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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tOh Dec 17. 2016

[디바이스 리뷰]SONY MDR-1000X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는 프리미엄 무선헤드폰

흔히들 남자는 너무나 미련하고, 과감하면서도 때로는 여자보다도 민감할 때가 있다.


나 또한 그 흔한 남자들 중에 한 명인지라, 가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지름신은 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번주, 나는 아내의 눈을 피하고 아이의 귀를 막아 또 하나의 택배를 영접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여성들이 가장 이해할 수 없다는 영역 중 하나인 음향기기, 이어폰으로는 두 개, 헤드폰으로도 두 개가 있었으니 이번으로 다섯 개의 리시버를 보유하게 되었다. 중고나라에서 날 열심회원의 입지로 올려준 기억 저편의 리시버까지 포함한다면 몇개일지 나도 모른다. 무슨 드래곤볼도 아니고 참. 모으면 내 소원 들어주는 것도 아닌 기기를 뭐하러 다섯개나 보유할까.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자. (쓰다보니 지금 걱정이 되는건 사실 첫 소개도 하지 못한 나의 이미지를 말도 안되게 부수느라 정작 기기 리뷰는 하지 못할거라는 거다.)


시즌을 타지만 난 날씨 좋은 아침엔 자출을 한다. 회사원인 내가 한껏 세팅한 머리를 헤드폰으로 누를 수는 없는 법. 당연히 이어폰이 필요하다. 그런데 유선은 어딘가에 걸려 벗겨지기에 당연히 블루투스 이어폰을 쓴다. 그게 1번 기기, Jaybird X2다.


X2는 음질 때문에 샀다. 블투이어폰이 뭔 음질이냐 하겠지만, 들어보면 안다. X2는 자체 음질 튜닝을 했다. 오토매틱 시계의 무브먼트가 자사 무브먼트일 때 더 가치를 발하듯이(사실은 자사인지 아닌지는 품질/성능과 큰 상관 없지만), 내부에서 튜닝을 했다는 건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그만큼 너무 둥둥거리지도 않으면서 타격감이 적절하기에, 이녀석은 '자출용 주력기'+'러닝용'으로 활용 중이다.


근데 무선의 음질을 뛰어넘을 니즈는 여유있는 시간에 천천히 걷는날 꼭 필요하다. 그래서 가벼운 이어폰이면서도 BA유닛이 적절히 조화된 SE535LTD를 쓰게 된다.


그래도 어느날, 장거리 비행을 하게 된다면 당신은 인이어 이어폰의 답답함을 12시간동안 참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샌프란시스코가 12시간이다. 드디어 헤드폰이 필요한 순간. 자다 깨다 정신없을 때 선이 안끊기려면 가벼운 블루투스 헤드폰이 필요하겠지. 그래서 BOSE Soundlink OE 가 필요해진다. 이녀석은 작은 유닛임에도 보스 특유의 부드러운 저음이 극단적으로 부드러운 쿠션과 함께 '가벼운 편안함'을 제공한다. 특히 요다현상(헤드폰을 쓰면 귀가 튀어나온듯한 모습, 유닛이 클수록 심하며, 브릿지가 헤드에 결합된 형태에 따라 다르다.)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거쳐야 할 명기. (하지만 배터리가 아주 조금 아쉬울 때는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과도하게 충분한 용량이기에 가벼움으로 승부하기에 딱 좋은 기기)


하지만 역시나, 가벼움의 반대편엔 궁극의 음질이 있다. PC파이나 하이파이를 꾸민 분들도 있겠지만 난 아이가 있는 몸. 8살 꼬마가 있는 집에서 하이파이를 놓는다는건 보릿자루와도 같다는건 애아빠들은 잘 알거다. 그렇다고 휴대용 DAC를 들고다니기엔 거추장 스러운. 그래서, 결국 유닛에 DAC가 내장된 기기를 찾게 된다. 그게 SONY MDR-1ADAC.

사실 많이 팔리지도 않고, MDR-1 라인업 중 가장 매니악한 모델이지만, 지금도 피아노음악을 집에서 혼자 즐길 땐 이녀석이 빠지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지난주까지의 상황. 이미 와이프는 내가 잡다한 시계나 IT기기에 빠져있다는걸 잘 안다. 그 돈으로 내가 뭐라도 배웠으면 노후라도 준비할 수 있지 않냐며 가끔은 타박을 하지만, 아직은 내가 직업상 조금이라도 감각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듯 하다. 하지만 조용할 때가 더 무섭기 때문에, 알아서 잘 조절해야만 이 외다리를 잘 지나갈 수 있다. 그래도 기술을 배워야만 한다는 강박증은 나이가 들 수록 간절해지기 때문에, 방탕한 생활(?)은 접은지 오래다.

그리고 지난 주, 난 다시 결심을 하게 된다. 남자는 결심의 동물인가. 새해에 결심하고, 여름 전에 결심하고, 여름 지나고 결심하고, 추석 때 다시 결심하고, 연말에 결심하고. 살 때 결심하고, 팔 때 결심하고.


MDR-1000X는 일단 호불호가 있을 수 없는 음질을 가지고 있다. 밀폐형이고, NC가 된다. 두 가지 컨디션만으로도 답답하다는 느낌이 있겠지만, 공간감이 풍부하고 타격"감"이 매우 정확하다. 베이스 드럼에도 잔상이 없고. 그래프는 필요 없다. 때론 감성과 필링이 그래프를 넘어서니까. 그래프 보고 사서 망한 제품이 한둘이 아니기에 이 부분은 자신한다. LDAC, 하이레졸루션, 보유한 기술력은 다 좋은데, 사실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다양한 기능, 그 중에서도 Sense Engine은 이번 1000X에서 가장 돋보이는 기능이다.


우리는 나름대로 소니가 오랫 동안 자사 헤드폰 라인업의 포트폴리오 구축에 많은 공을 들여왔음을 알고 있다. 리시버로 만족 못해서 포터블DAC와 플레이어까지. 엑스페리아에 심어진 소프트웨어까지, 디지털기기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음향을 추구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MDR-1 라인만도 다섯가지가 넘는다. 기본유선, 블루투스 2종, NC, DAC내장형, MK2까지. 비즈니스에 대한 진지함이 돋보이는 부분. 종합가전브랜드가 이렇게나 절실함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누군가는 뱅앤올룹슨을 데려와서는 최악의 모델을 만들고, 누군가는 배터리를 터뜨리는 실수를 한다. 아마도 소니는 사업부를 도려내는 과정에서 절실함을 느끼고, 넥타이를 다시 조여맨 듯한 느낌이다. 바지 뒷주머니에 들어가는 노트북을 추구한 기업. Obsession 이 매우 두드러진 기업이 일본 기업인 것 같다. 정치적 이슈를 떠나 배울 것은 배워야 할 듯.


케이스의 만듦새는 매우 우수하다. 특히 유닛의 충돌을 방지한 쿠션과, 접어넣는 형태에 맞춘 디자인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무선인걸 다 아는데도 뱃지를 붙여주면 든든하다.
Left unit. 블랙색상에 가죽 재질은 고급스러움을 더 돋보이게 한다.

Right 유닛은 그 유명한 "김창완이 손대면 아이유가 들을 수 있다는" 퀵어텐션과 동서남북 제스처 기능(좌우 : 곡넘김, 상하 : 볼륨, 두번노크 : 곡 재생/정지, 통화)을 한다.


Noise Canceling은 수준급, Ambient Sound는 신의 한수,  Quick Attention은 금상첨화


Noise Cancelling은 BOSE의 그것과 유사한 수준. 사실 NC이 가져가야 할 기본기는 잡음 차단이다. 상당히 충실하다. Ambient Sound는 노멀과 보이스, 두가지 모드가 있다. 노멀은 지속적으로 들리는 사운드를 제외하고 "튀는" 사운드 모두를, 보이스는 "목소리"만을 들려주는 기능이다. 예를 들어 선풍기나 도로 소음, 청소기 등 끊김없는 소리는 잘 안들려도, 키보드 타이핑이나 경적소리, 목소리 발구르는 소리 등은 들린다. 보이스는 그야말로 "목소리"만을 들려주는데, 과연 그게 가능한가? 라고 생각한다면, 두 모드를 두고 키보드를 두드려보면 알 수 있다. 노멀에서는 들리지만, 보이스 모드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이 Ambient Sound가 왜 중요하냐면, 옆사람과 대화를 해야 하거나, 도로를 걸어가야 할 때 "들어야 하는" 소리는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경험이 있다. 밀폐형 이어폰을 쓰다가 경적소리를 못듣고 유유자적 걸어다녔다던가, 헤드폰을 쓰고 있는데 누군가 불러서 한쪽을 꼭 귀 옆쪽에 걸쳐야만 했던.


Ambient Sound를 켜면 이런 인지가 가능하며, 거기에 슬쩍 오른쪽을 손으로 덮어 퀵어탠션 모드를 더하면 헤드폰을 벗지 않고 대화하는 신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은근 중독성 있다. 상대방은 신기해하기만 하지만서도.


다만 Ambient Sound에 조금 더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은, 아직은 가릴 음과 통과시킬 음에 대한 로직이 완벽히 잡히진 않은 듯 여러 소리가 섞여 들어온다. 옷이 부딪히는 소리, 비닐 펴지는 소리 등 민감한 소리들에 대한 왜곡이 아직은 느껴지는 수준.


1000X는, 인간이 사운드를 즐기는 Context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얼마나 잘 되어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어디서 쓰고, 무엇이 왜 필요한지를 알고 만든 듯한 진정한 디자인. 때로는 하이테크보다, 기술적인 진보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느낄 때가 더 감동적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사실 하드웨어적인 배려는 조금 아쉽다.


각각의 버튼은 전원/페어링, 노이즈캔슬링, 앰비언트사운드를 컨트롤한다. 오작동을 방지하기 위해 버튼이 프레임 높이에 있되 돌기를 튀어나오도록 디자인하였으나, 사실 눈으로 보지 않고 손으로 컨트롤하기에는 약간의 짜증이 섞인다. 장님도 아니고 더듬거리게 되니 말이다.


위 사진은 내가 갖고 있는 또다른 기기, Bose Soundlink OE 의 버튼. 딱 보면 뭔지 알겠는 저 느낌은 확실히 미적감각보다 실용성을 염두에 둔 디자인이지만, 그러다고 저게 딱히 미워보이거나 튀어보인다기보단 기능지향적이고 내구성이 있어보이는,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손의 감각만으로 컨트롤을 하기 위한 전형적인 디자인이라고 본다.


MDR-1000X가 그런점에서 아쉬움을 남기기는 했다. 근데 이게 1000X만의 문제는 아니다. 1ADAC도 그랬었다. 버튼은 4개인데 뭐가 뭔지 벗어봐야 알 수 있는 디자인은 그다지 나이스하진 못한 것 같다. 심미적인 디자인에 아직은 얽매인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MDR-1000X가 주는 사운드 기술력은 그런 한계점을 넘어선다. "그들이 어떤 제품을 만들고 싶었던 건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기기는 마치 소니의 기술자들과 대화를 하는 느낌마저 들게 만든다. 비싼 가격은 물론 흠이다. 하지만 가성비를 따진다면 나는 LG의 쿼드비트를 추천해주고 싶고, 기술적인 업그레이드를 감안한다면 가치는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그런데 사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정작 제대로 된 운동도 못하고 수영장에서 아이를 기다릴 때, 잠들기 전 1시간 정도는, 간만에 책을 읽을 땐,


김동률의 산행이든, 윤종신의 가을옷이든, Coldplay의  A head full of dreams든, Tomi Swick의 December Sky든, 내 마음에 제대로 된 힐링을 주고 싶었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 중요한 순간에, 적어도 나는 가성비를 들이대고 싶진 않았다.


그것이, 남자들이 미련하고 과감한데도, 때로는 굉장히 민감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이 정도 고민을 하게 한 디바이스라면, 나름 우수하고도 가치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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