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도시, 기업의 성장과 죽음에 대한 보편법칙
생명체가 망의 특성에서 유래한 스케일링 법칙의 제약을 받는다면 도시 또한 그런 특징이 나타나지 않을까? 도로, 수도, 전기, 통신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망이 필요하다. 정보, 사람, 자원, 에너지가 도시 곳곳에 적절하게 공급되어야 도시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시의 망 또한 생명체의 순환계처럼 어떤 법칙을 나타내지 않겠는가? 맞다. 그런데 저자는 이 법칙을 설명하기에 앞서 도시의 본질적 특징이 바로 사람에게서 나온다면서 도시 이론가 제인 제이콥스의 주장을 소개한다. 왜냐하면 도시는 여러 가지 망이 나타내는 물리적 특성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다양한 상호관계가 본질이기 때문이다. 도시는 시민들이 펼치는 다양하고 지속적인 상호 작용을 도시가 제공하는 여러 되먹임(feedback) 구조가 강화하고 촉진하는 창발적 시스템이다. 도시는 단순한 물리적 구조가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가 만드는 복잡 적응 사회 관계망 체계이다. 이 점을 이해해야 도시에서 나타나는 스케일링 법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미국의 도시 이론가 제인 제이콥스의 활동을 소개한다. 제인은 저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1961년)을 통해 도시를 생각하는 방식과 도시계획을 하는 방식 양쪽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1950년대에 뉴욕시 그리니치빌리지를 관통하는 4차선 유료도로 건설 계획을 저지하는 투쟁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때의 도시계획은 주민의 사회 조직과 그들의 삶을 무시하고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이루어졌다. 도심을 관통하는 대로를 건설하고, 그 옆으로 획일적인 대규모 공동주택을 지어 도시 재생을 하거나 슬럼가를 철거하는 방식이었다. 오랜 투쟁 끝에 그녀가 결국 승리했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도 받았다. 저자는 이런 식의 도시 계획이 낳은 이른바 ‘전원주택’ 단지에서 보낸 시절을 회상하며 제인이 주장하는 바에 힘을 실어준다. 도시민 사이에 생겨나는 자율적, 자생적 상호관계가 결국 도시를 도시답게 만든다. 삶을 고려하지 않은 도시 계획 구역이 급속히 슬럼화가 되거나 단순한 베드타운이 되어 도시의 기능을 하지 못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흐르면 자생적으로 다시 사람들의 관계가 형성되고 사회가 조직된다. 저자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그 예로 제시한다. 카프카 작품 속에 나올 법한 음산한 관료 체제를 떠올리게 만들던 콘크리트 정글이 지금은 다양성과 생명력이 넘치는 도시로 변모했단다. 워싱턴은 현재 정부가 제공하는 일자리에만 의존하지 않는 경제권을 갖추었다. 젊은이들이 모여들며, 맛집들이 늘어나 과거의 인상과 달라졌다.
도시는 실로 놀라운 발명품이다. 로마, 예루살렘, 북경, 런던, 파리와 같은 도시는 수천 년 전부터 유명했다. 수많은 전쟁과 파괴와 몰락을 겪고도 오히려 더 번성해왔다. 심지어 원폭으로 파괴되었던 히로시마도 다시 재건되었다. 도시는 여러 사람이 모여들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다양한 관계를 맺는 마당이다.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는 반드시 죽어 사라진다. 기업도 극소수를 제외하면 인간의 수명보다 훨씬 짧게 생존한다. 도시의 생명력은 아직도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 도시의 탄생과 몰락을 일반화하기엔 인간의 역사가 너무나 짧다. 도시와 인간의 삶이 맺는 상호작용은, 최초 설계 의도와 다른 모습으로 도시를 변화시킨다. 생명체에서 진화가 그러하듯이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난 도시의 변화는 인간의 상호작용이 최적화되는 방향이다. 그런데 현재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급격한 도시화의 흐름은 자연적인 시간의 긴 흐름에 최적화를 맡길 수 없다. 아주 거대한 규모의 도시가 급속도로 생겨나고 있다. 새로 생겨나는 많은 거대 도시들이 동시에 문제를 겪는다면 세계 인구의 많은 비율이,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도시의 스케일링이 도시의 물리적 구조와 인간의 삶을 조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는 듯 보인다. 과연 그런지 도시의 스케일링 법칙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위 그래프는 도시의 크기(인구)에 따른 주유소 수를 나타내는 그래프이다. 가로 축과 세로 축의 눈금 수치가 역시 지수 규모로 바뀐다. 점선은 기울기가 1이다. 주유소 수가 나타내는 기울기는 약 0.85로, 생물의 대사율이 보여준 기울기 0.75(4분의 3)보다 조금 크다. 기울기가 1보다 작으므로, 도시의 인구가 늘수록 필요한 주유소의 수는 줄어든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 이런 스케일링(로그 눈금에서 기울기가 1보다 작다)을 저선형 스케일링이라고 한다. 인구가 2배(100%) 늘어난다면 주유소의 수는 85%만 늘어나면 충분하다. 만약 인구가 100배(10의 2제곱) 늘어난다면 필요한 주유소의 수는 50배(10의 0.85*2제곱 = 10의 1.7제곱 = 50.118……)만 늘어나면 된다. 그런데 (당연하게도) 이런 기울기를 나타내는 속성이 주유소의 수 하나가 아니다.
전선, 도로, 수도관, 가스관의 총 길이와 같은 교통 및 자원 공급망과 관련된 기반시설의 양도 거의 동일한 지수 0.85에 맞추어 거의 같은 양상으로 규모가 증가한다. 이런 스케일링은 세계 어디서나 거의 비슷하다. 도시의 기반시설 스케일링은 생명체와 지수만 다를 뿐,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생명은 25%를 절약하지만, 도시는 그보다 덜한 15%만 절약한다. 이런 규모의 경제는 우리의 직관과 다른 사실을 드러낸다. 도시가 커질수록 기반시설이나 자원이 절약된다면, 쓰레기나 오염 물질의 배출도 줄어든다. 절대적 양은 거대 도시가 많겠지만 일인당 배출량은 오히려 줄어든다. 대신 뒤에서 보겠지만 노출되는 기회는 늘어난다.
이 그래프는 도시의 인구와 몇 가지 속성의 관계를 나타낸다. 임금, 전문직의 수, 특허 수이다. 위에서 자원이나 기반 시설은 도시가 클수록 절약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경제적 속성이 나타내는 양은 반대로 늘어나지 않겠는가? 생명체가 커지면 대사율이 절약되는 비율에 딱 맞게 수명이 증가하지 않았던가? 도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위 그래프의 기울기는 모두 1.15다. 기반시설과 자원이 15% 절약되는 비율이 고스란히 사회경제적 양의 증가로 돌아온다. 앞서 기반 시설에서 보여진 규모의 경제와 달리 수확 체증(incraesing returns to scale)이 나타난다. 이런 스케일링은 초선형 스케일링이라 부른다. 임금, 특허 건수 같은 양은 긍정적인 양이다. 그런데 사회경제적 양에는 이런 긍정적인 종류만 있지 않다. 안타깝게도 범죄 건수, 오염, 질병의 수도 똑같이 15% 증가한다. 도시가 커질수록 더 많은 혁신과 임금과 기회가 생기지만 그만큼 쓰레기, 범죄, 오염, 질병도 늘어난다.
어째서 도시가 이런 공통점을 가지는 걸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간 사회 관계망의 구조와 동역학이 세계 어디에서나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도시는 사람들과 이 사람들이 맺는 관계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과 집단과 공동체를 이루는 양상은 거의 비슷하다. 생물학에서 이야기한 망의 특징 3가지(공간채움, 말단단위의 불변성, 최적화)는 도시의 기반시설망이 가지는 특징과 같다. 사회 관계망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상호작용의 망이 사회경제적 공간(관계의 장場)을 집단적으로 채우는 방식으로 다른 개인이나 집단과 관계를 맺는다. 도시는 개인 사이의 연결성을 최적으로 만들어 사회적 자본을 최대화하는 구조로 진화한다.
도시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맺어지는 마당(장場)이기 때문에 망의 세 가지 특징에 더해 프랙탈 구조가 더해져야 연결성이 최대가 된다. 이전의 도시계획이 가진 문제점은 도시의 물리적 구조를 직선이 중심인 단순한 다각형으로 설계한 데서 나온다. 접촉이 최대화가 되려면 프랙탈 구조를 가져야 한다. 인체에서 뇌의 주름, 소화관의 주름, 순환계 및 신경계가 뻗어나가는 구조 모두가 에너지와 자원과 정보의 교환을 최대로 하기 위해 프랙탈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가 프랙탈 구조가 아니면 사람들 사이의 접촉이 덜 일어나고 사회적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도시들을 보라. 서울만 해도 강남의 직선과 대비되는 강북 구도심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어떤 정서를 만드는가? 강남역 주변의 밤문화와 예전 피맛골의 밤문화가 다르지 않았던가?
위 그림의 왼쪽은 프랑스 파리의 성장 패턴이다. 오른쪽은 세균 균체의 모습이다. 이처럼 도시의 구조는 프랙탈형 기하 구조로 뻗어나간다. 도시를 구성하는 물리적 기반시설과 사회경제적 활동은 둘 다 자기 유사성을 가지는 프랙탈형 망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물리적 구조와 사회경제적 활동은 서로를 되먹임 고리로 삼아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한계를 설정한다. 예를 들어 교통망은 사람의 이동성에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가한다. 사회적 상호작용은 물리적 환경에서 일어나므로 물리적 기반시설에 영향을 받는다. 한편,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상호작용의 수도 제한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한번에 수십, 수백 명과 동시에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없다. 진화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이른바 ‘던바 수’를 제안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의미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 숫자는 대략 150여 명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도시의 규모가 아무리 커도, 우리가 일상에서 친밀하게 지내는 정도에 따라 사람을 분류하면 평균적으로 이 숫자가 나온다. 사람들 사이의 상호 작용에서 비롯된 관계망과 사람의 뇌가 가진 관계맺기의 수적 한계는 도시의 물리적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도시의 스케일링 법칙은 우리의 삶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을까? 도시의 크기(인구)가 커짐에 따라 물리적 기반 시설은 15% 절약되고, 사회경제적 양은 반대로 15% 늘어난다고 했다. 사회경제적 양이 늘어나는 이유는 일인당 맺게 되는 상호작용이 그만큼 증가한다는 뜻이다. 도시가 커지면서 사회적 상호작용이 늘어나면 우리가 처리해야 할 정보도 늘어난다. 이는 우리가 사는 삶의 속도를 증가시킨다. 조용한 시골 마을보다 서울의 삶이 더 정신없이 핑핑 돌아간다. 사업장이나 기업도 더 자주 생기고 더 빨리 없어지며, 거래도 더 빨리, 더 많이 이루어진다. 시간이 가속되는 것처럼 느낀다. 이것은 사회 관계망이 증가하는 되먹임 고리를 통과하며 생겨나는 창발적 현상이다. 사회적 상호작용은 더 많은 상호작용을 낳고, 혁신은 다른 혁신을 자극하고, 부는 더 많은 부를 생산한다. 생물은 4분의 1 거듭제곱 법칙에 따라 수명이 늘어났지만, 도시에서 사회경제적 시간은 15% 수축된다.
쥘 베른이 1873년에 발표한 모험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제목 그대로, 사람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여행을 할 때, 80일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1889년에 미국에서 두 여성기자가 실제로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떠났는데 각각 72일과 76일이 걸렸다. 지금은 시속 700km 비행기를 타면 60시간 정도 걸린다. 교통수단의 발달은 사람이 단시간에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거대 도시에서 먼 거리를 부담없이 움직일 수 있게 했다. 도시에서 교통 수단의 속도 증가는 통근 시간을 줄어들게 하기보다 통근 거리를 늘리는데 쓰인다. 이는 시간이 가속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우리가 이동시간이 짧아졌지만 그렇게 절약한 시간을 여유롭게 쓰던가? 아니다. 1956년,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의 손자인 같은 이름의 찰스 다윈은 과학 기술의 발달로 미래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만 일하고 남은 시간을 여가에 쓸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는 어떤가? 통신, 교통, 산업공학이 찰스 다윈이 예상조차 못했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우리는 그때보다 더 바쁘게 산다. 삶의 시간이 가속되었기 때문이다.
삶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도시가 커질수록 사람들이 걷는 속도도 빨라진다. 도시가 커질수록 걷는 속도가 10% 정도 빨라진다. 사회경제적 양이 증가하는 15%가 아닌 까닭은 어느 정도는 사람의 신체적 구조가 가지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 책에서는 주민이 수천 명인 소도시과 100만 명이 넘는 거대 도시의 보행 속도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차이가 난다고 한다. 삶의 속도가 그만큼 빨라진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상호관계를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저자는 포르투갈과 영국의 도시에서 유선 전화 통화가 이루어진 횟수를 측정했다. 이를 그래프로 나타내니까 사회경제적 양과 같은 속도, 1.15 거듭제곱 법칙을 따라 증가했다. 포르투갈 시골 도시 릭사는 4,200명의 주민이 사는데, 수도 리스본은 인구가 56만 명이다. 리스본 주민이 릭사에 사는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약 2배 더 많이 통화하고, 통화 시간도 거의 두 배가 길다.
스케일링 법칙에서 생명체와 구별되는 도시의 특징이 중요하다. 생물은 몸집이 커질 때마다 대사율이 절약되었다. 그래서 삶의 속도가 느려지고, 성장에 한계가 생겼다. 도시의 대사율은 어떨까? 도시는 물리적 기반시설에 더해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성장을 촉진하고 도시를 유지하는 대사율 개념은 사회경제적 활동을 포함한다. 전기, 물, 통신, 유통과 같은 물리적 자원과 에너지에 부, 정보, 혁신, 사회적 자본을 더해야 한다. 둘 모두 에너지 공급을 통해 이루어진다. 물리적 기반시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테고, 사회경제적 활동도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난방, 교통수단의 운행,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기, 통신,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이런 에너지가 부를 늘리고, 혁신을 일으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공급되는 에너지와 자원은 도시가 커짐에 따라 절감되지만, 사회경제적 양은 반대로 증가한다. 이 사회경제적 양이 1.15라는 거듭제곱 지수만큼 증가한다면 사회적 대사율도 여기에 맞추어 초선형으로 증가한다.
생물에서는 크기가 커지면서 유지보수에 쓰이는 에너지가 성장에 쓰이는 에너지보다 더 많아지기 때문에 점점 성장이 둔화되고 마침내 죽게 된다. 도시는 반대다. 1.15 거듭제곱은 초선형이므로 도시가 커질수록 지수적으로 대사율이 늘어난다. 도시가 커질수록 유지보수에 쓰이는 에너지보다 성장에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증가한다. 따라서 도시가 커질수록 더 빨리 커져간다. 책에는 세계 주요 도시가 성장하는 그래프가 나온다. 모두 지수적으로 성장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도시는 생명체와 달리 삶의 속도가 가속되고 한계가 없이 성장한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인간은 생명체로서 정보처리 속도와 양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 지구의 표면적도 일정하다. 끝없이 삶의 속도가 증가하고, 도시가 커질 수 없다.
저자 역시 이렇게 인류적 과제를 제기한다. “21세기에 우리가 직면할 주요 도전 과제 중 하나는, 경제에서 도시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겨우 5,000여 년 동안 존속해온 사회적 체계들이 그것들을 낳은 수십억 년 역사의 ‘자연적인’ 생물 세계와 계속 공존할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도시의 스케일링 법칙에서 사회경제적 양, 도시의 대사율이 초선형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성장이 가속화된다고 했다. 실제로 그렇다. 우리는 경제 성장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로 GDP를 눈여겨본다. GDP 성장율이 몇 %라는 말은 작년에 비해 지수적으로 성장을 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 상태에 적응되어 있다. 저선형 스케일링을 따르는 생물은 앞서 보았듯이 성장에 한계가 있고, 삶의 속도가 느려지며,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초선형 스케일링을 따르는 것은 어떻게 될까?
초선형 스케일링에서는 방정식을 풀이한 일반해가, 전문 용어로 ‘유한 시간 특이점(finite time singularity)’이라는 특징을 나타낸다. 유한 시간 특이점은 인구든 GDP든 특허 건수든, 해당 대상을 통제하는 성장 방정식의 수학적 해가 어떤 유한한 시간 안에 무한히 커진다는 것을 뜻한다. 지수적으로 커진다면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이런 일은 명백히 일어날 수가 없다. 그것이 바로 무언가가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불가피하게 정체와 붕괴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우리는 ‘혁신’을 일으켜 유한 시간 특이점을 넘어서거나 피할 수 있었다. 혁신을 통해 게임의 법칙을 바꾸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수 있었다. 혁신이 이러한 전이를 이루고 ‘시계를 다시 맞춤’으로써 정체와 붕괴를 회피한다. 그러면 전체 과정이 다시 시작된다. 초지수적 성장이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다시금 우회해야 할 새로운 유한 시간 특이점에 다가간다. 인간의 창의성, 독창성, 발명 능력이 허용하는 한 붕괴는 점점 더 먼 미래로 미루어진다. 자원의 한계 아래서 열린 성장을 유지하려면,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혁신의 주기가 지속적으로 되풀이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지속적인 성장이 유지되려면 이어지는 혁신들 사이의 시간 간격이 점점 더 짧아져야 한다. 전반적인 삶의 속도가 더 빨라질 뿐만 아니라, 우리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 혁신 또한, 삶의 속도처럼 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속도에 한계가 있듯이 혁신의 속도 또한 언제까지나 가속될 수 없다.
위 표에서 보이듯 혁신의 속도는 엄청나게 증가했다. 더이상 얼마나 빨리 혁신해야 다음 유한 시간 특이점을 피해갈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렇게 제안한다.
“우리가 전환을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고, 그러면 우리는 열린 성장이라는 개념 전체를 받아들이고 ‘진보’를 정의할 어떤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야 하거나, 지금까지 이룬 것에 만족하고 지구 전체의 생활 수준을 높여서 그에 상응하는 높은 삶의 질을 누리게 하는 쪽으로 에너지를 쏟아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그쪽이 진정으로 주요 패러다임 전환일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범세계적 유행) 사태가 일어난 지금, 저런 제안이 더이상 비현실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수많은 과학자와 환경운동가가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을 강조했지만, 경제 성장이라는 달콤한 와인에 취한 세계는 위험을 무시한채 지수 성장을 지속하려고 노력했다. 코로나 사태로 세계인의 다수가 외출이 금지되고, 공장이 문을 닫고, 여행 및 관광 산업은 멈추었다. 그대신 맑아진 대기, 깨끗해진 바다가 돌아왔다. 자본과 자유경쟁에 복지와 의료를 맡긴 후유증도 엄청나다. 사회적 약자가 제일 먼저 질병과 가난의 위험을 맞닥뜨려 최대의 피해를 입고 있다. 이른바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 다음 시대 우리 삶의 표준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금의 위기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촉진할 수 있다. 과학과 수학은 인류가 끝없이 물질적 부를 증가시킨다고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거듭 경고한다. 스케일링 법칙도 마찬가지다. 기하학에서 프랙탈은 무한대로 자기 유사성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동물의 순환계는 수십 번도 분지를 펼치지 못한다. 수학에서 지수함수는 무한대로 쉽게 증가한다. 그러나 인간 신체의 물리적 제약과 지구의 지리적 경계는 인류의 물질적 발전에 한계를 설정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그 한계를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물리학과 수학의 간단한 스케일링 공식을 바탕으로 생명과 도시, 그리고 기업의 속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왜 많은 속성이 크기에 좌우되어 변화하는지 설명한다. 나아가서 그런 스케일링 이론이 단순한 숫자를 넘어 우리의 삶과 미래에 어떤 통찰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입증한다. 생명체의 성장과 죽음을 망의 동역학으로 설명한 부분은 새롭고 흥미진진했다. 인체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도시의 발전에서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왜 직사각형으로 번듯한 도시계획이 예상과 달리 번번이 실패하는지 프랙탈 구조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도 신선했다. 그리고 도시가 지수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삶의 속도와 혁신의 속도가 가속화되는 정도를 정량적으로 풀어낼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의 한계가 어디쯤인지 따져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어떤 지식을 얻어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차원 이상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