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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긍정아가씨 Dec 05. 2024

나이는 나를 규정할 수 없다

나는 그냥 나

어렸을 때는 말이다, 크면 저절로 어른스럽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줄 알았다. 어떻게 하는 게 어른스러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줄 알았다.


‘지금부터는 어른이야! 이제 어른처럼 행동해야 해!’ 이렇게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기준이 되는 무언가에 확 바뀌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한 살 더 나이 먹는 매해 12월 31일에서 1월 1일이 되는 그 순간에도 내가 체감하는 바뀌는 건 없다. 달력의 숫자가 바뀌지만 그건 매일의 일상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늘 그런 것이고.


어렸을 때는 연말 카운트다운 할 때면 너무 서운했었다. 나이 한 살 먹는 걸 그렇게 부정하고 싶었는지,

질척이는 편이라 한 해가 가는 게 싫어서 그랬던 건지, 숫자만 바뀔 뿐 변하는 건 없지만 그렇게 한 해가 저무는 게 싫었던 어린이.


어른스러워질 줄 알았지만 나이만 먹었지 하는 생각은 십 대 그 시절 나랑 별반 다르지 않다. 경험치가 쌓여서 좀 성숙? 숙성? 했으려나? 고개를 갸웃해 봐도 그렇지는 않다.

 

나를 알려주는 숫자는 나이 지긋한 불혹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냥 나. 불혹의 어른스러운 내가 아니라 30대, 20대, 10대?(는 너무한가) 아무튼 나이로 확정 지을 수 없는 '나'이다 그냥 나일뿐.


예전 도덕시간인가? 윤리시간인가? 불혹, 지천명 등을 배우면서 그런 나이의 나는 감히 상상조차 안 됐는데 어느새 그런 나이네? '와~ 어떻게 내 이름 뒤에 붙는 숫자가 이렇게나 커졌지?'싶다. 믿기지가 않네.


사회적으로는 그 나이에 걸맞은 옷차림이라는 것도 있는데 여전히 나는 소녀틱한 혹은 할매니얼 사이의 경계를 오가는 취향의 옷들을 좋아한다.


지금 이 사무실에서도 찐한 머스터드에 로고가 똭! 박혀서 전혀 이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앉아 있고, 입을 용기는 내지 못하면서도 오버롤 팬츠(멜빵바지)를 사고, 그런 식이다.


암묵적으로 사회가 규정해 놓은 어른스러움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면서도 ‘나만 좋으면 돼!’하기에는 사회와 조직의 눈치를 아주 안 보는 편은 아니라, 그러면서도 은근히 조용하게 나를 표현하고 있으니 이것이 현재의 딱 사십스러움인가 싶기도...


직업에서도 마찬가지다. 확 용기를 내어 아주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가도 현실의 벽(30년 갚아야 하는 주택대출이라든가, 홀로 벌어 홀로 먹고살아야 하는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점이라든가)에 스르륵 지금 밥벌이할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선다.


세월의 옷을 입으면서 아주 조금은 무던해진 거 같기도 한데, 아침 출근길 라디오에서 DJ가 ‘나이가 드니 둔감해진 거 같다!’고 하니 패널로 나오신 분이 ‘나이 들면 다 둔해져요!’라고 함ㅋㅋㅋㅋㅋ


그래도 여전히 뾰족한 부분이 많으니 아직 어른이가 덜 된 듯도 싶고, 더 성장할 게 남아있구나 싶어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혹자는 무던해지는 것이 나이듦의 장점이라고 하니 그 또한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내 상황에 고맙기도 하고, 여유가 있어야 이런 생각도 해 볼 수 있는 거라 생각하니 그 또한 고맙습니다임. 그런 것을 깨달은 나는 조금은 숙성된 어른이가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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