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김치찌개는 빨갛지가 않았지

하루를 지키는 요리 EP.1 김치찌개

by DAEHAN

엄마의 김치찌개는 빨갛다기보다 주황빛에 가까웠다.


언젠가 동네 식당에서 먹었던 새빨간 김치찌개는 새햐얀 백미밥에 비벼 먹어도 맛있고, 찌개 한입 후루룩 불며 먹고는 밥 한 숟가락을 크게 떠먹어도 맛있고, 어쩌다 걸린 왕건이 돼지고기는 누가 뺏어갈까 홀라당 삼키고는 꼭꼭 씹어 먹었었는데,


엄마의 김치찌개는 빨갛지가 않았다.


빨갛지 않은 김치찌개는 색깔만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맛도 무언가가 아쉬웠다.

밥에 비벼 먹어도 뭔가가 빠진 것만 같고, 고기는 잘 걸리지도 않았었다.

한동안 엄마의 김치찌개는 왜 주황빛인 건지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했다.


지난겨울, 계엄을 일으킨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던 날.

오랜만에 들린 고향집에서 나는 엄마를 도와 김장을 하고 있었다.

허리가 아픈 엄마가 혼자 애써서 김장을 하는 것이 못내 미안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김치가 추석 연휴에 묵은지가 되어 우리 집 냉장고로 돌아왔다.


김치 한 포기 썰어 넣고, 새우젓 두 숟갈, 간장 한 숟갈, 다진 마늘, 양파…썰고는

아쉽게도 돼지고기가 없어 있는 대로 참치 2캔 넣었더니 금세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난다.


묵은지의 색깔만큼이나 새빨간 국물이 올라온다. 두부를 큼지막하게 썰어 넣었다.


성공이다. 빨갛다.


항상 먹느라 정신이 팔려, 촬영은 뒷전이다.


새하얀 밥 한입, 찌개 국물 한입, 그리고 진로 한 잔 꿀꺽.

틀어놓은 야구 중계가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지 않을 만큼 맛있는 이 한 끼에 푹 빠져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김치찌개를 좋아했다.

매일 김치찌개를 해달라고, 고기 많이 넣어달라고, 혹시 라면 사리도 넣으면 안 되냐고 물을 때마다 엄마는 ‘안된다’고 했다. 나는 너무 짜게 먹어서 문제라는 이유와 함께였다.


라면을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할 만큼 짜게 먹는 식습관이 있었던 나는 엄마로선 골칫덩어리였다. 싱거운 건 입에 잘 안 대던 내 편식 탓이었다.

엄마는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막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어떻게 그래도 먹게 할 것인가.

그렇게 새빨간 김치찌개가 아닌 물을 조금 더 넣은 주황빛 김치찌개가 탄생했을 것이다.

아쉬워도 곧 잘 먹었으니까, 말이다.


야구 중계가 펼쳐지는 사이 참치가 묻혀진 두부를 한입 베어 물고, 진로 한잔을 털어 넣고는 가만히 생각해 보다가 진로 뚜껑을 이내 닫았다.

새빨간 김치찌개는 포기 못 해도, 아들의 식습관을 걱정하며 주황빛 김치찌개를 끓여내던 엄마를 생각하며, 오늘은 술이라도 그만 먹자 결심해 본다.


백미밥에 새빨간 김치찌개면 그래도 충분한 하루다.

두 그릇 먹었으니, 오늘은 나가서 뛰기라도 해야겠다.


잘 먹었습니다.


김치찌개는 다음 날 더 맛있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