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글이 덕질을 시작하는 방법
“덕후가 세상을 바꾼다”
“덕질하면 뭐가 좋냐고요? 좋아하는 거 맘껏 누리는 건 물론 돈도 벌죠.”
여기저기서 정말 많이 보이고 들리는 이야기다.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듯하다.
예전에는 하도 많이 봐서 ‘나도 덕후가 되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살면서 해본 덕질 중 그나마 기억나는 건 용돈 모아서 god 테이프 3집부터 5집까지 사본 일, 윤계상 목소리가 “해앵~보옥~해애~” 하며 늘어질 때까지 들어본 일 정도.
생각해보니 그 흔한 브로마이드 하나 사본 적이 없네. ‘오빠들’ 때문에 눈물 한 방울 흘려본 적도 없고, 팬클럽 가입은커녕 콘서트도 안 가보고, 접근성 좋은 음방조차 안 챙겨본 걸 보면 덕질은 내 길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8년째 권태기도, 깨질 위기도 한 번 없이 만나온 남자친구려나. 머글인 나와 달리 남자친구는 어딘가에 깊게 빠질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 덕질을 가장 잘하는 사람.
친구일 때도 신기했다. 우리 둘다 힙합 음악을 좋아했는데, 난 그냥 멜로디만 흥얼거릴 정도로 좋아했던 것에 비해 그는 모든 앨범 이름, 곡 순서는 물론 가사까지 전부 외워버렸다. 너무 신기했다. 아니, 이렇게 빠르고 말도 많은데 대체 어떻게 외우지.
그는 영화도 정말 좋아한다. 힙합 좋아하는 것과 비슷하게 영화 대사도 다 외운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는 10번씩 보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는 재개봉할 때마다 보러 간다. 나도 같이 간다.
처음에 이해가 잘 안 갔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다니다 보니, 봤던 영화를 또 보는 것이 괜찮은 경험이란 걸 남자친구 덕분에 알게 됐다.
좋아하는 브랜드에 대한 덕질도 비슷하다. 애플도, 프라이탁도 한 번 빠지기 시작하니까 거의 팀 쿡, 마커스 수준으로 제품명부터 가격, 신상 론칭 일정까지 다 꿰어버린다.
무엇보다 리버풀 덕후인데, 가끔 쟤는 리버풀에서 태어난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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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취향을 하나하나 다 나열하게 되었는데, 그만큼 내가 잘 못하는 ‘무언가에 깊게 빠질 줄 아는’ 사람이라서 더 인상 깊은 순간이었고, 다행히도(?) 7년 간 알게 모르게 닮아온 것 같다.
그래서- 항상 넓고 얕게 좋아하는 ‘머글’이 ‘덕후’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남자친구에게 내 덕질 능력도 끄집어내 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더니, 꽤 재밌는 대화가 이어졌다.
안 봐도 일단 사두는 거 좋아하고, 동틀 때까지 정주행 하고, 울기도 웃기도, 좋으면 저장해두는, 그런 대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웹툰, 드라마, 영화, 책 같은 콘텐츠를 조금이나마 더 좋아하는 사람이란 것을 발견했고, 그중에서도 ‘대사’에 꽂히는 사람이란 것도 알아냈다.
그래서,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머글의 덕질. (또) 그나마 잘할 자신 있는 것이 글로 남기고 기록하는 거라, 생각난 김에 브런치 매거진도 냅다 만들었다.
제목은 <(머글의) 콘텐츠 덕질 일기>. 부디 제 덕질이 성공하길 바라 주시길. 저도 살면서 한 번쯤은 ‘덕후’ 해보고 싶습니다. 다음 글이 꼭 올라오길 응원해주세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