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발레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10개월 차 발린이이다. 등린이, 런린이, 운린이 처럼 ‘발레 + 어린이(혹은 초보자)’는 발린이! 취미로 발레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취발러(어감이 다소 쎄지만)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취발러이자 아직 다리 한쪽도 겨우겨우 45도 각도 정도로나 드는 발린이!
발레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에 대한 썰을 풀어보자면 삼천포로 빠지는 얘기를 좀 해야 한다. 흔히들 어릴 때는 아이의 옷에 부모의, 특히 엄마의 취향이 반영된다. 우리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리본, 프릴, 레이스, 도트(땡땡이) 이런 여성스러운 요소가 있는 옷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의 취향이 많이 반영된 내 어린 시절의 옷차림은 단순 그 자체!
그 시절, 내 또래 여자아이라면 한 번쯤 신어봤을 레이스 스타킹은 우리 엄마 눈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난 아주 정직하게도 흰색 스타킹도 아니고 면으로 된 타이즈만 신었는데 어렸을 땐 그 레이스 스타킹이 얼마나 신고 싶었던지. 동네 시장 입구 속옷가게(BYC)를 지날 때마다 걸려있던 그 녀석. 지금도 이렇게 기억하는 거 보면 어지간히도 신고 싶었나 보다.
나에게는 피아노 콩쿨에 나가게 되면서 딱 한 번 풍성한 쉬폰으로 된 드레스를 입을 기회가 주어졌다. 온 가족이 내 콩쿨용 옷을 고르러 출동했는데 백화점에서 땡땡이 무늬에 어깨에는 봉긋하게 쉬폰이 잔뜩 들어간 드레스에 가까운 원피스를 사느냐, 우리 지역 최대 시장에서 실용성이 좋은 민트 원피스를 사느냐 선택의 기로에서(선택은 나의 몫이었지만 옆에서 엄마가 매우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 나의 선택은 민트 원피스였다.
쉬폰 어깨뽕의 촉감을 잊지 못한 나의 손가락이 아른거렸지만. K-장녀는 실생활에서도 입을 수 있다는 민트 원피스를 최종 낙찰했다. 교복 스타일의 민트색 원피스와 예의 그 흰색 면타이즈를 신고 콩쿨 장에 갔더니 자기 몸의 두세 배는 되어 보이는 화려한 드레스 입은 또래들 천지. 그랬었던 게 기억에 난다.
아, 길어지네. 아무튼!
그런 연유가 더해져 나는 복장부터 여성스러움의 최고봉 같은 발레라는 종목에 대한 로망이 꽤나 있었다. 청순함 한 방울 탄 거 같은 분홍빛 레오타드(꼭 수영복 같은 발레복을 이렇게 부릅니다)에 나폴거리는 샤랄라 스커트. 거기에 여리여리한 발레리나들의 몸짓까지. 어린 시절 나는 이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듯.
지금은 여자어린이들이 문화센터에서 필수 아닌 필수로 듣는 수업 중 하나가 발레라지만 많이 대중화되지는 않았던 나의 어린 시절,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엄마, 나 발레 배우고 싶어!"라고 말했는데 돌아온 것은 "너랑 어울리는 걸 해!"라는 칼답. 칼차단.
'그런가?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가?'하면서 쉽게 포기했던 그 시절. 난 그런 게 좋았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조금 더 주장해 봤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런 로망을 커서 내 뜻대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다소나마 해소하고 있다. 가령, 리본 달린 플랫슈즈를 무척이나 좋아해 마치 발레슈즈 같은 플랫슈즈를 수집하듯 사들인다던가.(발은 2개뿐인데 말입니다) 샤스커트에 레이스와 같은 발레코어룩을 선호한다라든가.
몸뚱아리는 전혀 발레와 어울리지 않아서(뻣뻣하기는 최상 레벨, 최근 아프기 전까지는 뱃살도 한 트럭;;) 그래서 사실 내 의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서도 발레는 내 선택지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건강 상의 큰 일을 겪고 난 뒤! 갑자기, 어느 날, 불현듯, 김혜남 선생님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을 읽다 한 구절에서 유레카!를 외치며 제 발로 동네 발레학원을 찾아가게 된다.
삶을 즐기는 것은 '~ 해야 한다'는 말을 줄이고 '~ 하고 싶다'는 말을 늘려 나가는 것이 그 시작이다.
어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인데 그 시점에서는 저 문장이 나에게 너무나 크게 와 닿았다. 받고 있던 치료가 끝나고 이제는 머리카락이 제법 삐죽삐죽 올라와 모자를 벗고 실내에서 운동을 해봐도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기도 했다. (역시... 올해 내 최대 관심사인 만큼 쓰다 보니 길어진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