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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EHAN Jan 06. 2019

실천, 한 걸음의 무게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장혜영 감독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포스터

 상투적이고 지루한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멋있다. 반해버렸다.

 나긋나긋한 목소리 위로 전달되는 정확한 발음, 여리여리해 보이지만 왈가닥 동생을 단칼에 제압하는 강인함 등은 그녀의 매력을 한층 돋보여 준다. 하지만, 굳이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작은 목소리의 그녀가 누구보다 크게 보이고, 들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녀가 그동안 걸어온 행보. 그 실천의 무게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불안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그녀, 장혜영이 걸어온, 앞으로 걸을 그 걸음들에 더욱 박수쳐주고 싶었다.

 단 1명만을 뽑는 연세대 실업계 전형에 당당히 합격한 후 4년 장학금을 받으며 '잘' 살아가던 혜영은 돌연 학교와의 공개 '이별'을 선언하며 학교를 떠난다. 어느 날 교정에서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너무나 좁아보였다는 그녀는 자신에게 4년간 장학금을 지급했던 장학회에 장학금 덕분에 공부했고, 떠나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선언하며, '별종' 칭호를 얻음과 동시에 '쿨'하게 떠났고, 그 후 2년간 친구의 친구를 통하며 세계를 여행한다.

 그렇게 떠났어도 당신이 연세대 출신이라는 것에는 변함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흥!' 콧방귀를 뀌는 것만 같은 오마이뉴스 인터뷰 전문이 꽤나 인상깊다. '메마른 생각에 슬프고 안타깝다'고 말하는 2011년도, 26살의 장혜영이 현재의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 것만 같아 화끈거리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혜영은 새로운 문제와 맞닥뜨린다. 발달장애로 인해 시설에 맡겨져 있는 그녀의 동생 혜정 때문이다. 장애인 보호시설의 인권침해 문제를 만나게 되었고, 조금 더 나은 시설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방향을 바꾸어 동생을 시설에서 나오게 한 후 '사회'에 적응하게 하는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된다. 

 동생과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치고박고 지지고 볶으며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이름으로 유튜브를 통해 공개하기도 했으며, '어른이 되면'이라는 제목의 책 그리고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만 가지고도 할 이야기가 많으나 내가 바라본 이 프로젝트는 장혜영의 추진력이었다. 본인이 느낀 문제의식을 거침없이 가능한 플랫폼을 모두 동원하여 세상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한명의 히어로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13인치 모니터 안의 그녀는 세상 그 누구보다 강인하고 단단한 철학을 바탕으로 한걸음을 내딛는 '거인'이었다.

  

에세이 <어른이 되면> 표지

  혜영은 동생을 위해서 살고 있지 않다 했다. 스스로를 위해서, 스스로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서 이렇게 사는 것이고, 다행히도 동생이 본인의 걸음에 함께 해주는 것이라고. 

 동생으로 인해 장애와 관련한 발언을 많이 하고 있고, 그에 대한 활동들을 마주하게 되었지만 그녀의 주된 활동지인 유튜브를 살펴보면 참 다양한 주제에 관련하여 많은 생각을 토해낸다. 페미니즘, 사회복지부터 그녀와 그녀의 동생의 작은 일상까지 다채로운 영역에서 그녀의 철학에 기반한 작은 걸음들이 걸어져 나가고 있다.

 

장혜영 유튜브 <생각많은 둘째언니> 커버

   

 난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중인거야!

  

 영화 소공녀에서 본인의 취향을 지키기 위해 집을 포기한 미소는 스스로를 여행중이라 규정했다. 주변에서 당연하다 여기는 것들이 본인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고, 나아가 중요한 것들을 지키는 '실천'을 함으로써 대안을 찾아나갔다. 어쩌면 혜영과 혜정도 그런 여행중인 것은 아닐까. 많은 것들을 포기해서라도 나를, 동생을, 친구들을 지킬 수 있는 그러고는 그 여행의 끝에 무사히 할머니가 되어있는 둘을 만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만 같다. 

 

장혜영 싱글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커버


P.S 음악이 참 좋다. 노래도 잘만들고 잘한다. 이쯤되면 조금 짜증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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