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잉여
“Don’t Be Evil” 인터넷 기업 구글의 기업 모토이다. 구글이 검색과 광고로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할 때, 이 모토는 새로운 정보기술 기업의 도덕성을 나타내는 말로 유명했다. 2021년 지금은 어떤가? 대다수는 구글을 떠올릴 때 이 모토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선한 기업의 대명사였던 구글은 현재 ‘빅 브라더’의 현대식 버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구글만 변했을까? 혁신을 외치며 신기술을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처음에는 새로운 기업문화를 일군다며 칭찬을 받았다. 지금은 독점이나 개인정보 관리 소홀 및 유출, 고객 감시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개인이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을 인터넷 세상에서 마음껏 할 수 있다고 전망하던 이들은 이제 개인들이 거대 인터넷 기업에 종속되었다고 개탄한다.
현재 뉴욕 증권시장 시가총액을 살펴보니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사우디 아람코,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텐센트, 버크셔 해서웨이, 테슬라, 알리바바 순서로 상위 10위를 차지하고 있다. (출처 :
https://companiesmarketcap.com
)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와 전기자동차 회사, 그리고 투자사가 각 1개씩이고 나머지는 모두 테크 기업이다. 중국 기반인 텐센트와 알리바바를 제외하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인터넷 기업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들은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지배하고 있을까?
하버드 대학교 교수 쇼샤나 주보프가 쓴 <감시자본주의 시대>가 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책은 21세기 <자본론>이라고 할만큼 놀라운 분석과 비판을 담고 있다. 19세기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자본이 잉여노동을 착취해 이윤을 내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폭로했다. 주보프는 21세기 들어 기업들이 잉여노동을 착취하는 방식을 넘어서, 행동잉여를 먹고 자라는 감시자본주의 시대를 열었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테크 기업에 대한 비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개인정보보호, 즉 프라이버시 문제다. 다른 하나는 독점 문제다. 그런데 주보프가 보기에 이는 드러난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과거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을 쪼개어 몇 개의 기업으로 분리했던 방식으로 처분한다 해도, 이들이 이윤을 내는 방식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유튜브와 페이스북의 추천 알고리즘은 놀랍다. 유튜브의 인기 동영상을 보면 알고리즘이 이끌었다는 댓글이 자주 달려 있다. 또, 페이스북은 무서울 정도로 지인 추천을 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 사람과 나의 인연을 아는 걸까? 알고리즘이 사람들을 어떤 동영상으로 이끌고, 지인을 연결할 수 있는 이유는 구글과 페이스북이 사용자의 디지털 정보를 거의 무제한으로 가져가기 때문이다. 인터넷 안에서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은 데이터로 치환될 수 있다. 이 데이터는 현재 사람들의 대부분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없이, 디지털 기기 없이 하는 행동이 얼마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기업이 자신의 서비스를 더욱 정밀하고 높은 품질로 제공하는데 쓰인다고 한다. 이때 모든 데이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쓰이지 않는 데이터도 있다. 이런 찌꺼기 데이터가 ‘행동잉여’다. 기업은 이런 행동잉여를 사용해 광고의 타겟팅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고,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한다. 산업화 시대에 자본주의를 작동하게 만든 것이 잉여노동이었다면, 지금은 행동잉여가 감시자본주의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왜 감시자본주의라는 말을 쓰는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과 전문가가 데이터 수집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조지 오웰의<1984>에서 나온 ‘빅 브라더’는 오히려 지금 더 유명할 것이다. 기업들은 알고리즘을 통하여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조종한다. 이들은 데이터의 벽 너머,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종하고 있다. 주보프는 감시자본주의가 사용하는 이러한 디지털 도구를 ‘빅 브라더’와 구별지어 ‘빅 어더 Big Other’ 라고 부른다. 이런 모델을 탄생시킨 기업은 구글이며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 등이 차례로 이를 배우고 도입했다. 한편, 애플은 이를 두고 갈등을 겪고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최근 눈에 띄는 뉴스가 있었다. 애플이 새로운 OS를 발표한 개발자회의에서 데이터 보호 기능을 강화시켰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 앱은 사용자가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의 검색, 위치 정보 등을 가져와서 자신의 서비스에 이용했는데 이를 사용자가 원하면 막을 수 있는 기능을 준 것이다. 이 기능은 이미 올해 초에 적용되었고 새 OS가 나오는 하반기에는 더욱 강력하게 작동할 예정이다. 가장 심대한 타격을 받은 페이스북은 여러 차례 강하게 애플에 저항하며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다.
만약 애플마저 감시자본주의 체계로 전면 돌입한다면 우리는 순식간에 노예와 다름없는 신세가 될 것이다. 그것도 우리가 노예란 것도 거의 인식하지 못한채, 알고리즘이 이끄는대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고 애플이 감시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기업도 아니다. 이들도 자신의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전략으로 개인정보보호를 다른 기업과 차별화했을 뿐이다. 만약 구글의 방식이 애플에 더 이익이 된다고 판단한다면 그렇게 바뀔 것이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위험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과거의 3대 교양을 문(학),(역)사,철(학)이라고 했다. 이제는 바뀌었다. 정보기술(기본적인 이해와 기기를 다루는 법을 포함), 생명과학(의학을 포함), 그리고 경제다. 교양이란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기초가 되는 지식과 학문이다. 문사철이 시효를 다한건 아니지만 이제는 과거처럼 독점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틀로 작용하지 않는다.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데 더 중요한 것들이 나타났다. 인터넷과 정보기술 기기를 어떻게 활용해야 내 정보를 최대한으로 보호할 수 있는지 아는 일이 고전문학 읽기보다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용상의 편리와 프라이버시 중간 어디쯤을 내가 원하는지도 알아야겠다.
알고리즘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알고리즘이 예측하지 못하는 의외의 선택이 필요하다. 이는 타인과의 의외의 만남에서 비롯될 확률이 높다. 이 선택도 결국 알고리즘 안에 들어가겠지만, 알고리즘이 유도하는 대로, 즉 수동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일이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에 비견될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의 추천만 따르지 말고, 능동적인 활용을 할 수 있어야겠다. 이때 전통의 문사철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상을 넘어서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사실 감이 오지 않는다. 이미 데이터 자본주의, 감시 자본주의에 너무 젖어 있다.
이 책 <감시자본주의 시대>를 아직 읽지 않았다. <서울리뷰오브북스 0호>에 실린 서평을 읽고, 책을 보기 전에 사전 예습처럼 이 글을 썼다. 꼭 책을 읽고 생각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나처럼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