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고 파일럿 Nov 07. 2024

한국 부기장에서, 중동의 외항사 부기장으로


얼마만의 글인지, 한 반년 정도 됐을까.

매주 화요일마다 '내일 브런치 북 글 올리는 날'이라고 울리는 나의 휴대폰 알람은

이제는 죄책감을 느끼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렸다.


'바빴어요.'


라는 말로 글과 글 사이의 공백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는 않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글을 적고 있는 지금도 사실 마음의 여유가 없긴 하다.


나는 현재 중동에 있는 한 항공사에서 경력직 부기장으로서 교육을 받고 있다.

오늘은 가장 바쁜 한 주의 딱 중간이 되는 날이다.


그렇게 바쁜 척을 하고, 실제로 바쁜 와중 무슨 글인가 싶지만,

지금이라도 기록을 하지 않으면 놓칠 것만 같은 것들이 너무 많아 이렇게 글을 적는다.


국내 어느 항공사의 부기장으로 근무를 하다가 이직 준비를 하였고

간절했던 나의 노력이, 그리고 운이 좋게도 너무나도 가고 싶었던 항공사들에 합격을 하여

그중 가장 가고 싶은 항공사로 가게 되었다.


글로 적고 싶은 에피소드가 너무 많다.


외항사 면접 중 자신만만하게 면접에서 cutural difference를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좔좔 대답하고 합격하자마자 같이 assessment 본 인도 기장에게 "소고기 먹을래?" 했던 날,


Assessement를 보며 하루하루 합격이라는 말을 들으면 짜릿했던 순간들,


한국에서는 한 번으로 끝나는 조종간 점검을, 러시아에서는 얼어있는 조종간 때문에 10번 이상 확인한다는 이야기,


전 세계 최고의 항공사와 화상면접을 하다가 노트북이 안 돼서 20분동안 등에 땀 삐질삐질 나다가 결국 휴대폰으로 영상통화하듯 면접 본 이야기,


그리고 그 최고의 항공사에서 내가 항공사 역사상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로 합격했던 이야기와, 가지 않기로 한 이유.


한국인 최초로 전 세계 최고의 항공사에 합격한 어느 한국인 부기장님과의 인연,


경력직 부기장 면접과 신입 부기장 면접의 차이,


어느 항공사에 인적성 검사에서 합격하여 면접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는데, 연차까지 냈다가 면접 취소라고 국제 전화 온 이야기,


면접 보다가, 보잉 조종사로서 왜 에어버스가 타고 싶어?라는 질문에, "칵핏에 밥상이 있어서." 했다가 혼난 이야기,


이직이 확정되고 그동안 감사했던 기장님들에게 소식을 전하며 감동받은 이야기들,


이전 직장 마지막 비행 달에서 만난, 너무 좋은 기장님들,


그리고 새로운 나라로 터전을 옮기면서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들.


제목만 적자면 밤이 새도록 적어도 부족하지 않을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매주 화요일마다 휴대폰 알람으로 울리는 '브런치북에 글 올리는 날'이 아닌

여유가 있을 때 조금씩 올리고자 한다.


마지막 비행, 동기가 찍어준 사진


심심한 사과라고 해야 하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그 '심심'이 아닌,

마음 깊이 느끼는 간절함과 깊은 뜻의 '심심'한 사과로

이따금씩 부족한 나의 글을 재밌게 봐주었던 모든 분들에게


주기적이진 않겠지만,

이따금씩 올라오는 글들이 한순간의 웃음이 되었으면.


사실 이 글을 올리기 전, 부기장으로서 경력이 어느 정도 쌓여가는 와중,


나의 소개에 적혀있는 '초보 부기장의 비행기록'을 '경력 부기장의 비행기록'으로 바꾸려고 고민했다가,


새로운 항공사에서 새로운 비행기로 새로운 시작을 하는 와중에 경력은 무슨 초보보다 못한 실력으로 허덕이는 작금의 상황을 미루어 보아, 당분간은 유지하기로 마음을 먹으며,


어제 교관에게 비행하다 먹은 욕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망고파일럿아, 너 KISS 알아?"

"KISS 알긴 알지."

"그 KISS 말고."

"그럼 무슨 KISS?"

"Keep It Simple, Stupid."


간단해야 하는데 또 주절거렸던 이 글.


인샬라.


이전 퇴사를 하며, 스케줄을 보니 참 많이 다니기도 하였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