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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대기업 김팀장 #5

새벽 4시의 리더십

by Keui

서울의 빌딩 숲 속, 늦은 밤 아니, 이른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회사 건물 10층의 불빛은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사무실 안에는 몇 개의 모니터가 불을 밝히며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팀원들은 피곤한 얼굴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보고서는 막바지에 다다랐고, 그 결과물은 모두 김팀장의 책상 위로 모이고 있었다. 김팀장은 창가에 서서 커피를 들고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회사 입구를 향하고 있었다. 동이 트기 전에, 임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모든 준비가 끝나 있어야 했다.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런 노력을 알아주셔야 할 텐데.”

“보고서 다 끝냈어?”
김팀장이 문득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팀원들 사이에서는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네, 곧 최종 확인 드릴 예정입니다.”

송대리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좋아. 그런데 이대로 집에 가지 말고, 아침까지 여기 남아 있어.

임원님들 출근하실 때 바로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자고.”
그의 말은 당연하다는 듯 흘러나왔지만, 듣는 사람들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순식간에 회의실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다들 피곤했지만, 그 누구도 불만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김팀장은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해왔다. 그는 자주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내가 처음 여기 들어왔을 때는 3개월 동안 집에 제대로 간 적이 없었어. 그때 그 프로젝트가 성공하면서 나도 인정받기 시작했지.”

그가 말하는 '노력'에는 실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밤샘 근무, 주말 호출, 심지어 새벽 보고까지도 그가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성과를 위해 팀원들을 동원하는 일도 예사였고, 상사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보여주는 일이야말로 김팀장의 가장 큰 목표였다.

그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새벽 4시에 완성된 보고서는 사실 팀원들이 밤새 머리를 싸매며 만든 결과물이었지만, 김팀장은 보고서를 들고 임원들의 눈에 들어갈 만한 포인트를 집어내기 위해 몇 번이고 수정 지시를 내렸다.
“이 부분 너무 평범하지 않아? 좀 더 강렬한 단어를 써야겠어.”
“임원님들이 좋아하실 만한 그럴듯한 키워드들을 추가해야 해. 뭐, ‘미래’, ‘혁신’, 이런 거 있잖아.”

그가 보고서를 손에서 놓는 순간이 오면 팀원들은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몇 달 전, 주말 근무 지시가 떨어졌을 박대리가 용기를 내어 의견을 냈다.
“팀장님, 이번 주말에는 출근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도 근무를 했어서 이번주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순간 사무실 공기가 멈춘 듯했다. 김팀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더니 특유의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 그런 생각을 할 시간에 일을 더 하면 좋겠네.”

그 이후, 김팀장이 슬쩍 흘리는 말들이 박대리의 평판을 안좋게 만들기 시작했다.

“박대리, 아직 회사 분위기를 잘 모르나 봐.”
결국, 연말 인사 이동 때 박대리는 다른 부서로 옮겨졌고, 성과 평가는 최하위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팀원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조금만 더 힘내자.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 결과는 분명히 따라오게 되어 있어.”
김팀장이 팀원들에게 격려 아닌 격려를 던졌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팀원들의 표정은 무거웠다.

휴게실로 향하던 중, 윤대리는 머리속으로 '나한테 따라오는 결과가 뭘까? 팀장님한테만 따라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자리로 돌아갔다.


김팀장은 완성된 보고서를 들고 회의실로 향했다. 거울 앞에서 옷을 일부러 헝클어지게 만들며 중얼거렸다.
“임원님들께 보여드리기엔 딱 좋은 시간이야. 이걸로 인정받겠지.”

남겨진 팀원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에 지쳐가고 있었다. 커피잔을 들고 있지만 반쯤 잠긴 눈을하고 있는 한 팀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게 김팀장의 리더십인가보네. 소모품이 된거 같네”


새벽의 어둠 속에서 팀원들은 각자의 고민을 품은 채 키보드를 다시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 임원들은 김팀장이 정성껏 준비한 보고서를 검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김팀장은 참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회의실 바깥의 팀원들은 모두 녹초가 된 얼굴로 짐정리를 하고 있었다.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 싶은 나머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 다시 업무를 시작해야 하는 윤대리는 휴게실로 이동을 했다. 휴게실 쇼파에 잠시 눈을 붙이며 생각했다.
'이 회사에서는 보여지는 게 다인것 같아. 진짜 실력은 보여지는 것에 가려서 중요하지 않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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