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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tlife noah Aug 12. 2023

첫 인턴

면접

인턴을 뽑아야 했다. 나는 회사에서 새로운 분야를 진행하기 위한 막 만들어진 팀의 팀장이었다. 우리 팀의 목표는 개발자가 되기 위해 어떠한 역량이 필요한지 분석하는 일이었다. 초기의 팀은 나를 포함해서 단 2명만 존재하여 인원보충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직 아무도 진행하지 않은 새롭게 도전하는 분야이므로 전문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전문가를 떠나서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정의 내리기도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겪어보고 사람을 뽑으면 더 원하는 사람을 뽑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턴을 뽑아보기로 내부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턴을 뽑기 위한 채용 공고는 비교적 적기 쉬웠다. 이미 존재하는 채용 공고를 대학교를 막 졸업한 사람도 참여할 수 있도록 조건을 완화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문득 조건을 완화하다 보니 이런 조건의 사람이 와서 우리와 같이 일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정의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니 일단 진행해 보기로 하였다.


새로운 분야라서 지원자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지원해서 기대가 되었다.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에 많은 관심을 준 것 같아서 고마움도 들었다. 그런데 실제로 면접에 들어가서 지원자들과 면접을 진행할수록 실망감이 가득했다. 이력을 떠나서 의욕이 별로 없거나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능동적으로 우리의 업무를 진행해보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대체로 지원자들은 개발자가 되고 싶은데 바로 개발자를 하기 힘드니 해당 직무를 체험해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반응이다 보니 이력도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인턴을 처음 뽑다 보니 너무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 같다. 너무 많은 기대를 하다 보니 실망감도 컸다. 그렇게 면접을 계속 들어가다 보니 면접에 들어가기 점점 싫어지기 시작했다. 인턴을 뽑지 말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눈에 띄는 지원자를 발견하였다. 


해당 지원자의 이력은 굉장히 평범했다. 하지만 지원자가 제출한 사전 과제가 눈에 띄었다. 우리는 면접을 보기 전에 업무와 관련된 과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었다.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울 수 있는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질문 3가지에 대해서 답을 해야 하는 것이다. 보통 지원자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기반으로 대충 3-4 문장을 적어서 제출했다. 그런데 해당 지원자는 자신의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설문조사를 한 후에 해당 내용을 정리하여 보고서 형태로 제출했다. 결과물 자체가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시도와 짧은 순간에 많은 노력을 한 것이 보여서 기대를 가지고 해당 지원자 면접에 들어갔다.


너무 기대를 하고 들어간 걸까? 지원자는 긴장을 많이 해서 이것저것 기대를 가지고 물어보는 질문에 답을 잘하지 못하였다. 이력도 특별하지 않아서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다 보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해당 지원자의 합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해보기 시작했다. 


질문에 만족스럽게 답을 제대로 못한 지원자를 뽑아도 될까?

사전 과제는 이제까지 진행한 지원자 중에 제일 잘했는데 가산점을 줘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사전 과제가 유의미한 결과물의 형태는 아니었는데 가산점을 주어도 될까?

이력이 많이 부족해 보이는데 우리와 같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우리 분야에 굉장히 열정적으로 보이는데 뽑으면 금방 성장하여 잘하지 않을까?


해당 지원자를 뽑기 위한 질문과 뽑지 않기 위한 질문들이 서로 엉켜있었다. 그러다 문득 인턴을 뽑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겪어보고 사람을 뽑기 위해서 인턴을 뽑고 있으니 장점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겪어보는 게 좋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의 결정을 하고 나니 다시 지원자의 장점만 보이면서 빠르게 해당 지원자를 합격시켰다.




1개월 - 의심과 죄책감

새로 뽑은 인턴이 출근을 하였다. 인턴의 이름은 진이었다. 굉장히 밝은 모습의 첫인상을 보니 팀에 좋은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직원이었다면 해당 생각으로 마무리를 하고 편하게 같이 일하면 되지만 인턴은 3달 후에 정직원이 되기 위한 재평가를 해야 했다. 따라서, 인턴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을 해보니 인턴에게 내가 줘야 하는 것은 기회였다. 최대한 기회를 주고 해당 기회에 대하여 피드백을 주고 인턴 스스로 그 기회를 잡고 정직원이 되거나 그 기회를 하고도 정직원이 되지 못한다면 최대한 많은 것을 배워가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턴인 진에게 팀에 필요한 의미 있는 업무를 시키기 시작했다.


인턴을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걸까? 인턴과 일할수록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방향성과 결과물의 형태를 제시해 주면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의도한 결과물을 만들어올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런데 진은 결과물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정리된 결과물이라고 하기 힘든 형태로 정리를 해왔다. 해당 결과물을 쓰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분석을 위한 비용이 필요해 보였고 해당 결과물을 의도한 방식으로 쓸 수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좀 더 자세히 방향성과 결과물의 형태를 가이드하고 제대로 이해하였는지 주기적으로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또 진은 이번 회사가 처음이다 보니 다른 사람과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다 보니 일하는 방식도 주기적으로 가르쳐야 했다. 바쁜 업무를 나눠서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사람을 뽑았는데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서 더 많은 자원이 들어가니 나의 업무가 더욱더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막 시작한 인턴에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진이 과연 우리와 같이 잘할 수 있을까? 진이 빠르게 성장하여 지금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을까? 그렇게 계속 의심을 하면서 색안경이 껴지려는 순간 처음 사회생활을 하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초기에 나도 많은 실수를 했었다. 그 실수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까지 오래 걸렸다. 추후에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고 난 후에는 회사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인력으로 인정을 받았다. 나는 슬로우 스타터라서 단지 처음이라서 못했을 뿐인데 해당 이미지로 인해 많은 손해를 봤던 과거가 있었다. 그런 나의 모습이 진에게도 보이면서 의심을 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게 1개월은 의심과 죄책감이 번갈아가면서 나를 괴롭혔다.




2개월 - 열정

1/3의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잘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진의 가능성이 보였다. 특히, 진이 가지고 있는 열정은 큰 무기로 보였다. 내가 주는 피드백을 스펀지처럼 빠르게 흡수하였고 더 많은 피드백을 흡수할 수 있을 것처럼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러다 보니 진을 가르쳐주는 게 마냥 힘들지만은 않게 되었다. 가르쳐줄 때마다 나아지는 것이 보이니 오히려 답이 없는 나의 업무로 지쳐있을 때 활력이 되기도 했다.


진의 열정은 팀 전체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주어지면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보겠다는 자세가 팀 전체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우리 팀은 적은 인원으로 답이 정해지지 않은 어려운 문제를 풀어나가다 보니 내부적으로 업무의 흐름이 꼬여있었다. 처음에는 규칙적이게 적극적으로 걸어오면서 풀어보던 업무들이었는데 방향이 계속 바뀌고 가시적인 결과물을 얻지 못하다 보니 열심히 걷고 있지만 다리가 꼬여서 속도가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결승선으로 인하여 최선을 다해 걷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데 진이라는 페이스 메이커가 등장하였다. 비록 느리지만 옆에서 최선을 다해서 달리고 있는 진을 보고 있으니 우리도 점점 속도가 붙고 활력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좋은 영향을 주다 보니 진을 꼭 정직원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진을 정직원으로 만들려면 성과가 필요했다. 그래서 난 조심스럽게 진이 현재 맡고 있는 가벼운 주제의 업무 대신에 중요한 주제의 업무를 맡아서 진행해 보는 게 어떠한지 물어봤다.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인턴에게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을 주지?'라고 생각하거나 '너무 부려먹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어 보여서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진은 좋은 기회를 주려는 나의 생각을 이해하고 해당 업무를 진행해 보겠다고 하였다. 의도한 대로 업무를 주어서 만족스러웠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숨이 나왔다. 아무래도 인턴에게 어렵고 중요한 업무를 시키려면 나도 더 많이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많은 업무에 추가적으로 일이 추가될 것이 보이니 눈앞이 잠시 깜깜해졌다. 하지만 진이 업무를 잘 마무리하고 추후에는 많은 업무를 나눠서 팀의 효율을 증가시켜 줄 것이라고 다시 생각하니 복잡한 머릿속이 한결 깔끔해졌다.




3개월 - 성장 그리고 이별

의심했던 과거가 미안할 정도로 진은 정말 놀랍도록 빠르게 성장했다. 성장이라고 표현하였으나 본래 가지고 있던 실력을 이제 보여줄 수 있도록 적응이 된 것일 수도 있다. 항상 새로운 동료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온보딩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진을 통해서 온보딩 과정이 왜 중요한지 직접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다녔던 이전 회사에서는 온보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신입이 능숙하게 일을 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변 동료들은 그런 시간이 자신들도 겪었으니 다음 신입에게도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것처럼 생각했었다. 새로운 회사에 가면 이런 분위기를 바꾸겠다는 결심을 했었는데 진을 통해 내가 생각했던 숙원 사업 중에 하나를 해결한 것 같아서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진의 실적을 위해서 큰 기대를 안 하고 맡긴 업무도 놀라울 정도로 완성도 높게 업무를 마무리해주고 있었다. 오히려 애매하게 남은 기간에 어떤 업무를 추가로 줘야 할지 고민이 되고 있었다. 인턴이 정직원이 되기에는 충분한 성과를 달성한 것으로 보여서 나중에 본격적으로 같이 일하기 전에 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업무를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회사가 크지 않다 보니 투자를 받기 위해서 실적이 중요해지게 되었다. 사실 우리 팀은 직접적인 실적을 담당하기보다는 다른 팀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연구를 하는 팀이라서 실적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답을 찾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해당 실적과 관련된 이야기가 우리 팀에게도 전달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진이 정직원으로 전환하는 마지막 과정에 대해서 상사가 어려운 질문을 내게 던졌다.

현재 실적이 중요한데 인턴이 혼자 독립적으로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을까요?   


해당 질문을 받고 속으로 너무 황당함을 느꼈다. 인턴을 신입으로 뽑으려는 과정인데 경력직의 기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진에 대해서 변호를 해주기 시작했다.


굉장히 성장 가능성이 커 보이는 친구이고 업무에 적극적이고 사교성이 좋아 팀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혼자서 독립적인 결과물을 당장 만들 수는 없지만 멀지 않은 기간에 결과물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이야기해 준 내용에서 상사는 원하는 부분만 콕 집어서 이야기하였다.


그러면 당장은 결과물을 가져올 수 없는 것이겠네요? 현재 당장 필요한 실무 지식도 부족할 것이고요. 그렇다면 현재 회사 분위기 상 정직원 전환이 힘들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하지 못하고 5초 정도 정적 이후에 내가 말을 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상사와의 회의를 마치고 마음속에서 많은 혼란한 생각들이 들쭉날쭉 튀어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신입 기준으로 충분히 차고 넘치는 기준을 만족한 것 같은데 경력의 기준에 들지 못해서 못 뽑는다니...

경력직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좋은 결과물을 가져다줄 친구인데 아무런 협상 없이 못 뽑는다니...

방금 말한 경력직의 기준을 만족하는 친구는 언제 뽑을 수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고 팀 내부적으로 인력이 부족해서 지금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인데 못 뽑는다니... 

현재 상황이면 우리 팀은 도대체 누구를 뽑을 수 있는 걸까?


하지만 현재 기준이 그렇다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길게 해 봤자 어쩔 수 없다는 소리만 들을 것을 알고 있기에 조용히 생각들을 가둬놓고 진에게 해당 소식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을 시작했다. 일단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전달하는 것이 맞아 보여서 혼자 합리화를 시작했다. 


'이런 황당한 기준을 제시하고 아직 체계도 없는 회사이다 보니 진 같이 잘하는 사람이 현재 회사에 오면 잃을 것이 더 많을 거야.'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업무도 신생 업무라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고 신입으로 들어올 진에게 좋은 커리어를 쌓아주는 체계도 없어서 좋지 않을 거야.'

'현재 분야에서 신입으로 시작한다면 연봉협상을 잘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러면 추후에 좋은 보상을 받기 힘들어질 거야.'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어려운 신생 분야라서 고생만 하고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할 수도 있을 거야.'


이렇게 많은 단점들을 생각하고 나니 한편으로는 진이 떨어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을 전달해 주기 위해서 진을 불렀다. 진에게 회사의 상황으로 인하여 충분히 잘해줬지만 정직원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했다. 이게 말인가 방귀인가 충분히 잘했는데 불가능하다니 내가 말해놓고도 황당하여 추가적으로 생각했던 떨어져서 다행인 이유들도 말해주었다. 그런 이유를 말할수록 진에게 위로가 되어야는데 위로보다는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내용의 설득이었다. 그저 잘해온 진이 상처받지 않고 좌절하지 않기를 바랐다. 진은 울어버렸고 내가 전달한 말들은 오히려 나에게 되돌아와 내가 현재 회사를 계속 다녀도 될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 정직원이 되지 못한 사람은 진이었으나 오히려 내가 깊고 조용한 답답함과 유리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모순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진은 회사를 떠나게 되면서 감정이 마무리되겠지만 내가 해당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순간은 어떤 순간일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배울게 많았던 나의 첫 인턴과의 인연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이런 이별이 있으면 언젠가 좋은 소식으로 또 만날 순간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우리 모두에게 겪었던 일이 상처가 되지 않고 성장에 좋은 영양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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