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 온 정성과 힘.
군생활을 하며 처음 맞게 된 명절에 외출을 나와 영화관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추석 극장가를 겨냥해 여러 영화들이 개봉했었지만, 나는 김지운 감독님의 '밀정'을 선택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의 시작을 기다렸다. 시대극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홍보 포스터에 믿고 보는 배우인 송강호와 공유를 내세웠던 터라 군인의 소중한 외출 시간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감이 들었던 것 같다.
나의 선택은 옳았다.
영화 초반 김상옥 열사의 영화 같은 이야기를 진짜 스크린에 담아낸 것과 일본 경찰들이 서서히 의열단원들을 옥죄어오는 과정은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박했다. 특히 의열단원들이 숨어있는 수녀원 소탕작전이 실패하자 매서운 인상의 하시모토 경부가 가죽장갑을 채찍 삼아 하급자를 연거푸 때리는 장면은 무서울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실제로 영화를 마치고 관객들의 입에서 그 장면이 자주 오르락내리락했었고 다들 하시모토 경부를 맡은 배우가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관객들에게 '존재감'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려준 덕분에 그 배우는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많은 작품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밀정’이 개봉한 지 수년이 흘러 최근 한 토크 프로그램에('유 퀴즈 온 더 블럭') 나온 그 배우의 모습은 나에게 존재감을 한 번 더 각인시켰다. 이 배우는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놀아주는 여자'에서 주연을 맡았던 '엄태구'였다. 선이 굵은 인상 탓에 강렬한 배역을 주로 맡았던 그의 내향적인 모습은 신선함을 넘어서 충격적이었다.
토크 프로그램에 나와 수줍음을 한가득 보여준 엄태구 배우의 모습을 보고선 그가 나온 작품과 예능 프로그램을 정주행 했다. 박찬욱 감독님이 극찬했던 독립영화 '잉투기'와 첫 상업영화 주연작이었던 '낙원의 밤'을 본 뒤에 첫 예능 출연작인 '바퀴 달린 집(시즌1 9화)'을 시청했다. 그러곤 본인 스스로도 촬영할 당시에 소름이 돋았다는 '택시운전사'와 최근의 토크 프로그램을 다시 보며 엄태구 배우의 냉탕과 온탕을 경험했다.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다 보니 엄태구 배우의 극중 배역과 본인의 원래모습에서 오는 온도차이는 그가 '온 앤 오프'가 확실한 사람임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온 앤 오프가 확실하다는 건 크게 2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일할 땐 확실히 일하고 일을 마치면 가정이나 사생활에 업무를 끌어들이지 않는 사람. 두 번째는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자신이 설정한 목표 등을 처리할 때에는 프로페셔녈이 느껴지는 사람. 어떻게 보면 두 모습은 아주 조금은 다른 것일 뿐 결국엔 같은 것일 지도 모른다.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연예인들 중에는 생각보다 엄태구 배우처럼 내향형인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아이유, 유재석, 강호동' 등 방송에선 확신의 외향형일 것 같은 그들도 모두 내향형이다. 물론 단순히 방송에서 알려진 MBTI로 분류했기에 정확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분야에서 누구나 인정할만한 커리어를 확실히 쌓은 프로라는 점이다.
최선: 온 정성과 힘.
엄태구 배우도 지금의 그간의 행보로 본다면 누구나 인정할 만큼 착실한 커리어를 쌓아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성공한 커리어에도 숨겨진 모습은 있었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수줍음 많은 성격을 '숙제'로 생각하며 지금까지 연기를 해온 게 기적이라고 밝혔다. 또, "연기를 하면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맡은 바 작품에 최선을 다하자."라 답했고, 연기 신념을 묻는 질문에도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자."라며 항상 '최선'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음을 드러냈다.
미치다: 공간적 거리나 수준 따위가 일정한 선에 닿다.
매사의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 순간에는 정말 미칠 만큼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 나는 이러한 미침을 엄태구 배우에서 보았다. 그의 수많은 커리어들은 본성을 뛰어넘는 열정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엄태구 배우가 말하는 '최선'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스타 엄태구
우리는 흔히 연예인을 스타라고 표현한다. 말 그대로 ‘별’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태양은 약 1억 5천만 km 정도 떨어져 있다. 빛의 속도로 달려도 8분 13초 정도가 걸리기에 우리는 항상 태양의 8분 전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존경받을만한 연예인을 스타라고 부르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스타가 되기 위해 지금껏 최선을 다해 달려왔고, 또 계속 빛나기 위해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여전히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