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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준 May 09. 2019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국내 도서 >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 에세이]

백세희 지음 | 흔 | 2018년 06월 20일 출간


  이 책은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었다. 제목이 큰 역할을 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문장에서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저자가 떡볶이를 엄청 좋아하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먹는 것은 항상 옳다'는 평소의 가치관에 맞아떨어져 책을 읽게 되었다. 힘들어도 맛있는 음식으로 극복해나가는 저자의 모습을 기대하며 책을 집어 들었다. 그제야 책의 표지의 밑에 써진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가 지금 힘든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아요. 이유 없는 허전함에 시달리면서


  

  제목과 대조되는 분위기의 문장이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공감된다. 회사에서 상사가 힘드냐고 물어보면 항상 힘들지 않다고 대답했다. 대학원에서 석사 졸업할 때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웬만해선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입사한 지 1년이 지나고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다른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야 할 항목들이 있어봤자 한 개 있거나 없었는데 회사 생활 후 받은 검진 결과는 참담했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 겪었던 고통의 한계치까지 도달하지 않아도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검진 결과 덕분에 몸이 힘들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석사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닌다는 기쁜 마음으로 지친 육체를 이끌어 온 것이다. 


  반면에, 저자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힘들었다. 마음에도 감기가 들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아팠고, 지금도 치료를 계속해나가고 있다. 책은 '기분부전 장애'를 앓는 저자의 치료 기록을 담고 있다. 부제목이 붙어있는 각각의 글은 저자의 독백 후에 의사와의 상담 내용이 인터뷰 형식으로 전개된다. 저자는 독자들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네'라는 감상이 남는 책이 되었으면 하고 책을 출판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두 가지의 감상이 함께 남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는 정답이 없는 고민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나만 고민했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 필자가 힘들었던 이유와 전혀 다른 이유로 힘들어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심적으로 힘들어지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게 더 조심스러워지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게 되었다. 그만큼 타인과의 소통에 있어서 더 고민하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책 내용 중에 평소 했던 고민과 겹치는 부분이 없다면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 것이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문제들로 저자는 힘들어하는데 읽는 사람이 비슷하게 힘들었던 경험이 없으면 공감하기는 어렵다. 이해하고 싶은데 이해할 수 없어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지도 않는다. 책 초반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이해하기 힘든 심적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읽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겨우겨우 책을 다 읽고 나면 에필로그로 다음과 같은 제목이 나온다.



괜찮아, 그늘이 없는 사람은 빛을 이해할 수 없어


  

  기억 속에 힘들었던 시절이 있고, 마음에 그늘을 가져본 사람이 본인에게 깃드는 빛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하지만 빛을 왜 이해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에필로그는 저자가 언젠가 커다란 어둠 속을 걷고 또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 조각의 햇살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마무리된다. 저자가 빛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가볍게 받아들이고, 밖에 나가면 마음껏 받을 수 있는 햇살에 편안해하는 날이 오기를 응원한다. 에필로그 후에는 저자를 진료하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가 한 장 정도의 분량으로 우리에게 짤막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제까지 간과하고 있었지만 본인으로부터 나오고 있을지 모를 또 다른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고 말이다. 


  책에는 우울의 순기능이라는 부록이 포함되어 있다. 우울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모아놓았다. 이 중에 '힘내라는 독'이라는 글에 나온 문장을 공유한다. 이 글에는 안 나왔지만 사람이 힘든 얘기를 할 때 자기가 더 힘들다며 누가 더 힘든지 승부를 겨루려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된다면 이 글을 읽고 공감과 소통하는 법에 대해 알고 갔으면 한다. 


우습게도 가장 힘이 된 위로는 이거였다. "왜 안 떨려고 그래? 왜 자신 있게 하려고 해? 그냥 떨어 힘내지 마!"
가장 힘이 들 때 옆에서 '힘내'라고 말하면 멱살을 쥐고 싶을 때가 있다. 그냥 옆에 앉아 어깨를 토닥여주거나, 어떤 해결 방법이 있을지 함께 고민해주거나, 아니면 같이 슬퍼하거나 화내거나, 유경험자라면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생각보다 별일 아니라고 다 지나갈 거라고 이야기해주면 된다. 그게 공감이자 소통이고 관계와 관계를 잇는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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