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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Nov 26. 2023

"너 이스라엘 좋아해?"

요르단 신혼여행기 


"너 이스라엘 좋아해?"


개구쟁이처럼 언니, 친구와 물장구를 치던 9살 소녀는 눈을 똥그랗게 뜨며 나한테 물었다. 

그리고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소녀는 말했다. "나는 싫어(I hate Israel)." 



요르단 아카바 호텔에서 요르단 소녀 3명을 만났다. 12살 언니와 9살 동생, 그리고 그의 친구. (이름이 어려워 그새 잊어버렸다.)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데,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쳐다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내 주변을 맴도는 게 느껴졌다. 나한테 말을 걸고 싶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역시나. 


"너 한국인이야?" 

"응" 


BTS의 힘인지, 넷플릭스를 위시한 K-콘텐츠의 힘인지, 아마 둘 다일테지만, 요르단에서도 한국에 대한 인기는 뜨겁다. 한국 콘텐츠를 좋아하니,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도 높다. 


"나 한국 드라마 진짜 좋아해. 넷플릭스에 있는 건 거의 다 봤어." 


이렇게 스몰토크가 시작됐다. 그런데 요르단에 사는 12살짜리가 발음도 좋고 영어도 나보다 훨씬 잘하는 게 아닌가(물론 내가 영어를 못하기도 한다). 알고 보니 이 친구는 요르단에서 좀 사는 친구였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프랑스 국제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그래서 영어로 수업을 하고, 프랑스어도 하고, 아랍어도 할 줄 알았다. 엄마는 시리아 사람이고, 아빠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란다. 아빠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시민권자이기도 하다고 했다. 


서로의 신상 조사를 마치고 무리 중 한 명이 우리가 있던 아카바 호텔 건너편에 보이는 땅을 보며 말했다. 

"저기가 팔레스타인이야." 

"응. 알아." 

"너 이스라엘 좋아해? 나는 진짜 싫어하거든." 




중동 사람들은 지금의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이라 부른다. 팔레스타인은 지중해와 요르단 강 사이에 있는 주변 지역을 일컫는 지명이다. 보통 이스라엘 영토와 가자 지구 일대를 말한다. 우리는 이 지역을 보통 이스라엘이라 부르지만, 중동 사람들은 이곳을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른다. 


내가 신혼여행을 떠난 날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날이기도 했다. 처음 계획에는 요르단을 가는 김에 바로 옆에 붙어있던 이스라엘을 둘러보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다가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사기 바로 직전에 이스라엘 여행 계획을 접었다. 신혼여행을 떠나기 한 2~3주 전이었을 테다. 예루살렘 등을 보고 싶긴 했지만, 요르단-이스라엘까지 여행하기엔 너무 일정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스라엘을 여행지에 넣었으면 전쟁으로 여행 계획을 수정하는 게 불가피했을 것 같다. 


아무튼 가족들의 걱정을 뒤로한 채 우리는 요르단으로 떠났다. 요르단은 평화로웠지만, 전쟁 중인 그 땅은 생각했던 것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한가하게 수영을 하면서도 누군가는 죽고 다치고 있는 그 땅이 보였다. 전쟁 중에도 사람들의 인생은 흘러갔다. 




최근 식사를 함께 한 분이 미국에서 유학 중인 자녀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줬다. 딸의 절친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최근에 인스타그램 등 SNS로 "너는 팔레스타인이랑 이스라엘 중에 누구를 지지하냐"는 메시지가 잇달아 왔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유대계 미국인이었다. 딸은 지금까지 그 친구가 유대인인지를 전혀 몰랐다고 한다.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그 친구가 유대인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알다시피 미국에서 유대인의 힘은 세다. 유대인들이 정치, 경제 등에서 상당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도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그런데 미국 사회에서도 요즘 젊은 사람들이나 지식인의 생각은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과연 이스라엘의 행동이 정당한가, 당초 팔레스타인을 폭력적으로 지배한 건 이스라엘 아닌가 라는 여론이 스멀스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주류와 유대인들은 이러한 '반유대주의' 색출 작전에 들어갔다. 미국 월가에서 일하던 한 애널리스트는 반유대주의 발언을 했다가 직장을 잃었다. 팔레스타인계 하원의원인 라시다 탈리브 의원은 최근 미연방의회에서 '견책' 처분을 받았다. SNS에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영상을 올렸다는 게 그 이유였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중 누구를 지지하냐고 물었던 유대계 미국인은 단 한 번도 이스라엘을 가본 적이 없었다. 실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미국인이었다. 내게 이스라엘을 좋아하냐고 물은 9세 소녀도 마찬가지다. 팔레스타인 출신 아버지를 뒀지만, 그는 요르단에서 나고 자란 요르단 사람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을 흘러온 역사와 정체성의 힘이란 무섭다. 유대계 미국인은 자기를 '유대인'으로 정체성을 세우고, 그 유대인의 토대를 이스라엘로 인식했다. 요르단 소녀는 자기를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정체성을 세우고, 그 토대를 팔레스타인 땅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마주하지 않은 서로를 미워하고 있다. 


아카바에서 보이는 팔레스타인 땅이 한없이 아름다우면서도 슬퍼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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