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라차차 와이키키] 영업글
마땅히 볼게 없던 어느 월요일, 채널을 돌리던 와중에 대사가 많고 캐릭터들이 요란하며 청춘 드라마 같은 것이 보여서 멈추고 보기 시작한 것이 근 두 달 째. 처음에는 유치해서, 시끄러워서 못 보겠다고 생각했건만, 나도 모르게 풉풉하고 웃게 되더니 점차 본방사수를 하게 된 [으라차차 와이키키]. 시트콤이 싹 사라진 요즘, 이렇게 적당히 유치하고 적당히 청춘의 고군분투를 보여주는 코믹 드라마가 반가워서 챙겨본다.
이 드라마의 미덕은 캐릭터들이 대체로 사랑스럽다는 건데, 그 중에 서진(고원희 역)은 희대의 캐릭터다. 어릴 때부터 아빠 따라 면도하는 시늉을 해보다가 점차 털이 잘 자라는 체질이 되어 이제는 한나절만 면도를 안해도 턱주변이 거뭇해지는 이 여성! 한 화 걸러 한 번 꼴로 수염이 올라온 모습이 나오곤 하고, 화장할 때 턱, 인중, 입가를 쿠션으로 야무지게 두들기며 수염자국을 지우는 장면도 많이 나온다. 연인에게마저 스타워즈의 털복숭이 캐릭터 '츄바카'에서 따온 '바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까지. (바카바카 하길래 너무 싱그러워서 '박하'라고 불러주는 건 줄 알았는데....)
늘 수염 때문에 쩔쩔 매며 에피소드 양산하는 서진이 수염으로 통쾌한 한 방을 날린다. 친오빠가 남자친구와의 교제를 허락해주지 않았을 때 수염을 기르며 투쟁에 들어간 것이다. 오빠가 가장 꼴보기 싫어하는 모습이 자신의 수염이니 자신의 남자친구를 인정해줄 때까지 면도를 안하겠다는 것. 보통 딸이나 여동생이 가족이 반대하는 일을 무릅쓰려 할 때 머리카락이 깎인다든지, 쥐어 뜯긴다든지, 여튼 여성스러움의 상징으로 유일하게 인정받는 체모인 머리카락을 잃는 방식으로 벌을 받는다. 그런데 서진은 반대로 털을 기르며, 그것도 턱수염을 기르며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다니, 얼마나 그녀스럽게 사랑스러운 투쟁인가!
앞으르도 서진이 종종 면도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 물론 여성의 털은 여전히 수치와 놀림거리의 소재이지만, 그래도 서진처럼 털이 있어도 사랑스럽고, 털을 보여줘도 연애에 지장이 없고, 때로는 털을 무기로도 삼는 여자들을 볼 수 있다는 건 유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