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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Nov 12. 2023

추억의 차 '세피아'를 들어보셨나요

요르단 신혼여행기




"아니, 저 차는 움직이긴 하는 거야?"


요르단은 '클래식카' 천국이다. 이어지는 레트로 열풍으로 클래식카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하지 않나. 사람들이 많이 찾는 클래식카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그런 클래식카를 찾는 사람들은 단언컨대 요르단에 와야 한다.


요르단 길 위는 19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적어도 30년의 시간을 아우르는 곳이다. 기아가 만들던 '세피아'라는 차를 들어봤을지 모르겠다. 30대인 나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 차는, 1992년부터 2000년까지 판매됐던 기아 승용차다. 마지막 판매가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2000년이니, 우리나라 도로 위에선 당연히 이 차를 찾아보긴 어렵다.


앞 유리창이 다 깨진 요르단의 꼬질꼬질한 차. 이 차가 잘 움직이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요르단엔 세피아가 있다. 내가 어린 시절 우리 아빠가 타던 현대 엘란트라도 있다. 움직이는 차들을 보면 '저 차가 지금 굴러간다고?'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것들이 여럿이다. 자동차 앞 범퍼가 사라진 차도 왕왕 보인다. 요르단에는 뜨거운 날씨에도 창문을 열고 달리는 차가 많은데, 이유는 이러하다. 첫째, 너무너무 오래된 차라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거나. 둘째, 에어컨을 틀어도 너무너무 오래된 차라 덥거나. 셋째, 에어컨을 틀면 차가 힘이 들어서 앞으로 나가지 않거나. 여러모로 더워도 에어컨을 못 트는 것이다.


고속도로 속도제한은 80~100km인데, 사실 요르단은 속도 제한이 필요 없는 곳이다. 왜냐면 속도를 내고 싶어도 차가 달리질 못한다. 아마 20년 이상 묵은 세피아나 엘란트라를 100km로 밟으면 고속도로 한 복판에서 차가 멈출지도 모른다. 어쩌다 속도를 내며 앞서가는 차를 발견하며 꼭 자동차 창문을 닫아야 한다. 이 차들이 내뿜는 매연은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냄새다. 파란 하늘을 뒤덮을 만큼 어두컴컴한 매연의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숨 쉬기가 어려울 정도다.




요르단 길 위를 전 세계 클래식카들이 돌아다니는 이유는 요르단이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중고차 수입국이기 때문이다.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한 요르단은 자동차 대부분을 수입한다. 그런데 새 차를 사는 건 요르단 사람들에게 너무 큰 부담이다. 지난해 기준 요르단의 1인당 GDP는 4850달러로, 전 세계 113위 수준이다. 한국의 1인당 GDP가 3만3147달러이니, 단순 계산해도 약 7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새 차는 꿈도 못 꾸고 중고차를 대량 수입하는 이유다.


우리나라 중고차 수출 현황만 봐도, 요르단이 2등 수출국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수출한 중고차를 사들인 국가를 보면 1위가 리비아, 2위가 요르단이었다. 워낙 중고차에 후한 인심 덕분에 한국에서 요르단으로 중고차를 수출할 때 웬만한 사고차들은 손쉽게 요르단 국경을 통과한다고 한다. 컨테이너선에 더 많은 차를 싣기 위해 차를 완전히 반토막 낸 뒤에 요르단에 가서 다시 붙이기도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지인이 말해준 건데 사실여부는 모르겠다).


한국 중고차가 워낙 많다 보니 곳곳에서 한글을 만나기 쉽다. 특히 현대자동차 '포터'나 기아 '봉고'는 거의 100% 한글이 쓰여있다. '용달', '이삿짐센터', '전화 주세요 010-0000-0000' 등.


클래식카를 찾는 사람은 요르단으로 가시길.


오래된 차에 아이들이 가득 타있는 모습. 버스 등 대중교통이 제대로 안 돼 있는 요르단에선 오래된 차라도 상관없다. 물건을 실을 수 있고 사람들이 탈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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