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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남원 조식

by 유자와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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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김치 좀 꺼내세요.”

“유자는 안 일어나려나.”


여기는 남원, 부모님과 여행 중이다.

어제 도착했다. 모과는 상하이 출장을 떠났다.

엄마 아빠는 항상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난다.

평생 새벽기도를 하셨으니 저절로 눈이 떠지실 거다.


식사 준비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7시가 넘었나보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7시 15분. 일어나야겠다.

부모님과 여행을 떠날 때마다 아침 식사는 각자 취향대로 먹는다.

주로 나는 빵, 아빠는 편의점 밀키트, 엄마는 끓인 누룽지다.


예전엔 숙소에서 제공하는 조식 뷔페를 신청했다.

그러다 부모님 식사량이 줄어들면서 숙소에서 가볍게 먹는 걸로 바꾸었다.

내가 먹는 빵은 전날 여행지에서 고른다. 아빠가 먹는 밥은 전날 편의점에서 고른다.

엄마가 먹는 누룽지는 전전날 집에서 만든다.

아빠 엄마가 먹는 김치는 전날 편의점에서 고른다.



엄마는 이미 누룽지를 다 끓였다.

아빠는 전자레인지에 데운 햇반을 그릇에 옮겨 담고 볶은 김치를 얹는 중이다.

요즘 오뚜기에서 만든 ‘참기름 김치볶음밥’에 꽂혀 있으시다(함께 포함된 계란국은 거의 드시지 않는다).

예전엔 ‘황태 콩나물 해장국밥’을 줄기차게 드셨다.

엄마는 집에서 밀키트를 못 먹게 한다.

건강에 안 좋다는 게 이유다.

그렇다고 엄마가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아빠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밀키트 고르는 기쁨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내가 산 빵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명문제과에서 가져왔다.

이 빵집은 하루 세 번 빵 나오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원하는 빵을 못 살 수도 있다고 한다.


숙소 근처라 우리는 어제 마지막 타임에 맞춰 빵집을 방문했다.

빵집은 작고 소박했다.

벽에 써놓은 대표빵은 세 개였다. 생크림 슈보르, 꿀 아몬드, 수제 햄빵.

막 오븐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빵이 트레이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빵돌이 아빠와 빵순이 딸은 기대에 찬 얼굴로 빵들을 들여다보았다.

건강 전문가이자 짠순이 엄마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멀찍이 떨어져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빠는 엄마 눈치를 보며 슈보르 한 개를 골랐다.

나는 좀 더 용기를 내어 슈보르 한 개와 꿀 아몬드 한 개를 달라고 했다.


빵집 사장님은 이렇게 유명한 빵집에 딱 시간까지 맞춰 와서 겨우 이것밖에 안 산다고?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다른 건 더 필요 없으세요? 카스테라나 햄빵도 맛있어요.”

나는 힐끗 엄마를 쳐다보았고 그 순간 사장님은 상황을 이해한 듯했다.

수제 햄빵도 맛보고 싶었지만 햄은 발암물질이라 절대 먹으면 안된다는 엄마 잔소리를 견딜 자신이 없었기에 포기했다.


그리하여 지금 내 앞에 놓인 빵은 고작 슈보르 두 개와 아몬드 빵 한 개 뿐이다.

리조트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사오고 싶지만 빈 속에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고, 커피가 칼슘을 다 빼간다고 걱정하는 엄마의 탄식을 들을 게 뻔하기에 그냥 빵만 먹기로 한다.


슈보르는 소보로에 생크림이 조금 들어간 빵이다.

바삭하고 쫄깃한 공갈빵에 생크림을 찍어 먹는 느낌이다.

꿀 아몬드는 식빵 두 장 사이에 얇게 커스터드 크림이 발라져 있다.

폭신한 식감에 바삭한 아몬드 슬라이스가 풍미를 더한다.

과연 둘 다 대표 빵이라 내세울 만큼 맛있다.

성심당 소보로가 느끼하면서도 묵직한 맛이라면 명문제과 슈보르는 담백함으로 승부를 건다.


아빠는 김치볶음밥이 너무 맛있다고 감탄하는 중이다.

엄마는 누룽지가 얼마나 몸에 좋은지 아냐며 우리에게 먹어보라고 강요하려는 찰나 갑자기 콩나물 예찬을 늘어놓는다.


“유자야, 콩나물이 그렇게 좋은 줄 몰랐어. 비타민 C가 그렇게 많다니.

비타민 C가 눈에 좋잖아. 여보, 어제 콩나물 박물관에서 본 게 뭐였죠?

단백질이랑 비타민 C, 또 하나 있었는데?

맞다. 아스파라긴산. 여보, 그게 어디에 좋다고요?

앞으로 콩나물 반찬 더 자주 해야겠네. 가격도 싸고. 영양가도 많고.”


어제 내려오는 길에 전주에 들려 점심으로 콩나물 국밥을 먹었다.

현대옥 본점을 방문했다. 본점이라 그런지 메뉴도 다양했고 콩나물 박물관도 운영하고 있었다.

박물관이라고 해봤자 콩나물 유래, 성분, 식당 역사를 적어놓은 작은 공간이 전부였다.

박물관이라면 어디든 좋아하는 엄마가 거기서 그만 콩나물 성분을 자세하게 알게 된 거다.


감명을 받은 엄마는 식당 앞에서 파는 콩나물 아이스크림을 맛보겠다고 나섰고,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파는 콩나물 모양 볼펜도 사겠다고 하여 아빠와 나를 놀라게 한 참이었다.

아빠와 나는 콩나물 칭찬을 늘어놓는 엄마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아침 식사를 마쳤다.

콩나물 덕분에 아침부터 몸에 안 좋은 걸 먹는다는 엄마 잔소리를 피할 수 있었다.

내일은 고흥에서 아침을 먹는다.

박물관부터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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