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k-In Stage Vol.2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원고를 한참이나 미뤘다. 미리미리 안한게 첫 번째 변명이고, 이래저래 벌린 일들을 수습하느라 정신없이 살았던 것이 두 번째 외면이자,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반나절을 있어도 도저히 이 페스티벌을 내가 온전히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부담감이 마지막 가장 정확한 이유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Director는 어깨를 툭 치기만 할 뿐 전혀 부담을 주지 않았다. 나에게 관심을 달라.)
부산 유일의 서브컬쳐 축제. 부산을 대표한다고 하는 여타 축제들에 비해 현저히 작은 규모이고 부산시민들에게도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말 그대로, Sub들의 축제이다. 그런데 이 축제가 뭐라고 난 글자 하나하나 정확히 신중하게 전달하고자 그렇게 고민을 한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이 축제가 가지고 있는 방향과 정체성을 논하는 순간부터 차츰 이해할 수 있게된다.
제로페스티벌 자체가 가진 상징성과 같은 수많은 의미와 메시지들을 온전히 전달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 싶다. 내가 가진 지식과 정보로는 수없는 한계를 느낀다. 따라서 보여지는 축제의 이미지와 느껴지는 대로 경험했던 뜨거운 거리를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한다.
부산대 앞 일대는 오래전부터 학생운동의 중심지로서의 그 역할을 다해왔다. 수많은 청년들이 자신들의 메시지를 사회에 전달하기 위해 때로는 강력한 시위로, 민주화 이후에는 문화적 행동으로 거리는 늘 북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청년들의 공간이었다.
제로페스티벌을 주최하는 재미난 복수는 그러한 청년들의 움직임이 집대성되어 탄생된 단체이다. 2003년, 상상력의 빈곤, 다양성을 제한하는 기득권에 대해 ‘재미나게 놂’으로써 복수한다는 뜻으로 부산대학교 정문 앞 거리를 배경으로 거리축제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열린공간으로서의 거리에 문화의 힘을 실음으로써 지나가는 사람들과 호흡하고 사회를 위한 예술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외치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1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그들의 행동은 재미난다.
그들의 활동은 흐른 세월만큼 다방면으로 확대되었다. 거리에 축제를 만드는 것을 넘어 일상 속에서 늘 문화와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2008년 아지트라는 공간을 만들고 낮은 문턱을 추구한 덕분에 다양한 국내외 문화예술인사들이 부산에 올때면 아지트를 방문하게 되었고 더불어 재미난복수의 이름은 전국을 넘어 아시아 국가들과의 국제교류를 통해 더욱 그들의 색깔은 선명해지고 풍부한 에너지를 기반으로 더욱 왕성한 활동을 펼칠 수 있게되었다.
공연을 중심으로한 축제활동을 넘어 전시, 그래피티, 영상, 퍼포먼스까지 전방위적인 예술활동을 펼침으로써 예술가가 비로소 해야할 역할인 사회문제에 가장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고 늘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축제준비과정을 통해 점점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많아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에너지들이 총체적으로 집결된 축제가 바로 ‘제로페스티벌’이다. 2000년대 초반 부산대 문창회관의 쓰지 않는 공간을 점거하며 시작된 재미난복수가 2008년 드디어 자신들만의 공간 Indie Space Agit를 열게되었고 자신들의 예술성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확장되자 활동의 영역도 점점 커지게 된 것이다. 2011년 ‘부산독립예술제 – 선인장’으로 시작된 이들의 움직임이 2012년 ZERO Festival로 이름을 바꾸고 그 영향력을 더욱 넓히게 되었다.
제로페스티벌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서브컬처에 기반을 두고 있는 축제이다. 대중들은 간혹 서브컬처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는 모호함으로 인해 혼동을 일으키곤 하는데 어떤 이는 서브컬쳐를 대중문화를 반대하는, 주류와 대립하는 문화로 오해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재미난 복수가 지칭하는 서브컬처는 주류와 대립하는 문화가 아니라 단지 미디어를 따르지 않는, 자신들의 활동에 대해 어떤 장르이든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활동을 영위해 나가고 스스로 주도해나가는 행보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소위 문화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해 너무 둔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반성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제는 종편까지 등장하며 강력해진 미디어의 힘으로 미디어가 말하는 것이 유행이 되고 그들이 옳다고 하는 것이 진실이 되는 경향을 수없이 보아왔다. 가끔은 영화 트루먼 쇼와 반대로 다수가 하나의 사회를 작은 상자 속에서 보여지는 대로만 판단하는 과오를 범한다는 생각도 든다. 재미난복수는 축제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고 참여자들에게 고민을 하게 함으로써 ‘가치’라고 하는 것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축제를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몇몇 전문가의 일방적인 지시로 인한 진행이 아닌 ‘아래에서 위로’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불러모으고 미래의 기획자를 양산하기 위한 대학생들까지 기획주체로 참여시켜 다소 돌아가는 과정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끌어내고 추합해내는 어려운 과정을 택하고 있다. 단 한 명의 의견이라도 듣고 피드백을 하려하니 내부적으로 잡음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축제진행과정은 전적으로 응원하고 싶다. 이런 과정으로 인해 의미가 생기고 축제를 만든 사람으로써 제로페스티벌이라는 타이틀이 오랫동안 가슴 한 켠을 짜릿하게 하는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부산에서 열리는 축제라고 해서 부산의 아티스트만을 위한 무대는 아니다.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단체들과 예술가들도 부산의 이러한 움직임을 주목하고 직접 참여하여 무대를 풍성하게 했다. 대표적으로 2013년에 뮤지션 ‘강산에’가 헤드라이너로 참여하며 화제를 일으켰고 이 외에도 3호선 버터플라이, 화나, 회기동 단편선, 사우스카니발 등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뮤지션과 자립음악생산조합 등의 독립단체, 아시아네트워크를 통해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아시아의 예술가들까지 제로페스티벌을 찾아 작품을 선보이고 부산이라는 지역과 교류를 했다.
제로페스티벌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가 매번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새로운 문화의 바람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행사 당일에는 부산대 앞 4차선 도로의 통행을 막고 그 곳에 무대를 세워 지나는 사람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신나는 일탈을 즐길 수 있다. 사회의 질서를 위해 마련된 법이자 규정이지만 인간의 기본 욕구는 늘 ‘일탈’을 바라보게 한다. 자동차가 우선으로 그 힘을 과시했던 거리에서 사람을 우선시하면서 맘껏 뛰어놀 수 있게 한다는 발상은 문화 흐름의 끝에는 역시 시민에게 있어야 한다는 재미난 복수의 사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득권 앞에서 늘 재미나게 놀았던 그들에게도 매번 위기가 함께했다. 부산대 일대에 NC백화점이 들어서며 충돌이 일어난 것. 부산대 거리를 점거하여 축제를 만드는 재미난복수에게 NC백화점은 고객의 유입을 방해한다며 관할기관인 금정구청에 이의를 제기했고 이에 충돌이 일어난 것. 당시 지역 민방인 KNN과 여러 매체에 소개되며 회자가 되었고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결국 제로 측은 거리를 전부 쓰지 못하고 차가 통행할 수 있는 통로를 내 줄 수 밖에 없었다.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08년부터 지역 예술가들이 모이게 되는 구심점 역할을 하며 네트워크 형성의 결정적 역할을 했던 재미난 복수의 공간 ‘Indie Space Agit’가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채 문을 닫게 된 것. 수많은 작업물들이 탄생했고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며 생각을 교류했던 도심 속 쉼터가 사라지는 광경을 본다는 건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은 그동안의 다양한 기록물들에 존재하는 아지트의 모습과 여전히 회자되는 그 날의 추억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작년에 큰 인기를 끌었던 한 영화의 카피는 현재의 재미난 복수의 행보를 여실히 보여주는 듯 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와 강력한 네트워크는 또 한번 답을 내릴 수 있게했다.
2015년 제로페스티벌은 다시한번 도약을 위해 새롭게 재정비를 단행했다. ‘재장전’이라는 타이틀로 부산대 앞에서 펼쳐지던 페스티벌 장소를 장전역 굴다리 일대로 옮기게 된 것. 또한 아지트를 대체할 공간 역시 장전동 장성시장 일대에 터를 잡으며 새로운 지역에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자 한다. 부산대보다 유동인구의 유입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부산대를 벗어난 예술가들이 장전동 일대로 터를 다시 잡으면서 앞으로 예술적 움직임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되는 지역이다. 그 시작을 알리는 움직임이 바로 올해 제로페스티벌이 된 것 같다.
제로페스티벌은 많은 사람들에게 애증으로 기억되고 있기도 하다. 수익이 전혀 나지 않는 일에 자신들의 생계까지 책임져가며 축제 준비를 하는 것은 단순한 신념이 아니고서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당연히 축제 자체에 온 신경을 쓰기도 힘든데 다른 일도 병행을 해야하고 이로 인해 축제진행이 다소 미흡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페스티벌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려 하고 즐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치열하게 준비하는 것이 말 그대로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총감독부터 자원봉사자에 이르기까지 축제에 참여하는 일원들 모두 수평적 관계에서 비롯된 소통방식과 축제의 주체로써 공유하는 작은 의견들 하나하나가 반영이 되는 어렵지만 재미있는 방식. 회의 중에 술도 참 많이 마시고 그만큼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과감하게 하기도 한다. 유대감이 깊어지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지근거리에서 이 축제를 늘 지켜봐왔던 당사자로써 가끔 의문이 드는 것은 그들은 과연 기획을 하고 술을 마시는 것일까, 술을 마시고 기획을 하는 것일까, 술을 마시면서 기획을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매번 존재하지만 결과물은 늘 치열한 노동 후에 마시는 맥주와 같은 청량함을 제공한다는 것. 시원하고 상쾌하게 자신들이 소중하게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사회에 매번 선보였으면 좋겠다. 요즘 말로 ‘사이다’같이 내년에도 그렇게 시원하게 해달라. 재미난 복수와 제로페스티벌의 재장전을 누구보다 응원하는 필자는 올해 장전된 탄알이 과연 어느 과녁을 뚫을지 매우 궁금하다.
2015. 10. 22. WAESANO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