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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준 Jun 11. 2019

말 그릇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국내 도서 > 자기 계발 > 화술/협상 > 대화와 화술]

김윤나 지음 | 카시오페아 | 2017년 09월 22일 출간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마음으로 들어간다.

  

  이 책은 자기 계발 서적이지만 단순히 말의 기술만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말하는 방식과 선택하는 단어가 다 다르다. 각기 다른 사람들의 말의 근원을 찾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다. 단순히 언어능력이 부족해서,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다른 사람과 말할 기회가 없어서 말을 잘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말을 잘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고, 말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말은 마음에서 나온다. 이 한마디를 시작으로 평소에 자신이 왜 그렇게 말을 했었는지, 그리고 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의 첫 부분에 다음 문장이 나온다. 


말 때문에 관계가 어그러지고, 자존감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어디서부터 바꿔나가야 할지 몰랐다면, 일단 당신이 평소 쓰고 있는 '말'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평소에 처해있던 문제를 저자가 너무 명확하게 짚어주어서 놀랐다. 실제로 그런 경험이 많았다. 다른 사람과 친해지고 싶고 잘 지내고 싶었는데 말을 하다 보면 어느새 상대방의 기분은 좋지 않았고, 의도했던 상황이 아니었기에 당황했으며 어느 시점에 그렇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점을 고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위 문장을 읽고 나서, 평소에 너무나 고치고 싶었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였다. 심지어 1장의 제목은 '말 때문에 외로워지는 사람들'이다. ㅜ.ㅜ. 


  말을 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확률도 낮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 말'을 사용할까?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사람 사이의 관계 안에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인정과 사랑을 확인하며 위로와 용기를 채우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소통을 하기 위해 공감하고 존중하며 건강하게 자극하는 말을 한다. 하지만 말을 권력으로 여기고 통제를 위한 말을 하게 되면 사람은 다 떠나고 '그 말'만 초라하게 남는다. 사람을 이어주는 건 통제의 말이 아니다. 


 세상은 각자의 자아를 중심으로 세 가지 종류의 연결이 있다. 


   1. 나 자신과의 연결

   2. 타인과의 연결

   3. 세상과의 연결


  이때, 말은 자신이 위의 세 부분과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도구라고 저자는 말한다. 상대방의 말을 통해서, 상대방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결국, 말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자신에게도 만족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있어서 좋은 선배나 부모, 친구가 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넓게 바라보고 이해하기도 힘들어진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우리가 쓰는 말을 살피고 돌아보고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열다섯 살짜리 소녀가 지금 당장 결혼하고 싶어 한다면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베를린 지혜 프로젝트'라는 1980년대의 실험을 통해 위의 질문을 던졌을 때 대답이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졌다고 한다. 


안 돼. 열다섯 살에 결혼이라니, 미친 짓이지.
쉬운 질문처럼 보이지만 사실 쉽지 않아. 열다섯 살에 결혼하는 건 누구나 반대할 거야. 하지만 특수한 경우라는 게 있으니까. 예를 들어 그녀에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아니면 부모 친척 없이 이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면? 혹은 일찍 결혼하는 문화권에 사는 소녀일 수도 있지. 무엇보다 우리는 충고하기 전에 먼저 그녀와 대화를 나눠봐야 해. 그래서 그녀의 상황과 감정과 마음에 대해 알아봐야 해.


 첫 번째 대답은 말 때문에 외로워지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말이고, 두 번째 대답은 저자가 '말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의 대답이다. 저자는 다양성을 고려하며 유연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말 그릇이 크다고 표현한다. 이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나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 앞에서도 감정을 다스릴 줄 알고, 고정된 관점을 고집하는 대신 상황의 맥락을 이해하고, 유연한 태도를 보일 줄 안다. 반대로 그릇이 좁고 얕은 사람은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말을 쏟아낸다. 그릇이 넓고 깊은 사람은 상황과 사람, 그 상황을 바라보는 자신의 입장까지 고려해서 말한다. 


  말 그릇이 사람마다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앞에서도 말했듯이 말은 그 사람의 평소의 생각과 내면을 나타낸다. 자신이 얼마나 내면을 가꾸기 위해 노력했는지에 따라서 말 그릇이 달라지는 것이다. 상대방을 곤란에 처하도록 뒤통수를 치는 장황한 논리력, 뛰어난 기억력 같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해하려고 하는 좋은 마음가짐을 가꾸어나갈 때 말 그릇이 깊고 넓어진다. 즉, 말의 목적에 맞게 말을 통해서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면 내면을 성장시켜야 한다. 스피칭 학원에 다니기 전에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누구나 살면서 말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는 아픔을 겪는다. 하지만 그 말에 관심을 기울이고, 나의 말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보겠다고 결심하면 말 그릇은 조금씩 성장하게 된다.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그릇을 고치기 위해서는 그 균열을 알아보고 매만지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와 비슷하게 자꾸만 날 선 말이 쏟아진다면, 내 마음의 어느 곳에 날이 서 있는지 알아보는 게 첫 단계이다. 말을 만들어내는 마음을 살펴서 그 균열을 메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면 아이(또는 어른 아이) : 어린 시절 충격적인 사건이나 강렬한 경험을 한 아이가 그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면, 몸은 자랐지만 마음은 아직 그때에 머물러 있게 된다는 의미


  마음속의 어린아이가 방황을 끝내지 못한 채 서성이다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폭발하고 만다. 이게 다 내면 아이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이고, 흑백논리에 매몰되어 있고, 추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 내면 아이를 품고 살아가는 이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 나이는 먹었지만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사람마다 가진 입장과 상황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며, 숨은 의미나 말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멀리 보지 못하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에만 집중한다. 


  위의 문단은 책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평소에 필자를 관찰해서 요약정리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소름 돋게 묘사했다. 이 내용을 보고 성장이 멈춘 어렸을 때로 돌아가서 모른 척 묻어두었던 당시의 일들을 스스로 이해해보려고 하는 시간을 가졌다. 필자의 내면 아이와 마주했다. 혼자서 사색도 하고, 부모님과 얘기도 나누어보고, 여자 친구와 대화도 하면서 내면 아이를 성장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몸은 금방 늙는데 마음은 어찌 이리도 성숙해지기가 힘든지.. 그래도 이 책을 통해서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말을 하기 전에 생각이 많아졌다. 


마음이 변하면 말이 변한다.


  아직은 원하는 수준으로 말이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말을 하기에 앞서서 먼저 나의 마음과 기분을 살피고,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지금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그동안 작업했던 부분을 수정해야 하거나 일을 더 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표정이 굳어지고 정색하게 된다. 말투도 차가워진다. 전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현재의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회사는 일을 하러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다그치려는 마음을 억누르고 차분하게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단계이다. 아직도 헐크처럼 화르르 불타는 마음이 생기는 건 그대로지만 불을 끄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는 게 느껴진다. 


  책의 1장만 읽어도 필자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독자라면 자신이 평소에 앓고 있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1장만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본 적도 없는 필자 자신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는 저자가 뒤에는 어떤 말을 썼을지 궁금하기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1장을 읽을 때도 밑줄을 엄청 그어가면서 읽었는데 책의 뒷부분에서도 거의 모든 문단에 밑줄을 그었다. 와 닿는 말들이 정말 많았다. 종교가 없는 필자에겐 성경이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그 말을 마음에 되새기고 예전의 실수들을 반성하게 되었다. 삼성 교보 ebook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책을 생각 없이 읽었는데 운 좋게 얻어걸렸다. 내 인생을 바꾸게 한 책 Top 5에 들어갈 책이다. 말을 잘하고 싶은 이유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에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정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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