10년 넘게 일하던 직장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떠난 지 질병휴직까지 더하면 1년도 넘었건만 내 눈에 너무 익숙한 공간. 몸이 기억하고 있는 10년의 세월. 정확하게 세어보면 휴직 들어가기 전까지 11년 2개월 며칠 정도? 그 시간이 주는 익숙함은 정말인지... 어제 여기서 근무했다고 해도 믿겼다.
익숙한 분위기와 익숙한 냄새, 익숙한 광경. 그냥 익숙한 곳이었다. 내 몸은 아직은 그곳을 더 익숙해했다. 성향 상 아마 익숙한 사람들이어도 사람들이 차 있는 시간이었으면 좀 달라졌을 거 같은데 나를 쭈뼛거리게 만드는 사람들이 없어서였을까? 아무튼 그랬다.
100여 일을 새로운 공간에서(새롭지만 완전 낯설지는 않은 동네, 구조, 그런데) 익숙해질 정도가 된 시간이 지났고, 지금은 매일같이 여기를 내 집 드나들 듯 드나드는 중인데도 10년의 세월을 100일이 이길 수는 없나 보다.
그리고 나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제법 걸리는 편이라는 것도 이직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러워하고. 넉살이라는 게 조금도 없는 사람이구나! 민망하고 부끄러운 상황에서 배짱 좋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건 잘 못하겠더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지내고 싶어 하는 건 그동안의 사회생활을 통해 터득해 버린 내 자아일까? 여튼 결론은 이직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임. 아직도 나는 적응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