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 밴스 <힐빌리의 노래>
미국이란 나라에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시티> 애청자인 친구 하나는 애를 낳기 전 남편이랑 뉴욕에 가는 게 꿈이라고 했다. 20대 때부터 했던 이야기였는데, 실제로 작년에 출산 전 뉴욕 땅을 밟았다. 뉴욕 맨해튼의 높은 빌딩, 제각기 개성을 뽐내며 거리를 걷는 뉴요커들은 내 친구에겐 낭만이었다.
나는 좀 달랐다. 처음 방문한 뉴욕은 내가 좋아하는 도시의 느낌은 아니었다. 워낙 대도시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뉴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지만, 나는 '과연 이 도시가 사람이 살만한 곳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우선 너무 시끄러웠다.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온갖 소음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뉴욕은 냄새도 역했다. 길을 걸어갈 때면 어디서 나는지 모르는 각종 오묘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뉴욕에 있던 한국 사람들한테서 들어야 했던 '항상 조심하라'라는 말. 내가 뉴욕에 도착한 날 지하철을 기다리던 한 동양인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모르는 아시아인을 누군가가 지하철 선로로 밀었다. 아시아인 대상 혐오 범죄였다. 지하철은 위험하니 타면 안 된다고 하고, 택시도 위험하니 혼자 타면 안 된다고 하고, 아무리 맨해튼 중심가라도 밤에는 위험하니 혼자 걸으면 안 됐다고 했다. 혼자서는 자유롭게 도시를 걷지도 이동하지도 못하는 이곳이 과연 사람이 살만한 곳인가,라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낮에도 혼자 길을 걸을 때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희롱 섞인 휘파람 소리를 들어야 하는 곳이었다.
집을 잃은 미국 사람들을 그린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리먼 사태 이후로 집을 잃은 사람들은 교외에 있는 주차장에서 생활한다. 주차장은 하나의 작은 마을이다. 그곳에서 크고 작은 차를 대놓고 사람들은 먹고 자고 일상을 지낸다. 영화 <노매드랜드>에 나오는 말처럼, 그들은 '집(house)'은 없지만 '집(home)'은 있다. 차에 몸을 욱여넣고 잠에 든 뒤 아침에 일어나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저마다 일터를 향해 떠난다. 돌아오면 차에 실어놓은 그릇, 컵, 접시, 수저, 포크를 꺼내고 저마다 사온 인스턴트식품을 내놓는다. 그렇게 주차장 구석 한 곳에 자리 잡은 나무 식탁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다시 잠에 든다. 그들의 삶이 불행한 건 아니었으나, 그런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나는 국가로서의 미국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1등 나라 미국은 자국 시민들을 보호하는가. 홈리스와 고통을 잊기 위해 마약에 빠진 중독자들이 넘쳐나는 미국이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국'인가.
책 <힐빌리의 노래>는 내가 생각했던 미국을 적나라하게 그린 책이다. 모든 인종이 섞여 자유롭다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 적나라한 계급 격차, 지역 격차 등. 온갖 차이가 차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생긴 권력관계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힐빌리는 몰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를 일컫는 말이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윤택했던 이 지역은 옛 명성을 뒤로하고 소외된 지역이다. 이곳에서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들을 힐빌리로 부른다. 이 힐빌리 출신인 J.D 밴스가 온갖 역경을 딛고 예일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자수성가하는 이야기가 담겼다. 39살의 흙수저 출신으로 당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오른 인물이다.
밴스의 인생은 '막장'이었지만, 그가 말하길 그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상냥하고 교육에 열의 있는 조부모 밑에서 보호받으면서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할 수 있었다. 부모는 어릴 적 이혼했고, 그 뒤로 밴스의 엄마는 여러 남자들을 거친다. 밴스는 엄마의 남자친구가 바뀔 때마다 엄마를 따라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폭력적인 남자친구도 있었고, 상냥한 남자친구도 있었으나 그에게 울타리가 돼주긴 못 했다. 게다가 엄마는 마약중독자였다. 처음에는 그는 자신이 믿어주면 엄마가 마약중독에서 벗어날 거라 생각했지만, 마약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밴스의 엄마는 나중엔 중독성이 강한 하드드러그까지 손에 댔다. 하지만 홀로 서기에 실패한 부모 밑에서 밴스는 홀로 섰다. 홀로 선 걸 넘어서 힐빌리의 자랑이 됐다.
이들 힐빌리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자였다. 민주당이 '노동자들을 위한 정당'을 지향할 때 이야기다. 그들에게 기성 정치인은 잘난 척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런데 민주당을 지지했더니, 자기가 낸 세금으로 사람들이 술과 마약을 샀다. 일하지 않고 복지정책에 기대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되레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낀다. 이 사람들이 도널드 트럼프로 마음을 돌린 이유다. 뉴욕타임스는 이 책을 트럼프 당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책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을 존경한다. 열악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성공을 해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니 존경을 받고,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종종 이 사실을 잊는다. 내가 했듯이 너희도 노력을 하면 가능하다는 논리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게 함정이다. 내가 모든 경제, 사회, 문화적인 배경을 뒤로하고 노력해서 성공했으니 너희도 할 수 있다는 논리. 사회 문제를 뒤로 한 채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폭력으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
책에 나온 밴스의 통찰은 일리가 있다. '학습된 무기력', 힐빌리는 인생에서 자기 힘으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고 노력하지 않으며 노력 부족을 무능력으로 착각했다는 거다. 밴스는 힐빌리가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을 바꿔야 한다는 거다. 밴스는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보다 중요한 건 '가정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나느냐'에 있다는 점도 짚는다.
하지만 밴스가 놓친 게 하나 있다. 혼자서 무기력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거다. 주변이 가난, 마약, 폭력으로 물들여있는 상황에서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고 상상하긴 어렵다. 누군가가 그에게 상상할 수 있는 세상이 있음을 알려줘야 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돈을 푸는 걸 넘어서 제도적으로 바뀔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다. 설사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더라도, 혼자서 고군분투했는데 벽에 부딪혔을 때 사람들은 종종 포기를 선택한다. 밴스에게 있던 좋은 조부모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럼 그들을 도울 사람은 누구일까. 국가가, 정부가 모든 일을 할 순 없지만 이들의 인생에 책임감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