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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병목 Jul 22. 2022

자녀교육서는 매뉴얼이 아니다


1. 아이 잡는 엄마표의 근본 원인은 자녀교육서를 마치 ‘자녀 사용설명서’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전제품 사용설명서처럼, 그대로 따라하면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2. 사용설명서는 기계를 움직이게 할지는 몰라도 사람의 행동을 바꾸게 하지는 못한다. 행동이 바뀌려면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자녀교육은 자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 없이 불가능한 것이다. 


3.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자녀교육서를 읽으며 구체적 도움을 얻고, 그렇지 못하면 자녀교육서를 읽을수록 부담감과 불안함만 가중될 뿐이다. 새로운 정보를 접할수록 불안해지고, 알면 알수록 조급해진다.


4. 책을 보면, 누구는 하루 세 시간 이상 원어를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 하고, 누구는 한글을 익히기 전이라도 영어책을 자연스럽게 읽어주라고 하고, 또 누구는 모국어를 완전히 터득하고 난 후에 영어를 시작하라고 충고한다. 반면 이렇게 엄마가 힘들이지 않고도 동네 영어학원에 잘 적응해 실력을 높이는 사례도 많다. 무엇이 답일까?


5. 성공의 진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실패하는 이들은 방법에만 관심이 있고 성공하는 이들은 저자의 철학에 관심이 있다. 영어 교육 성공 사례를 담은 책에는 엄마의 영어 지도 방법에 대한 철학과 원칙이 먼저 소개되어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외국어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터득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선택한 방법들이다. 


6. 수많은 길 중 ‘하나의 길’을 그들은 선택했고, ‘우리 아이’의 상황에 맞추어 실천했다. 실천의 과정에서 어려움이 왜 없었겠는가?  불안함이 왜 없었겠는가? 주위의 오해와 삐딱한 시선을 느끼면서도 오롯이 내 아이만을 믿고 당당하게 실천한 결과다.  


7. 오래 전 ’86 아시안 게임에서 임춘애 선수의 활약이 눈부셨다. 라면만 먹고 뛰었는데도 육상 중거리 3관왕에 올랐다고 떠들썩했다. 3관왕의 위업보다 라면을 먹고 뛰었다는 것이 더 큰 이슈였다.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았는가? 임춘애 선수가 무슨 라면을 먹었길래 저런 괴력을 발휘한 걸까? 신라면일까, 안성탕면일까? 이런 생각을 했다면 바보 소리 듣기 십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녀교육서를 이런 식으로 읽고 있다.


8. 저자가 실천한 ‘방법’이 아니라 그 방법을 쓰게 된 이유, ‘원칙’에 주목해야 한다. 출판사에서 책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자극적으로 써놓은 카피에 현혹되면 큰 코 다친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지금 원고를 쓰면서 책 제목을 자극적으로 잡을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야 일단 책을 사니까.)


9. ‘상위 1%를 위한’, ‘수학 천재로 키우는’, ‘교과서로 만점 받는’, ‘영어 교육 매뉴얼’, 참으로 눈에 확 띄는 제목이다. 미끼다.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말이나 진배없다. 책만 읽는다고 우리 아이가 상위 1%가 되는 것도, 수학 천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교과서만으로는 만점을 받게 만들 수도 없고, 따라 하기만 하면 그대로 되는 매뉴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10.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는 100가지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원칙이 중요하다. 100가지 방법을 담은 책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버려라. 따라할 수도 없고 그대로 따라하다가 아이와 원수질 일만 생긴다. 


11. 훗날 임춘애 선수는, 과거에 라면 먹고 뛰었다는 것은 기자들이 극적 효과를 위해 강조한 것이었을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보양식도 즐겨 먹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임춘애 선수의 성공 비결은 라면이 아닌 보양식 때문인가? 혹시 우리는 자녀교육서를 이와 같이 읽고 있는 건 아닐까? 


12. 그래서 나는 상담 때나 강연 때 나는 가장 먼저 이 얘기부터 한다. 제발 자녀교육서를 매뉴얼로 생각하지 말라고.


※ 2008년~2010년 현장 강의를 바탕으로 2011년에 처음 정리하고, 2022년 7월 22일 새벽에 고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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